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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금요단상> 큰 인물도 주변 정세를 잘 파악해야
기사입력: 2020/09/17 [12:54]
권우상 명리학자·역사소설가 권우상 명리학자·역사소설가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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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리학자·역사소설가

큰 인물은 대개가 청소년 시절에 인생의 목표(target)를 세운다. 그다음에는 꾸준히 목표를 향해 부단한 노력을 쏟아붓는다. 나폴레옹은 학생시절 걸핏하면 사고나 치는 거칠게 행동하는 작은 악당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목표가 없다는 것을 알고 진정으로 원하는 미래의 꿈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됐다. "그래, 난 훌륭한 군사 전략가가 될 소질이 있다. 난 이 세상을 지배하는 권력자가 될 것이다." 그날부터 나폴레옹은 권력을 향해 가파른 태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 첫걸음이 16세 때 포병학교에 들어가 장교의 길을 걸었고, 사단장과 포병사령관을 거쳐 35세가 되던 해 프랑스 황제의 권좌에 올랐다. 하지만 황제가 되기 전에는 중상과 모략으로 감옥살이도 했다. 중국의 제후국이 패권을 다투던 춘추시대에 맹(孟)씨 가(家)와 시(施)씨 가(家)는 담장을 사이에 둔 이웃이었다. 맹씨가와 시씨가는 똑같은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두 집안 모두 큰아들은 학문을 닦고, 둘째 아들은 무술을 연마했다. 맹씨가의 두 아들은 장성하자 각자 청운의 꿈을 안고 집을 떠났다. 큰아들은 진(秦)나라를 찾아가 유가(儒家)의 인(仁)의 도(道)를 설파하며 왕에게 유세했다. 그러나 천하를 제패하겠다는 야망에 사로잡혀 있던 진왕(秦王)은 유세를 들어보고 분개했다. 그럼에도 맹씨가의 큰아들은 고집스럽게 밤낮으로 왕을 설득하면서 유세를 펼치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고 말았다. "지금 각 제후국에서는 병력을 증강해 전투를 벌이면서 부국강병을 도모하고 있는 실정이다. 헌데 니놈의 말대로 인(仁)과 의(義)로만 나라를 다스린다면 자멸을 자초하는 게 뻔하지 않는가? 그깟 쓸모없는 이론으로 내 눈과 귀를 막아 나라를 망하게 하려 들다니 이놈이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화가 난 왕은 궁형(宮刑)을 내리고 추방해 버렸다.


한편 무예를 연마했던 맹씨가의 둘째 아들은 위(衛)나라 왕을 찾아가 전쟁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러자 위나라 왕은 말했다 "우리 위나라는 여러 제후국들 가운데 힘이 약한 국가다. 나는 여러 대국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공을 바치는 한편 약소국들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도록 다독이면서 겨우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헌데 지금 나더러 전쟁을 일으키라고 말하면 이는 곧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들어가는 꼴이지 않느냐? 오늘 너를 이대로 보낸다면 넌 분명히 다른 나라에 가서 전쟁을 일으키라고 유세할 것이 뻔하다. 이는 재앙을 자초하는 일이니 너를 이대로 살려 둘 수는 없다" 왕은 그 자리에서 다리를 잘라버리고 강제로 추방했다. 자식들의 입신양명과 출세를 꿈꿨던 맹씨 일가는 뜻밖의 불행을 당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것은 자신의 능력만을 바라볼 뿐 전반적인 주변 정세와 때를 잘 파악하지 못한 채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해서다. 결국은 재능을 썩히거나 아니면 때를 만나지 못해 주변 사람들의 시기심에 인생을 망치고 만다. 시(施)씨가의 두 아들은 장성한 후 각자 자신의 인생을 찾아 집을 나섰다. 학문을 닦았던 큰아들은 제(齊)나라를 찾아가 인(仁)의 도(道)를 설파했다. 마침 인(仁)과 의(義)로 천하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하던 제왕(齊王)은 그를 흔쾌히 받아들여 왕자의 스승으로 삼았다. 한편 초(楚)나라를 찾아간 둘째 아들은 왕에게 전쟁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천하통일의 꿈을 꾸고 있던 초왕(楚王)은 흡족해 하며 당장 그를 장군으로 삼았다. 두 아들이 관직에 나가 출세하게 되자 시(施)씨 일가는 부(富)와 권력을 거머쥐게 됐고, 고향 사람들에게 부러움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사람은 누구나 그의 행위가 시의적절해야만 발전할 수 있고, 정반대일 경우 재앙을 만날 수 있다. 맹씨가와 시씨가의 두 집 아들은 모두 똑같은 학문을 배웠는데도 결과가 달았던 이유는 주변 정세에 순응했는지, 아니면 역행했는지의 차이 때문이다. 이것은 이 세상에 영원토록 옳다고 말할 수 있는 진리다. 큰 인물은 세상 만물과 인간이 하나라는 태생적 동질감을 인정하고, 어떻게 환경과 하나가 돼야 하는지의 문제를 심사숙고한다. 이는 단순히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능을 펼치고, 인생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환경을 선택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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