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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칼럼> 새마을금고 발상지는 산청 생초면 하둔마을 Ⅱ
기사입력: 2019/09/09 [12:50]
박정수 진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박정수 진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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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새마을운동은 1969년부터 자조, 자립, 협동의 3대 정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새마을운동은 넓은 의미로 농촌재건운동으로 마을을 발전하는 사업이다. 1969년 새마을운동을 하기 이전에, 하둔마을에서는 1960년대 초부터 이미 자조, 자립, 협동으로 '새로운 마을'을 개혁하기 시작했다. 곧 하둔마을의 '마을동사(會館) 건설, 마을길 넓히기, 마을금고 운영, 뒷골(後谷)의 저수지 공사' 등을 사업했다. 1960년대에 주민들은 마을의 개혁을 통해, 삶을 크게 개선했다. 이들 하둔마을의 개혁은 역시 아버지이신 이장 박봉술 님께서 추진하셨다.


하둔 '마을동사'는 1963년 이전에 만들었다. '마을동사'는 주민들이 모여서 주로 회의와 마을 행사를 할 때 사용했다. 이 '마을동사'에는 부속 창고가 있는데, 그곳에는 마을의 공용인 도구 등을 보관했다. 지금 전국의 마을에서는 현대식의 '마을회관'을 다 가지고 있다. 그러나 1960년대에 '마을회관'을 찾아보기는 대단히 힘들었다. 이 하둔의 '마을동사'를 보면, 마을 주민들은 공동생활에 대한 의식이 굉장히 일찍 깼다고 볼 수 있다. '마을동사'가 만들어진 세월은 약 60여 년 흘렀고, 지금의 '마을동사(하둔회관)'는 현대식 건물로 변했다. 또 '하둔회관'의 마당에는 '새마을금고 발상지'를 알려주는 비석이 우뚝 서 있다.


1960년대 그 시대의 국도 및 지방도로의 사정은 열악했다. 그러니 사실상 농촌의 길(도로)은 오솔길과 같았다. 그래서 1969년의 '새마을운동'에서는 '마을길 넓히기'를 가장 중요시했고, '마을길 넓히기'의 사업을 가장 먼저 했다. 그러나 하둔마을에서는 1960년대 초기에 이미 '마을길 넓히기'의 사업을 했다. 즉 하둔마을은 '새마을운동'보다 약 8년 전에 마을길을 확장했다.


1960년대 나라가 가난해서, 정부에서는 미국의 원조인 밀가루, 옥수수가루를 받아 국민들에게 보급했다. 그때 하둔마을 주민들의 삶도 어려웠다. 하둔마을의 뒷골(後谷)은 물이 귀해, 항상 흉작이 됐다. 그래서 이장 박봉술 님께서는 마을에 취로(就勞)사업을 일으켜, 뒷골에 저수지를 만들기로 결심하셨다. 또 취로사업으로 주민의 삶을 향상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어서, 취로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셨다.


1965년 박봉술 님께서 그 당시 김○○ 생초면장님을 찾아가셔, "하둔마을의 뒷골에는 저수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곳에 저수지를 조성하자."라는 설명을 하셨고, 또 면장님께 "저수지를 만들 곳의 토지는 나 자신의 밭(566평, 계남리 846번지)을 국가(생초면)에 기부하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결과, 이장 박봉술 님께서 기부하신 밭에 저수지를 만들게 됐다. 하둔마을의 '취로사업'은 마을의 가난에서 탈피하는 큰 역할을 해 주었다. 또 마을의 '저수지 공사'의 노동자들은 임금인 밀가루를 받게 돼서, 삶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또 못골의 지주(地主)들은 저수지 조성으로 천수답(天水畓)을 기름진 옥답(沃畓)으로 바뀐 행운을 받았다.


옛날부터 우리 민족에게 전해온 전통적인 상부상조(相扶相助)가 있다. 하둔마을에는 공동체의 상부상조가 철저했다. 곧 하둔마을은 특히 '길흉사계(吉凶事契)'와 '품앗이'가 있었다. 이웃의 큰 일(大事)에 음식(떡국, 묵, 술 등)을 보내는 일, 또 일을 서로서로 도와주는 것이다. 마을주민들은 이와 같은 삶을 통해 서로 친목을 돈독히 했다. 삶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은 공동으로 해결했다.


하둔마을 주민들이 지켜온 전통인 풍속의 상부상조 제도는 '하둔마을금고'의 탄생의 바탕이 됐다. 또 마을에서 가진 공동생활(共同生活)이 있었기 때문에, '하둔마을금고'가 탄생했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하둔마을금고'는 '새마을금고 발상지'가 됐다.


'하둔마을금고'의 기금(자산)은 현금출자, 절미(節米)저축, 생활용품의 매매하는 방법으로 조성했다. 특히 절미(節米)저축은 회원의 집집마다 절미함(節米函)을 마련해 놓고, 밥을 할 때마다 한 종지씩 쌀을 절미함에 모으는 방법이다. 생활용품의 매매는 '마을동사'에 비누, 양말, 공책 등을 전시해 놓는 방법으로 매매했다. 이런 방법으로 조성한 기금(자산)은 회원에게 대출하는데, 특히 급전이 필요한 회원에게 대출을 했다. 그 외에 사업을 통해 수익을 취했고, 자산을 점점 키워갔다.


새마을금고 중앙회에서는 산청군 생초면 하둔마을에 '새마을금고 발상지 기념관(역사관)'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또 중앙회는 국내·외 관계자(관광자)들이 '기념관(역사관)'에서 '새마을금고 발상지'의 정신을 확인하고, 배우는 곳으로 만들기를 기대한다(글은 부친·모친 평소 말씀, 마을 어른들 말씀, 필자 기억을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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