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기획/특집
<창간 15주년 특집> 함안 ‘말이산고분군’…아라가야 베일 벗기다
기사입력: 2021/02/25 [13:41]
강호석 기자 강호석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카카오톡
▲ 말이산고분군 주능선 전경     


1000여기 이상 아라가야 고분 분포

집, 배, 동물 등 모양 본뜬 상형토기 대표적

세계유산등재 위한 본격적인 절차 앞둬

 

 함안 말이산 고분군은 삼한시대부터 아라가야가 멸망한 6세기 중엽까지의 역사를 품고 있는 고분군이다. 1963년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도항리 고분군(사적 제84호)과 말산리 고분군(사적 제85호)으로 관리해 오다가 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동일한 시대와 성격의 무덤들이 조성돼 있는 하나의 고분군으로써 2011년 7월 28일 사적 제515호로 통합·재지정 됐다. 고분군의 규모는 572필지, 52만7224㎡로 경남의 모든 유적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 말이산 고분군 1000여기 이상 아라가야 고분 분포

 말이산 고분군에는 모두 1000여기 이상의 아라가야 고분이 분포하고 있다. 먼저 1980년대 함안군에서 관리를 목적으로 고분번호를 부여한 대형 봉분이 있는 고분은 총 40기로, 가장 북쪽에 위치한 1호분부터 남쪽으로 진행하면서 주능선-가지능선 순으로 일련번호가 붙여져 있으며, 가장 남쪽에 위치한 고분이 37호분이다. 

 하지만 1991년 이후 이뤄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와 경남연구원의 정밀지표조사 결과를 통해 볼 때 현재까지 240여기의 고분이 발굴조사 됐는데, 높은 봉분이 만들어지지 않은 이른 시기 고분까지 포함하면 1000기 이상의 아라가야의 고분이 조영돼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기원 전 후부터 아라가야 멸망 때까지 약 550년간 조영

 말이산의 봉토분은 아라가야의 전성기인 5세기 후반~6세기 초에 집중 조영됐다. 그 분포는 남-북으로 이어진 주능선과 서쪽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가지능선의 정상부에 대형의 봉분을 가진 고분이, 사면부에 중소형의 고분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말이산의 북쪽 일대에는 아라가야의 전신인 삼한시대 안야국(安邪國)의 널무덤과 덧널무덤이 밀집 분포하고 있다. 따라서 말이산고분군은 기원 전 후부터 아라가야 멸망 때까지 약 550년간의 고분들이 누대로 조영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2020년 기준 말이산고분군의 출토유물은 모두 1만2000여 점 정도로 국보급 상형토기와 말갑옷 등 철제유물, 금은제 장신구 등 다종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됐다. 이런 유물들은 1500여 년 전 아라가야가 독자적으로 형성, 발전시켰던 찬란한 문화상을 보여줌과 동시에 고대 한반도 남부의 일원으로서 주변국가의 교류, 갈등, 정복 등의 관계상을 잘 반영하고 있어 학술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 마갑총 발굴     



■ 출토 토기 집, 배, 동물 등 다양…‘철의왕국’ 답게 철기도 출토

 말이산고분군에서 출토되는 토기는 집, 배, 동물 등 여러 가지 모양을 본뜬 상형토기(像形土器)가 가장 대표적이며 이외에 조선시대 달항아리와 같은 대형 항아리[大壺], 불꽃무늬굽다리접시, 문양이 새겨진 뚜껑, 각종 항아리와 그릇받침[器臺] 등으로 4~5세기 한반도 남부지역을 장악한 대표적인 아라가야 양식의 토기들이다. 

 이와 함께 ‘철의 왕국’이라 일컬어지는 아라가야답게 수준 높은 철기들이 출토되는데, 둥근고리큰칼[環頭大刀]을 비롯해 쇠창, 화살통과 화살촉 등 무기와 비늘 투구와 판갑옷, 비늘갑옷 등의 무구, 말갑옷과 말투구를 비롯한 말갖춤새, 새모양 장식을 붙여 만든 미늘쇠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무장적 성격의 철제 유물 등은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가야의 맹주로 성장한 아라가야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가야에 대한 연구는 삼국에 비해 기록이 적은 탓에 남아있는 가야 유적, 유물이 중요하게 취급돼 고고학적으로 집중돼 왔다. 

 

■ 말이산고분군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 5개년 발굴조사말이

 1973년 천마총 발굴조사를 통해 고고유적에 대한 높아진 관심은 1980년대 가야유적에 대한 조사로 이어지게 된다. 1980년대 초 기초조사를 토대로 1986년 해방이후 첫 발굴조사가 이뤄지게 됐다. 1990년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의 개소와 1992년 마갑총 발굴조사를 계기로 시작된 말이산고분군에 대한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의 5개년 발굴조사로 그동안 김해, 고령에 비해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아라가야에 대한 역사적, 고고학적 자료들이 밝혀지기 시작됐다. 

 2000년대에 들어 말이산고분군 북쪽지역 개발 사업에 따른 발굴조사로 이른 시기 아라가야고분군의 양상을 밝힐 수 있게 됐다.2013년 말이산고분군이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는 본격적인 발굴조사로 이어지게 된다. 

 2014년 말이산고분군 남쪽의 100호와 101호분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뤄졌으며, 2015년에는 말이산고분군 주능선 남쪽에 위치한 25호분, 26호분에 대한 조사가 이뤄진다. 

 가야사 조사연구 및 정비사업이 정부 국정과제로 채택되는 가운데 일제강점기에 유린당한 말이산13호분의 발굴조사가 100년째 되는 해인 2018년 이뤄지게 됐다. 

 말이산고분군 13호분은 5세기 아라가야 전성기 최대 규모 왕릉으로 1918년 일본인 야쓰이 세이이츠에 의해 도굴에 가까운 조사의 피해를 입게 된다. 이후 고분의 역사적 가치에 대한 제대로 된 규명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100년 만에 우리 손으로 이뤄진 발굴조사에서 13호분은 무덤방 내부를 붉은색 안료로 채색하고 덮개돌에 별자리를 새긴 5세기 후반 아라가야 최대의 왕묘인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무덤 안에서는 중국과의 교류관계를 보여주는 허리띠 장식과 왜와 교류를 보여주는 뼈장신구와 더불어 가야 최초의 천문도가 확인돼 아라가야의 국력과 드넓은 대외교류 모습을 여실히 증명했다.

 

▲ 남문외고분군 발굴현장 방문     



■ 말이산고분군 45호분 아라가야 최초 고총고분

 2019년 발굴된 말이산고분군 45호분은 아라가야 최초의 고총고분으로 4세기 후반~5세기 초 아라가야의 왕묘로 여겨진다. 1980년대 시굴조사에서 고분이 아닌 곳으로 여겨졌던 이곳은 함안군의 발굴조사결과 아라가야 최초의 고총고분이자 높은 봉분을 가진 덧널무덤으로 가야고분군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고분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이곳에서는 1600년 전의 집과 배의 모양을 그대로 본뜬 상형토기와 사슴이 뒤를 돌아보는 모습을 그대로 본뜬 사슴모양 뿔잔 등 국보급 토기와 더불어 투구, 갑옷, 말갑옷, 고리자루큰칼, 장식안장 등 왕묘의 위용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됐다. 

 이러한 말이산고분군은 지난해 9월 문화재청에서 열린 문화재위원회에서 나머지 6개의 가야고분군들과 함께 가야고분군의 이름으로 세계유산 등재신청 대상에 선정됐다. 이러한 결과물은 2013년 ‘세계유산 잠정 목록 등재’를 시작으로 오랜 시간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결실로 세계유산등재를 위한 본격적인 절차를 앞두게 됐다. 2021년 1월 파리에 위치한 세계유산센터에 등재 신청서를 제출했으며 오는 8월~10월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이코모스 전문가의 현지실사를 거쳐 2022년 제46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유산 등재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군 관계자는 “성공적인 현지실사를 위한 고분군 정비, 주민 참여 및 홍보 등 아직 많은 숙제들이 남아있다. 하지만 문화재청·경남도·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단과의 유기적이고 지속적인 협력으로 반드시 세계유산에 등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강호석 기자 강호석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 뉴스경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