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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칼럼> 정겹고 아름다운 토박이말 ‘땅이름’ 사랑하자
기사입력: 2020/09/21 [11:51]
박정수 진주육대학교 명예교수 박정수 진주육대학교 명예교수 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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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육대학교 명예교수

땅이름은 원래 고유한 우리말로 돼 있었다. 땅이름은 땅과의 유연성(有緣性)이 아주 강해 쉽게 변하지 않는다. 신라 757년 35대 경덕왕은 나라의 모든 제도를 당나라에 준하여 개편했다. 그래서 우리말로 된 모든 제도를 한자말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우리말의 땅이름을 한자말 땅이름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우리말로 돼 있는 작은 땅이름들은 남아 있다.


산청군 생초에 경호강이 흐른다. 경호강 강기슭에 마을들이 있다. 마을이름은 '널(늘)비, 곰배, 한개, 갯들 등'이 있다. 이 토박이말의 마을이름들은 정말 정겹고 아름답다. 그런데 전국적으로 토박이말로 된 소박한 마을이름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우리말의 마을이름 자리에 한자말 마을이름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일본 강점기인 1914년과 1918년에는 우리나라의 행정 구역을 대대적으로 변경했다. 그래서 면(面)·리(里)를 병합하게 됐고, 자연히 우리말의 땅이름이 없어지기도 했다. 즉 고유한 땅이름을 한자말 이름으로 바뀌게 됐다. 이때부터 '널(늘)비, 곰배, 한개, 갯들 등'의 이름을 쓰지 않기 시작했다. 우리는 안타까운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다.


생초에 '널(늘)비' 마을의 이름이 있다. 산청 지역에서는 'ㅡ'와 'ㅓ' 두 소리를 구별하지 못 한다. 그래서 'ㅓ' 소리를 표기해 '널비'로 쓴다. '널비' 마을은 생초면(生草面)의 중심지역이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불러준 토속적인 우리말 이름 '널비' 대신에, 지금은 한자말 생초(生草)의 이름으로 바꿔 부르고 있다. 


'널비'의 어원(語原)을 살펴본다. '널비'는 '너르다'와 '배(舟)'의 두 말이 모인 땅이름이다. 곧 '너르(←너른)+배'의 '너르-'에서 'ㅡ'가 없어지면서 '널배'로 됐다. '널+배'의 '배'에서 'ㅐ'는 'ㅣ'로 바뀌어 '널비'가 됐다. 이 지역에서는 'ㅐ'와 'ㅔ'를 구별하는 발음이 어려워 'ㅐ'가 'ㅣ'로 바뀐 경우다.


'널비' 이름에 대한 유래가 있다. '마을의 모습이 배(舟)의 모양을 닮았다'는 배설(舟穴)이다. 곧 '널비' 마을은 큰 배가 바다에 떠 있는 모습이다. 따라서 '널비'의 어원은 '너르(←너른)+배'의 설명이 충분히 가능하다. 실제 '널비(생초)'에는 큰 홍수가 일어나 경호강의 수량이 많아지고, '널비' 마을 좌우의 '노은천'과 '계남천' 지류의 물이 경호강 본류와 합류하면 지류의 물은 역류를 한다. 그러면 '널비(생초)' 마을은 잠기게 된다. 이런 현상은 되풀이 됐다. 홍수 때에, 필봉산 중턱에서 '널비(생초)'를 바라보면 '큰 배가 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곧 '널비' 이름은 '너른 배' 모양에서 붙여졌다.


거창 신원, 함양 수동과 유림의 사람들까지도 '널비' 5일장에 오갔다. 사람들은 정겨운 토박이말로 "널비 장에 가자" 했을 것이다. 지금 생초는 '늘(널)비 식당'의 간판만 있고, '널비'의 말의 사용은 거의 없다. 아쉽다.
경호강의 들판에 우리말 '곰내'의 마을이름이 있다. 지금은 '곰내'를 한자말인 '상촌(上村)'과 '하촌(下村)' 이름으로 거의 바꿔 부른다. 어원으로, '곰내'는 '굽다'와 '내(川)'의 두 말이 합친 이름이다. '곰배'는 '강물이 한 쪽으로 휘어 흐른다'인 '굽다'의 어간 '굽-'과 강물 '내'가 합쳐 '굽내'가 됐다. '굽내'는 자음동화 돼 '굼내'로, '굼내'는 모음조화 돼 '곰내'로 변화됐다. 그래서 '곰내' 마을이름이 됐다.


지리산 마천에서 흐른 엄천강과 덕유산에서 발원한 남천강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엄천강과 경호강이 연결된 물길은 'ㄱ' 자의 모양을 보인다. 물길 모양에서 마을이름을 착안한 것 같다.  '곰내' 이름은 냇물이 굽어 흐르는 모양에 만들어졌다. 우리 민족의 지혜는 정말 훌륭하다. 또 '큰 강'의 토박이말 이름 '한개'는 '대포(大浦)'로, '강가의 들'의 '갯들'은 한자말 '포평(浦平)'로 바뀌었다.


아깝게도 토속적인 우리 땅이름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가슴 아프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우리말인 땅이름을 사랑해야 한다. 산청군에서는 생초에 박항서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가칭 '생초 박항서 기념관'이 아닌 '널비 박항서 기념관'의 '널비' 이름이 담긴 기념관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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