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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문화원, 남해 유일 의병대장 정익환 행적 발굴
추경화 선생 주도로 광복절에 포상 신청
기사입력: 2020/08/11 [16:56]
유용식 기자 유용식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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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익환 사적비   



진주문화원이 광복 75주년을 맞아 향토문화연구소 주관으로 그동안 묻혀있던 남해출신 정익환 의병대장의 행적을 발굴해 포상신청을 했다. 

 

이번 사업은 추경화(향토사학자) 연구실장 주도하에 이뤄졌다. 수개월동안 정익환(남해군 창선면 출신)의병대장의 의병 활동상과 제적등본, 일제 때 세운 사적비를 찾았다.

 

정익환(1848~1919)의병장은 남해군 창선면 가인리 출신으로 이번 조사 발굴 과정에서 그동안 섬이기 때문에 의병이 나올 수 없다는 선입견을 깬 쾌거다.

 

경남도 경찰부장이 경무국장에게 보고한 문서에 의하면 융희 3년 서기 1909년 9월 20일 폭도(일제는 의병을 폭도라 칭함)수괴 혐의자 인치 관계의 건이란 보고문건에 나온다.

 

▲ 경무국장에게 보고하는 보고문건   


그 당시 지리산, 가야산 일원에서 의병들이 활동하던 때 1909년 8월 16일 “하동헌병대 오장과 보조원 3명이 함께 출동해 폭도 정찰로 도내 남해군 창선면에 대해 창선면의 수령으로 지목되는 정익환(전 이학당 일부의 수괴로 현재 창선에서 神(신)과 같이 존경받는다)설이 있으므로 폭도를 체포하려 할 때 주민 수백명이 정익환의 체포는 안된다 석방하라며 시위를 전개했다. 그러나 헌병 오장과 보조원 3명은 총으로 의병 2명을 총살하고 의병 2명을 중상케 하고, 도주하려는 정익환을 잡아 하동 헌병대로 잡아 구금중이다”고 보고했다. 

 

결국 진주재판소에서 징역형을 받고 3년 만에 사면을 받아 석방됐다.

 

제적등본은 남해군 창선면 가인리 606번지에서 1848년 5월 11일 태어났으며 1919년 3월 12일 별세했다. 정대장은 무과 급제 후 사천 선진성에 파견대장으로 근무하며 대장이란 칭호를 받았다. 사적비는 1940년 4월 주민들에 의해 남해군 창선면 상죽리에 건립됐다. 

 

창선면민들이 순서를 정해 경남도청 앞을 3년간 지켰다고 하며 정익환 대장이 지은 심심가 노래가 전해지는데 2018년 부경대학교 고순희 씨가 지은 논문 ‘도세저항운동과 가사문학’에 실려 있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항일독립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다만 세금납부를 반대한 단체 행동으로 착각한 것을 문화원에서 정확하게 찾아 새로 정리해 포상 신청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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