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해설 > 사 설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여론/해설
사 설
한상덕의 고금담리(古今談理) (96) : 감사할 인연, 부부
기사입력: 2020/07/12 [12:34]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카카오톡
▲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도서관에 가면 사람들이 전부 공부만 하고 있는 것 같고, 공항에 가면 모두 외국여행만 다니는 것 같다. '맛집'에 가보면 사람들이 전부 외식만 하는 것 같고, 병원에 가 보면 세상은 전부 아픈 사람들로만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안타까운 곳은 불행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넘치고 있는' 곳이다. 병원 말고도 마음을 아프게 하는 곳은 한 둘이 아니다.


얼마 전에는 아버지 교통사고로 병원 응급실을 찾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만원이었다. 어찌 세상에는 이렇게 많은 사고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평소 응급실을 찾지 않고 살아간다는 건 그저 평범한 일상이 아니라 '비범한' 축복이란 생각이 들었다. 간혹 병원에서는 다소 색다른 것을 보고 배우고 느끼곤 할 때가 많다. 이번에도 그런 경험을 했다.


아버지 병상과는 좀 떨어진 곳에서 한 환자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교통사고를 당한 듯한 50대 남성이 붕대를 감고 누워 있었다. 아내가 간호를 해주는데 환자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남편은 팔을 닦아주던 물수건을 빼앗아 땅바닥에 패대기를 치고, 다시 닦아주면 빼앗아 얼굴에다 던지고…. 마침내는 큰소리까지 질렀다. "그렇게 하려면 가…, 가!"


아내는 어쩔 줄을 몰라 하다 더 이상 참지를 못하고, 보란 듯이 일어나 가방을 챙겨 떠나버렸다. 남편은 아내가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싸움에서 대승이라도 한 듯 홱 돌아누워 담요를 뒤집어썼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전전반측, 슬금슬금 주위를 살피는 눈치가 역력했다. "성질 조금만 부리지, 곧 후회하실 걸…." 나 혼자만의 독백이었을까? 지켜보던 모든 이들의 마음속 합창이었을까?


잠시 볼일을 보러 나가는데 벽 뒤쪽에 낯익은 여성 한 분이 앉아 있었다. 조금 전 가방 챙겨 홱 떠나버렸던 그 아주머니였다. 남편 보는 앞에서는 훌쩍 떠나버린 것처럼 보였지만, 알고 보니 떠난 게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먼 곳에서 남편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눈물이 울컥 쏟아질 뻔했다. 내 아내의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내 아내도 저런 적이 있었겠지? 그때 저런 모습이었겠지?


"천 년 동안 수양을 해야 함께 베개를 벨 수 있다.(千年修來共枕眠)"는 중국 속담이 있다. 부부의 인연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대목에서 장윤정의 노래 '초혼'이 생각난다. 가슴을 후벼 파는 내용이다. '부를 초(招), 넋 혼(魂)'. 떠나버린 인생 '짝지'의 혼을 부른다는 뜻이다. 그동안 함께 살아왔던 내 사람, 알고 보면 "스치듯 보낼 사람"이 "어쩌다 내게 들어와" 내 아내가 되고, 내 남편이 된 것이란다. 부부의 만남, 우연인 것 같지만 속담은 아니라고 말한다. 서로가 '천년'의 수양을 통해 만난 것이라고….


우리는 왜 항상 뒤늦게 후회하게 되는 것일까? "따라가면 만날 수 있나, 멀고 먼 세상 끝까지." 아무리 통곡하며 지난날의 잘못을 후회하고 뉘우쳐도 한 번 떠나버린 사람은 그저 "장미의 가시로 남아서 날 아프게" 지켜볼 뿐이다. 노래는 말한다. 후회하기 전에 서로 잘하라고. "누가 모르는가? 잘하려 해도 잘 안 돼 그렇지." 내가 반복적으로 하는 말이다. 이때 세상 이치가 속삭인다. 작심삼일이 되더라도 순간순간 반성하고 결심하다 보면, 실수하고 후회할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나를 불안케 하는 유머 한 토막을 접했다. 오십이 넘어 남자가 가져야  할 것 다섯 가지가 '아내·부인·여보·마누라·당신'이라면, 여자가 가져야할 다섯 가지는 '강아지·딸·건강·친구·돈'이란다. 아내에게 남편의 존재가 없다. 흰머리가 늘어날수록 이런 이야기들이 그냥 들리지 않는다. 남자에게 최고의 재산은 아내라 했던가. 티격태격 응급실에서 다투던 두 부부의 화해가 그려진다. "미안해, 짜증이 나서…." "누가 모르요? 저쪽 손…." 그래, 크게 보아 천생연분이다. 두 분의 행복과 환자분의 쾌유를 빈다.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 뉴스경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