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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덕의 고금담리(古今談理) (97) : ‘슬럼프’의 또 다른 의미
기사입력: 2020/08/11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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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요 며칠 요리학교에서 셰프(chef)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기분이 우울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슬럼프라니 뭐라느니 운운했다. 듣자마자 나의 '꼰대' 본능이 발휘되었다. 귀를 막고 있을 줄 알면서도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들어갔다.


"인생은 등산과 같다. 산 정상을 오를 때, 늘 올라가는 길만 있는 게 아니다. 둘러 가는 길도 있고,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도 있다. 미시적으로 볼 때는 둘러가고 내려가고 있지만, 거시적으로는 분명 정상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내려가고 돌아가는 건 그저 잠깐의 현상일 뿐이지 결코 '하산(下山)'이 아니다. 오늘의 슬럼프는 실력의 퇴보나 도태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멀고 큰길을 가는 과정에서 잠시 숨을 돌리는 그런 의미일 수 있다. 우리 아들 화이팅!"


일을 할 때, 어찌 늘 성공하고 칭찬만 받을 수 있는가? 순간순간 잔꾀 부리지 않고 최선을 다 했다면 그 어떤 결과가 나오든 감사하고 다음을 준비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의 처신이다. 물론, 살다보면 잘 했는데도 평가나 성과가 별로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영원한 족쇄가 되어 인생 끝까지 따라다닐 것이 아님을 이해한다면, 스스로 의기소침하여 자신을 너무 가학하거나 포기심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섬진강 시인으로 유명한 김용택 시인은 어머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그 영향은 어머니가 큰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요 대학자였기에 그런 게 아니라, 삶 속에서의 통찰을 바탕으로 한 체험적인 말씀 때문이었다고 했다. 오늘 김용택 시인의 큰 성취는 당연히 개인적인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역시나 어머니의 긍정적인 인생관과 시적 감성, 그리고 인간미 물씬거리는 표현력 등이 자랑스런 아들 '김용택'을 만들어 놓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고, 한 달이 크면 한 달이 작다.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있다. 넘어지면 일어나고 넘어지면 일어나고 또 넘어지면 일어나 사는 게 인생이다. 넘어져 일어나 살다 보면 무슨 수가 난다." 이야기 속의 "한 달이 크면 한 달이 작다."는 이 말 한마디는 김용택 시인의 어머니다운 위대한 발견이요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인생을 사는데 대단한 통찰이 되고 교훈이 될 수 있는 말이다.


슬럼프에 빠졌다고 풀이 죽은 우리 아들에게 다시 한 번 말해주고 싶다. 미시적 내리막길이 거시적으로는 오르막길이란 사실을…. 산을 오를 때, 잠시 내리막길이라 해서 하산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슬럼프? '인생'이란 등산에서 잠시 긴장된 다리의 근육을 풀어주는 구간이라 생각했으면 좋겠다.


"궁즉통(窮則通)",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있다. 출전은 ≪주역≫이다. 그런데 온전한 원문에는 '변화(變)'라는 연결고리가 하나 더 들어있다. 즉,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라 했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뜻이다. 즉 '슬럼프'는 '변화'를 모색하게 해 주고, 그 '변화'는 또 다른 '문'을 발견하거나 '묘수'를 찾도록 해 준다. 그리고 결국에는 새로 찾은 그 '문'과 '묘수'가 변화된 환경에서 또 다른 경쟁력으로 승화되어 '장수(長壽)'를 누리게 해준다는 이치다.


슬럼프에 처했을 때 취할 행동은 그저 둘뿐이다. 핑계를 찾아 회피하거나 포기해버리는 것, 또는 전열(戰列)을 가다듬어 가일층(加一層) 노력하는 것. 꿈에 대한 간절함이 없는 자는 전자를 택할 것이요, 꿈이 간절한 자는 후자를 택할 것이다. 잠재력은 평소에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진 줄도 모르고 살아왔던 우리들의 잠재력은 어려움에 처했다가, 슬럼프에 빠졌다가 다시 재기할 때 주로 발현되는 경우가 많다. 전화위복의 사례는 늘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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