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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 '비차(飛車)' 간담회에 이목 집중
기사입력: 2017/07/26 [18:09]
박일우 기자 박일우 기자 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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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차발전위원회 임원 간담회 모습

 

비차발전위원회 25일 임원 간담회서 활동 실적 공유
시민들 “창의도시 지정 앞둔 이때 비차 관심 더 높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위를 날았던 '비차(飛車)'를 널리 알리기 위한 비차발전위원회 임원 간담회에 시민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비차발전위원회가 지난 25일 오후 3시 진주시청 5층 상황실에서 임원 간담회를 갖고 그간 비차발전위원회의 활동 실적 공유와 함께 앞으로 비차에 대한 연구 및 홍보 계획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이창희 진주시장 또한 인사말에서 “대한민국의 인류 비행기구의 시발점이며 우리 조상들의 탁월한 재능과 항공기술로 미루어 짐작컨대 항공 산업이 진주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할 만큼 비차발전위원회 임원 간담회에 기대를 표시했다.


비차발전위원회는 소설 ‘진주성 비차’를 쓴 김동민 작가와 이일구 변호사를 공동위원장으로 300여 명에 이르는 발족 회원구성은 진주뿐만 아니라 옛 진주목에 속했던 서부경남 지역 시민을 토대로 한다.


‘하늘을 날아가는 차’라는 뜻의 비차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포위된 진주성에서 군관 정평구가 만든 비행체로 알려져 있는 것으로 1903년 라이트 형제의 초기 비행보다도 300여 년이나 빠른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이 왜적들에게 포위되자 30리(12km)를 나는 비차를 만들어 사람을 구해내고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등 일본군이 작전을 전개하는데 큰 곤욕을 치르게 한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비차의 실물이 남아 있지 않고 설계도 등 기록이 없어 공식적인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민 김모(63) 씨는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위를 날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비차의 실물은커녕 설계도 같은 기록이 없어 공식적인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니 가슴 아프다”면서 “매주 토요일이면 진주성 일원에서 상설로 공연되고 무형문화재도 유네스코 민속예술 창의도시 지정을 기원하고 있는 때여서 비차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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