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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덕의 고금담리(古今談理) (83) : 조심, 조심, 말조심
기사입력: 2019/06/16 [11:26]
한상덕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한상덕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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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우리는 모두 이름을 가지고 산다. 자기 이름이지만 자신이 직접 지은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부모를 포함한 가족이나 지인, 작명가 등이 지어주기 때문이다. 물론 개명을 한 경우엔 상황이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름은 부르기 편하면 그만이고 함의까지 좋으면 금상첨화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에서 이름에 대한 다양한 느낌을 가지고 산다. 남의 이름이든 자기 이름이든….


얼마 전 도움을 받았던 한 여성이 있었다. 통성명을 하고 나서 그분 이름의 어감이 좋아 어떤 한자를 쓰느냐고 물었다. 역시나 내가 예상했던 한자를 쓴다고 했다. 두 글자를 연결시키니 자연스럽게 의미가 드러났다. '아름다운 향기'. 망설임도 없이 정말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나의 느낌을 말해줬다.


그런데 정작 본인의 반응은 생각 밖이었다. 잠시 뜸을 들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한 때 저는 제 이름 때문에 오랫동안 괴로움 속에서 힘들게 살았답니다." 그녀의 얘기는 내게 충격적이었다.


학창시절, 첫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들어와 출석을 부르다가 자기 이름을 불러놓고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이 반에도 기생이 한 명 있구나."라고 했다는 거였다. 그녀의 이 말을 듣는 순간, 나의 모든 감각기관은 기능을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벼락을 맞은 듯한 멍한 상태로 그 어떤 말도, 그 어떤 반응도 보일 수가 없었다. 그저 나도 모르게 얼른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밑도 끝도 없이 그 교사를 대신해서 용서를 빌고 싶었다. 어찌? 어찌, 선생님이라는 분이….


감정적으로 예민한 사춘기에 선생님께 들은 이 말 한마디는 그로부터 뽑을 수 없는 가슴의 '못'이 되었고, 부끄러운 이름을 가졌다는 생각에 자존감을 가지고 살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다행히 쉰 살이 가까워진 오늘에 와서야 겨우 이런저런 자존감 공부를 통해 치유가 되고 있고, 아름다운 뜻을 가진 자신의 이름을 사랑한다고 했다. 사실, 그분은 이름도 아름다웠지만 얼굴은 더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이름이 그리 부끄러웠다면 개명을 해보지 왜 그러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아버지가 주신 이름을 마음대로 바꾸고 싶은 용기도 나지 않았다고 했다.


한 인생에 이런 고통을 안겨준 그 선생님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선생님이라는 이유만으로 제자의 가슴에 아무런 생각 없이 꽂은 '살인의 칼'에 그는 어떤 벌을 받으며 살고 있을까? '성명학'에 대한 그 대단한 '통찰력'으로 가슴 후련하게 '배설'해버린 그 말로 인해 지금은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그저 궁금할 뿐이지만, 어쩌면 그는 아무런 기억조차 없을지 모른다. 한 인생을 그토록 힘들게 해 놓고도….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우리는 평소 남에게 힘이 되는 말을 좀 많이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고 '힐링'이 되는 그런 말을 더 많이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덕담으로 하는 '하얀 거짓말'은 하늘도 '거짓말'이라 단죄하지 않고 이해해 주지 않을까 싶다. 시들어가는 식물에 '비료'와도 같은 말, 생기발랄한 곤충에 '살충제'와도 같은 말, 우리는 오늘도 하나의 혀 위에 이 둘을 다 가지고 살아가는 셈이다. 놀리는 대로 '독약'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보약'이 되기도 하는….


이쯤에서 말의 신중함을 강조하는 성어 하나가 생각난다. '사마난추(駟馬難追)'란 말이다. 말이 입 밖을 나가면 사두마차로도 따라잡기 어렵다는 의미다. 너나없이 평소 생각 없이 불쑥불쑥 해 버린 말이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과오로 남는 경우가 많다. 참으로 조심해야 할 게 말이 아닌가 싶다. 나름 통쾌하고 속 시원한 말을 한답시고 배설하듯 토해냈다가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난 뒤에야, 다시 그 말을 주어 담느라 사과하는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다 신중하지 못한 결과다. 나 역시 혹 말실수는 없었는지 반성하면서 다시 한 번 다짐한다. "말조심 하리라, 말조심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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