▲ 한상덕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역사 드라마나 영화는 실제로 있었던 실록을 모티브로 하여 제작된다. 하지만 성공 여부는 무엇보다 작가나 감독의 상상력과 창의력에 기인한다. 따라서 흥미와 상업성을 목적으로 한 경우에는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구성이 필요하고, 이런 연유에서 때로는 역사 인물이 미화되기도 하고 평가절하 되기도 한다. 작가나 감독의 심미안 내지는 모종의 목적에 따른 결과다.

연전의 개봉되었던 역사영화 ≪역린≫은 조선 후기 최고의 임금 정조가 즉위 초기에 노론을 등에 업은 저항세력에 맞서서 사면초가의 상황을 담대하게 극복해 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였다. 감독은 과연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정조를 묘사하고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던가? 질문에 답한 감독의 대답은 간단명료한 중국 고전 한 대목이었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 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정조가 그저 피상적인 경전 공부만을 떠들어대는 대신들의 숨통을 틀어쥐고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게 했던 고전 한 대목, 다름 아닌 ≪중용≫ 제23장의 내용이었다. 상책의 입을 통해 읊조리게 했던 이 구절은 너무나 조용하고 차분하게 표현되었지만, 그 감동은 웅변보다 더 강했고, 촌철살인과 같은 구절구절들은 말만 앞세우던 대신들을 좌불안석하게 했으며, 우리 관객들의 심장을 쫄깃쫄깃하게 해 주었다.

정조가 강조한 글의 마지막 원문은 “유천하지성, 위능화(唯天下至誠, 爲能化)”라 되어 있다. “천하의 지극정성만이 변화를 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정성’이란 어떤 것이고, ‘지극정성’을 다 한다는 것은 어떤 모습이고 어떤 의미인가?

‘지극정성’이란 말만 들으면 얼른 떠오르는 얘기 하나가 있다. ‘요강을 닦던 머슴’ 이야기다. 지극정성으로 주인 요강을 씻어 햇볕에 잘 말린 다음 안방에 들여놓던 총기 있고 부지런한 머슴이 하나 있었단다. 머슴으로 두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한 주인이 그를 평양 숭실대학에 입학을 시켜주었단다. 훗날 그 머슴은 훌륭하게 성장하여 오산학교 선생님이 되었고 민족 독립운동가가 되었다는 이야기, 다름 아닌 조만식 선생이 그 주인공이다.

머슴이 어찌 대학에 갔고 선생님이 될 수 있었느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주인의 요강을 지극정성으로 닦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했단다. 내 머릿속에 최초로 정립되었던 ‘지극정성’의 모습과 의미는 바로 이 이야기 속에서 시작되었다. 그렇다. 지극정성이란 내가 선 자리에서 내가 하는 일에 ‘삼심(三心)’을 다 하는 것이다. 즉 ‘초심’과 ‘열심’과 ‘뒷심’이 그것이다. 셋 중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는 삶의 태도, 그것이 곧 지극정성이 아닐까 싶다.

정조는 세종과 병칭되는 조선의 성군이다. 재위 24년 동안 조선 최고의 문화융성을 이뤄냈던 그는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규장각을 설치하여 다방면의 인재를 양성하고, 탕평책을 통해 권력의 균형을 꾀했으며 백성의 소리를 직접 들어 소통의 정치를 실현했다. 정조의 부모에 대한 효성과 백성에 대한 애민정신은 ≪중용≫ 제23장의 ‘지극정성’ 정신과도 잘 어울리고, ‘모든 냇물에 고루 비취는 명월 같은 주인 늙은이(萬川明月主人翁)’라는 자호로도 설명이 잘 된다.

백마를 탄 정조가 갈대밭을 질주할 때, 영화감독은 다시 한 번 ≪중용≫ 구절을 오버랩시키고 있다. “바뀐다. 온 정성을 다하여 하나씩 배워간다면, 세상은 바뀐다.”고…. 아우라 넘치는 정조의 이 명장면은 봐도 봐도 감동적이다. 서재에서 나도 따라 연기를 한 번 해 본다. 슬로우 비디오 동작으로…, 속옷 한 장 걸치고…. 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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