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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커피를 예찬한 작가와 예술가…그들의 유별난 커피사랑에 빠지다
기사입력: 2020/10/22 [18:30]
윤구 기자/뉴스1 윤구 기자/뉴스1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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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메리카노 커피 (뉴스1 제공)



소설가 발자크 이름 딴 카페·커피 브랜드 세계 곳곳 있어
나폴레옹이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한 '세인트 헬레나 커피'
매일 커피콩 60알을 갈아서 원두로 마셨다는 베토벤 일화
바흐 커피 소재 희극 '칸타타'…유머스럽게 커피사랑 드러내


'바디감' 커피 맛을 설명할 때 쓴맛, 산미(酸味), 로스팅과 함께 나오는 용어다. 바디감(body感)? 알쏭달쏭하다. 묵직함이라는 뜻 같은데, 꼭 이렇게 표기해야만 하나? 국어학자가 대체할 우리말을 찾아 주면 좋으련만, 커피를 즐기는 데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가 있다. 나는 커피 애호가가 아니다. 체질적으로 커피 애호가가 될 수 없다. 오후에 한 잔 이상을 마시면 밤에 잠을 자지 못한다.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를 3분의 1 정도를 남겨야만 숙면에 지장이 없다. 가끔씩 오후에 '정량'을 망각하고 머그잔의 바닥을 볼 때가 있는데 이런 날은 어김없이 전전반측이다.

 

■글쓰기 위한 오후 시간…목마른 사람처럼 커피 찾아

 

전업 작가에게는 '루틴'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장 컨디션이 좋은 시간대에 그날의 '예상 분량'을 써내려면 생체 리듬이 일정해야 한다.


숙면이 필요충분조건이다. 잠을 제대로 못 자면 루틴이 깨진다. 커피의 향미(香味)를 모르는 내가 목마른 사람처럼 커피를 찾을 때가 있다. 오후 시간이다. 오전에는 커피에 의존하지 않고도 작업을 할 수 있지만 점심 먹고 나서는 힘들다. 달콤한 낮잠의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다. 낮잠을 자면 숙면을 못해 리듬이 흐트러진다. 오후에 3시간 이상 글을 쓰려면 커피의 마력에 의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저런 차(茶)도 음용해보았지만 각성 효과 면에서 커피를 능가하는 것을 찾지 못했다. 중세의 수도사들이 집중력을 요하는 필사(筆寫) 작업을 하기 위해 커피를 마신 것처럼 명징한 집중력을 유지하는 데는 커피만 한 것이 없다. 따뜻한 커피가 뇌혈관의 실핏줄을 타고 전두엽에 퍼져나가면 뿌연 안개 덮인 하늘이 비 갠 아침의 가을 하늘처럼 청명해진다. 그러면 마치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은 육상 단거리 선수처럼 노트북 자판에서 손가락이 보이지 않는다.


손꼽히는 동남아 전문가인 지인으로부터 몇 년 전 베트남 원두커피를 선물 받았다. 베트남 최고의 커피라는 '뚜룽누엔' 커피다. 그런데 커피 케이스가 특별했다. 직사각형 커피 상자의 3면에 걸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루트비히 폰 베토벤, 요한 세바스찬 바흐, 오노레 드 발자크, 어니스트 헤밍웨이 5인의 초상화와 그들이 남긴 커피 예찬의 에스프리를 짤막하게 소개했다.


커피 마니아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일만한 인물들이다. 나폴레옹의 커피 예찬은 이렇다. '커피 없는 정치는 핵심을 잃게 돼 구린내가 난다'

 

▲ 정문 담장에서 내려다본 발자크 집. 현재는 기념관으로 사용 중이다. (뉴스1 제공)   


■소설가 발자크…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커피 예찬론자

 

이들 중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커피 예찬론자가 프랑스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1799~1850)이다. 소설가의 이름을 딴 카페, 커피 브랜드, 커피 종류가 세계 곳곳에 있다. 여기서 '소설의 교과서'로 불리는 발자크의 루틴을 잠깐 살펴보자.


커피가 어느 길목에서 등장해 어떻게 기능했는지가 궁금해진다. 그는 저녁을 먹으면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떠들썩하고 흥청거리는 파리의 밤이 숨을 죽이기 시작하면 잠에서 깨어 서서히 작업을 위한 시동을 걸었다. 파리지앵들이 잠자리에 들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진한 커피를 마셨다.


<자정쯤, 하인은 여섯 개의 촛대에 불을 켜서 방안으로 가져온다. 그리고 창문에 두꺼운 커튼을 친다. 일체의 빛도 소음도 틈입할 수 없는 글 감옥이 완성된다. 그는 작은 책상에 앉는다. 파리지엥이 침대에서 꿈을 꾸려 할 때 소설가는 책상에서 펜을 들었다. 책상에는 원고지 뭉치, 까마귀 깃털 펜, 잉크병, 메모용 수첩만이 놓여 있다. 한번 상상력에 불이 붙으면 발자크는 몽롱한 상태에서 산불이 바람을 타고 번져나가듯 미친 듯이 글을 써내려갔다. 글이 생각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화장실에 가거나 커피를 끓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날 때를 제외하고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파리가 사랑한 천재들-문인편')


당대의 작가들이 시가를 즐겼지만 발자크는 커피에 탐닉했다. '발자크 평전'을 쓴 전기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발자크에게 커피는 검은 석유였다'고 비유했다. 커피를 위장에 부어야 인간 창작 기계가 움직였고, 인쇄물을 찍어내듯 무섭게 원고를 쏟아냈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출판사 직원이 문을 노크했다. 밤새 쓴 원고를 가져가기 위해서였다.


출판사 직원의 다른 손에는 그 전날 가져간 원고의 교정쇄 뭉치가 들려 있었다. 커피 애호가들이 주기도문처럼 외우는 발자크의 커피 예찬론의 한 대목을 읽어본다.


'커피가 위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면 모든 것이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생각은 전쟁터의 기병대처럼 빠르게 움직이고, 기억은 기습하듯 살아난다. 인물들은 옷을 차려입고, 원고지는 잉크로 뒤덮인다…'


발자크는 커피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었다. 밥은 굶어도 커피는 마셨다. 발자크는 빚쟁이에 쫓겨 야반도주를 여러 번 했다.
집을 얻을 때 빚쟁이의 기습에 대비해 정문 외에도 비밀 통로를 반드시 마련해 두었다. 이 비밀통로는 애인에게만 알려주었다. 빚쟁이가 "쾅쾅쾅" 문을 두드리는 다급한 상황에서도 그가 반드시 챙겨 간 것이 도자기로 만든 커피포트였다.

 

▲ 나폴레옹 캐리커처와 커피 어록   

 

■'60'은 베토벤의 커피 넘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48~1825). 육지에서 1900㎞ 떨어진 대서양의 고도 세인트 헬레나에 유배되어 있을 때 그를 위로한 것은 커피였다.


지도상에도 거의 나오지 않는 작은 섬이지만 세인트 헬레나에서는 놀랍게도 아라비카 커피가 재배되고 있었다. 나폴레옹 사후 황제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한 '세인트 헬레나 커피'가 유명세를 탔다. 세인트 헬레나 커피는 아주 비싼 값에 거래된다. 무엇보다 수량이 적은 데다 물류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전쟁의 천재 나폴레옹은 원정(遠征)에 나설 때도 반드시 보급품에 커피콩을 포함시켰다. 이로 인해 병사와 장교들은 전투가 끝나고 잠깐의 휴식 중에도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나폴레옹이 커피를 배운 곳은 파리 중심가 프로코프(Procope) 카페였다.

 

▲ 나폴레옹을 비롯, 당대 지성들이 이용했던 프로코프 카페 전경 (뉴스1 제공)   


1686년 파리에서 최초로 문을 연 이 카페는 금방 명성을 얻었다. 당대의 지성인 볼테르와 벤저민 프랭클린의 단골이었다. 볼테르는 프로코프에서 하루 평균 초콜릿 커피 40잔 이상을 마신 것으로 유명하다. 나폴레옹은 초급 장교 시절부터 시간 날 때마다 이 카페에 와서 커피를 마셨다. 나폴레옹은 프로코프에서 커피와 지성을 배웠다. 그가 전쟁 중에도 진중(陣中)도서관을 운영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커피 예찬을 남겼다.

"나를 정신 차리게 하는 것은 진한 커피, 아주 진한 커피다. 커피는 내게 온기를 준다"


음악가 중에서 커피와 관련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이다. 빈에 커피가 들어온 것은 1684년. 오스만 투르크 군대와 전쟁(1683년)을 치른 다음 해다. 투르크군이 퇴각하면서 버리고 간 보급품에서 나온 까만 알갱이가 시초가 됐다.


천재는 대체로 성격이 예민하고 까다롭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베토벤은 음악의 수도 빈에 35년을 살면서 셋집을 자그마치 30곳 이상 옮겨 다녔다.


본인이 싫증을 느낀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집주인과의 갈등 때문이었다. 보통 사람의 눈에 천재 작곡가의 행동은 괴팍하게 보였을 것이다. 베토벤의 이런 성격은 커피와 관련해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베토벤은 아침마다 원두 60알을 직접 골라내 커피를 만들어 마시곤 했다. 어떤 경위로 60알을 정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확히 60알을 지켰다.
60알은 무게 8~10g 정도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뽑는 데 사용되는 양과 일치한다고 한다. 그래서 '60'은 베토벤의 커피 넘버로 굳어졌다.

 

▲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 광장의 바흐 동상 (뉴스1 제공)


■'커피 칸타타'를 작곡한 '요한 세바스찬 바흐'

 

커피 하면 요한 세바스찬 바흐(1685~1750)도 빠지지 않는다. 바흐는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에서 27년을 오르간연주자로 복무했다. 라이프치히는 교통의 요지로 독일에서 일찍부터 상업도시로 발달해 박람회가 자주 열렸다.


라이프치히는 유럽 도시들 중 카페가 일찍 생긴 도시로 꼽힌다. 커피하우스 '춤 카페 바움'은 1566년에 문을 열었다. 유럽에서 두 번째로 역사가 오래된 카페다.


바흐는 '커피 칸타타'를 작곡했다.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하는 아버지와 커피 없이는 못 산다고 버티는 딸. 커피를 소재로 희극 칸타타가 작곡됐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당시 라이프치히 사람의 일상에서 커피가 차지하는 위상을 짐작할 수 있겠다.


독일어를 몰라도 '커피 칸타타'를 듣다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바흐는 커피와 관련 이런 말을 남겼다.
"모닝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나는 단지 바싹 구워진 양고기 한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글·사진 제공 뉴스1=조성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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