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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한글②] "울ㅈㅣ않ㅇr"…한글은 울고 싶다
기사입력: 2019/10/10 [17:32]
구정욱 기자 구정욱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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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파괴 현상 늘어나…'바로타, 갓길' 한글 사용 노력도
신조어나 불통 언어 난무…신뢰감 상실로 사회 왜곡 우려


한글은 세종대왕이 1446년에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창제해 반포한 문자다. 오늘날 우리가 한글을 사용하기까지 많은 위기가 있었다. 양반의 반대, 일제 강점기 등 무수한 한글 말살 정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573돌 한글날(10월 9일)에 즈음해 창제 시기부터 현재까지 한글의 위기를 살펴보고 세계 속으로 뻗어가는 한글의 위상을 조명하는 기획연재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한글은 창제 초기의 반대와 일제강점기의 핍박을 극복하고 우리 문자에서 세계인이 쓰는 문자로 받돋움하고 있다. 세종학당은 전 세계 60개국 180개소에서 한글을 보급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대륙별로 살펴보면 아시아 105개소, 아메리카 29개소, 유럽 38개소, 아프리카 4개소, 오세아니아 4개소 순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라에서 한글의 사용 실태를 살펴보면 인터넷 시대를 맞아 한글파괴 현상과 무분별한 외래어 오남용으로 여전히 위기를 겪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를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한글파괴 현상은 젊은 층이나 홍보업계를 중심으로 시작됐으나 최근 방송계마저도 오락물을 중심으로 동참하고 있다. 정부는 각종 보도자료에서 무분별하게 신종 외래어를 남발하고 법령 등에 남아 있는 낯선 일본식 조어를 그대로 쓰고 있다.

 

▲ 한글문화큰잔치를 찾은 외국인 (뉴스1 제공)   

 

◇사회 전반에 퍼진 한글파괴 현상…공영방송마저 ‘ㅅrㄴr이는 울ㅈㅣ않ㅇr’


한글파괴 현상은 인터넷 시대를 맞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컴퓨터 인터넷 SNS나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주고받는 한글은 온통 축약되거나 뒤틀려 있다.


젊은층이나 불법콘텐츠 제공업체가 온라인상에서 쓰는 이런 문자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한글파괴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또한 생활 주변에 걸려있는 각종 현수막이나 광고물에서도 언어 파괴 현상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심지어 정부기관이 홍보를 위해 내건 표어에서 국적 불명의 단어·어휘들이 축약되거나 만들어져 마구 사용되고 있다.

 
방송도 예외는 아니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51조 3항에는 "방송은 바른 언어생활을 해치는 억양, 어조 및 비속어, 은어, 유행어, 조어, 반말 등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방송사들이 이런 신조어 등을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막으로 무분별하게 쓰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 2일 흥미 유발을 위해 만든 조어 등을 그대로 송출한 10개 프로그램에 대해 행정지도인 권고를 의결했다. 방송언어 오·남용 사례를 살펴보면 한글파괴는 지상파나 종편, 케이블방송 등 가릴 것이 없었다.

 

▲ 한글파괴를 이용한 불법 콘텐츠 사례 (뉴스1 제공)   


공영방송인 한국방송(KBS)은 '해피투게더'에서 'ㅅrㄴr이는 울ㅈㅣ않ㅇr' 등을 자막으로 내보냈다. 일부 방송에서는 한글을 파괴한 조어를 자체적으로 만들기도 했다. 이런 조어는 '5마이 God'(영어 오 마이 갓), '억을한'(억울) 등이 대표적이다.


방통위는 "명백한 위반 사항은 아니지만 한글파괴, 일부 계층만 이해할 수 있는 불통 언어, 국적 불명의 언어 등 시청자 재미를 유발하려는 목적으로 대다수 시청자에게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 방송언어가 범람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금 사회는 신뢰감이 상실되는 문제점을 안고있다. 아름다운 언어는 사회를 밝고 긍정적이며 배려하는 바람직한 사회로 이끌지만 일부 계층만 이해할 수 있는 신조어나 불통 언어는 왜곡된 사회가 낳은 산물로 거부감을 일으키고 있다.

 

▲ 세종시 광역대중교통체계인 간선급행버스(BRT) 정류장 (뉴스1 제공)   

 

◇BRT 대 바로타…행정용어 선택에 세심함 더해야


정부 보도자료를 살펴보면 외래어·외국어를 습관적으로 남발한다. 스타트업, 클러스터, 프리존, 커스터마이징 등의 표현은 분명 한글이지만 영어를 모르면 이해하기 어렵다. 청와대 누리집도 '브리핑, 온에어, 메시지, 풀버전' 등 외래어가 가득할 정도다.


최근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은 국민 공모를 거쳐 세종시 광역대중교통체계인 간선급행버스(BRT)의 새 이름으로 '바로타'를 잠정 결정했다. '바로타'는 앞으로 관계 지자체와의 협의를 거쳐 2020년 상반기부터 디자인과 표기에 적용될 예정이다.


광역BRT는 시내버스보다 빠르게 운송하는 교통수단이지만 이용객이 영어식 표현을 직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행복청은 "'바로 탄다'라는 우리말 뜻을 쉽게 연상시키는 작품인 바로타는 BRT(Bus Rapid Transit)의 각 영어 단어 첫 글자도 연상돼 심사위원과 국민에게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 세종시 한 식당에서 김용삼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이 참석한 가운데 쉬운 우리말 쓰기와 전문용어표준화협의회 활성화에 대한 협조를 위해 중앙행정기관 국어책임관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문화체육관광부 제공/뉴스1)


한글 표현은 이처럼 영어나 외래어보다 직관적이며 이해하기 쉽지만 인식 부족으로 잘 쓰이지 않는다. 국어기본법에는 '공공기관 등의 공문서는 어문규범에 맞춰 한글로 작성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현실 행정에서는 무색할 정도다.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용어는 법령을 살펴보면 더 심각하다. 법령에는 일본 법률을 별 고민 없이 그대로 베낀 탓에 '수봉'(收捧), 양묘설비, 행정응원 등 해괴한 일본식 한자어가 지뢰처럼 박혀 있다.


법제처가 법률 용어를 공모한 결과 수봉은 징수, 양묘설비는 '닻 감는 장치', 행정응원은 '다른 관청의 협조요청에 응하는 행위'로 순화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법률용어를 쉽게 바뀌고 '바로타' 등 우리말로 바꾸려는 노력은 과거에도 있다. '갓길'이 대표적이다.


'갓길'은 19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일본식 표현 '노견'(路肩)이라고 불렸다. 당시 이어령 문화부장관은 국어연구원에 지시해 '노견'을 대신하는 말로 '갓길, 곁길, 길섶'을 제안했고 정례 국무회에서 '갓길'이 최종 확정됐다.


이어령 전 장관은 이후 인터뷰에서 "1000번의 기고로도 못 고친 것을 1번의 문화행정으로 이뤄냈다"며 "지금도 길 다니다 혼자 뿌듯하곤 한다"고도 밝혔다.


문자는 해당 국가나 집단의 정신문화를 반영하는 사회적 약속이다. 한글이 파괴되고 마구잡이로 쓰이면 세대 간·집단 간·지역 간·성별 간 소통의 단절을 초래할 수도 있다. 사회의 통합을 저해하는 한글파괴를 그냥 방치할 수 없는 이유다.

 

▲ 주한타지키스탄 대사관 행정관 보키예프 아흐로르존 (뉴스1 제공)  

 

◇세종학당 통해 세계인이 쓰는 문자로 발돋움


한글은 세종학당을 통해 우리 문자에서 세계인이 쓰는 문자로 발돋움하고 있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6월 업무보고 자리에서 "우리 한글과 문화 전파의 시작이자 마침이 바로 세종학당"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세종학당재단에서 만난 주한타지키스탄 대사관 직원인 보키예프 아흐로르존(27)은 세종학당에서 한글을 배우기 시작해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아흐로르존은 이를 기념해 한글날인 10월 9일에 타지키스탄에서 아내와 결혼한다고도 밝혔다.


보키예프 아흐로르존은 중학생 시절인 2006년 한국 드라마 '푸른 초원 위에'를 처음 접하고 막연하게 문채원을 닮은 한국인과 결혼하겠다는 꿈을 가졌으나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타지키스탄 기술대학교 항공정비학과 3학년 재학시절에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였다.


아흐로르존은 "타지키스탄인들은 외모로 한국·중국·일본인을 구분하지 못한다"며 "독일 유학을 준비하던 대학 시절에 취미로 일본어를 배우려고 찾아갔다가 건물 층수를 착각해 세종학당을 방문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배우다보니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라는 것을 알게 됐지만 한글의 과학적 창제원리를 듣고서 매력에 빠져버렸다"며 "1개월 뒤 시험에서 초급반 동기생 5명 중에서 1등을 차지하면서 가속도가 붙었고 독일 유학을 포기하고 건국대 항공우주정보시스템공학에 입학했다"고 말했다.


외국인이 한글을 배울 때는 강사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아흐로르존은 "한국어는 과학적 문자 체계인 한글로 표기하지만 언어 체계가 다른 외국인이 배우기 어려운 언어인 것도 사실"이라며 "중간에 포기하려고도 했지만 첫 스승인 최미희 두샨베1세종학당장님을 비롯해 신낙균, 강설지, 김명희 선생님의 헌신적인 가르침이 있었기에 인생의 방향을 바꿀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흐로르존은 한국으로 유학을 온 이후 막연히 동경했던 모습과 한국의 현실이 달랐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이미지는 긍정적이지만 드라마에 나오는 예쁜 여자는 한국에 와서도 TV에서나 만날 수 있었다"며 "중학생 때의 꿈을 포기하고 한글날인 10월 9일에 오랜 친구인 타지키스탄 여인과 결혼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글을 다른 나라에 보급할 때 좋은 교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쉽고 재밌는 콘텐츠로 채워진 교재를 개발해야 한다"며 "한국어 말하기 대회나 세종학당 우수 학습자 한국 초청 사업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아흐로르존은 건국대 졸업 이후 주한타지키스탄 대사관에 특채돼 타지키스탄 홍보 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남한과 북한 모두 타지키스탄과 교류하고 있지만 문화 교류는 사실한 남한만이 하고 있다"며 "앞으로 남한과 타지키스탄이 더욱 긴밀히 교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타지키스탄 공화국은 국토의 95%가 산악지대에 있는 중앙아시아 국가다. 키릴 문자인 타지크어를 사용하는 이 나라는 문맹률이 상당히 낮으며 지난해 경제 성장률이 6%에 이르는 등 빠르게 성장하는 신흥개발 도상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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