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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의 평생 ‘무한탐구(無限探求) ‘정신…초일류 삼성 만들다
기사입력: 2020/10/28 [18:34]
윤구 기자/뉴스1 윤구 기자/뉴스1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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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반도체 30주년을 맞아 기념 서명을 하고 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삼성전자 제공/뉴스1)   



‘무한탐구’ 부친 호암 이병철 휘호…평생 경영이념 삼아
‘궁극 달할 때까지 찾아라’… 반도체 사업 스스로 연구 거듭
과감한 결단력과 통찰력…초일류 기업 삼성의 반도체 신화 탄생
고교시절부터 사람 보는 안목 뛰어나…인재 중시 여김 경영철학

 

 ‘무한탐구’(無限探求)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의 휘호인 이 네 글자를 지난 25일 별세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평생 마음에 새기면서 실천하려 노력했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은 학창 시절 말수가 적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회상하는 이건희 회장은 누구보다 깊은 사고를 했던 인물로 여기에는 성장의 배경도 적지 않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성장기 남자아이들에게는 형제와의 관계 형성이 많은 영향을 미치는데 1942년 생인 이건희 회장은 1931년생인 첫째 형 이맹희 전 CJ그룹 회장과 1932년생인 이창희 전 새한그룹 회장 등과는 모두 10살 이상 차이가 나 교류가 많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건희 회장이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 ‘줄곧 혼자였던 것 같다’고 회상하는 까닭일 것이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1953년 한국전쟁 휴전 뒤에는 일본으로 유학, 12살의 나이에 타지 생활을 시작하는데 당시 느꼈을 감정은 삼성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은 이후인 1989년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 잘 나타난다.


 이 회장은 인터뷰에서 “나면서부터 떨어져 사는 게 버릇이 되어 성격이 내성적이고, 친구도 없고, 술도 못 먹으니 혼자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혼자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생각을 해도 아주 깊게 하게 됐다. 가장 민감한 때에 민족차별, 분노, 외로움, 부모에 대한 그리움, 이 모든 걸 다 느꼈다”고 어린 시절을 회고했다.

 

▲ 환하게 웃고 있는 이건희 회장의 유년 모습 (삼성전자제공/뉴스1)   


■소년시절 일본 유학 때 많은걸 배우고 연구…그의 경영스타일 영향 미쳐
 
일본 유학 생활은 소년 이건희에게는 힘든 시기였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연구한 시기로, 직원 스스로 연구하고 더 나은 방법을 찾길 원했던 그의 경영스타일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삼성의 ‘무한탐구’의 구자는 연구할구(究)가 아닌 구할구(求)자를 쓴다. 학자적인 탐구가 아닌 기업의 입장에서 ‘求’ 자를 쓴 것은 곧 궁극에 달할 때까지 방법을 찾고 구하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은 사업 현안은 사장들에게 권한을 위임했지만, 신규 사업 진출과 같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스스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결정했다. 그는 서적, 논문, 영상 등 방대한 양의 자료를 구해 읽어보고 전문가와 토론하며 지식을 습득한다. 이후 홀로 집무실에 틀어박혀 장고하고 생각이 미처 정리되지 않았다면, 다시 전문가와 토론 등을 통해 지식이 부족한 부분을 보충했다.

 

1982년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 진출할 당시 삼성 경영진과 일본 지인들은 ‘삼성의 기술력으로는 역부족’이라며 반대했지만, 이건희 회장만은 ‘반도체 사업 자체가 태동기로 해볼 만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부친 이병철 회장을 설득했는데 여기에는 무한탐구 정신 배경에 있다. 이 회장은 당시 반도체 투자에 나서며 “언제까지 그들(미국, 일본)의 (반도체) 기술 속국이어야 하겠느냐.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 삼성이 나서야 한다. 제 사재를 보태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이렇게 시작됐다.

 

▲ 1980년 고(故) 이병철 선대 회장(왼쪽)과 함께 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삼성전자 제공/뉴스1)   



■과감한 결단력과 통찰력이 삼성 반도체 신화 일궈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 사업 진출 결정 뒤에는 반도체 기술자들을 만나고 서적을 읽으며 이 분야를 연구한다. 삼성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고 한다. “반도체 사업 초기는 기술 확보 싸움이었다. 일본 경험이 많은 내가 거의 매주 일본으로 가서 반도체 기술자를 만나 그들로부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배우려 노력했다. 재계 관계자는 “오늘날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이건희 회장의 과감한 결단력과 사업 성공을 위한 핵심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있었기 때문이다”며 “무한탐구를 경영이념으로 삼아 평생 이어온 노력은 많은 경영인이 본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내성적이지만 엉뚱했던 소년…‘초일류’ 삼성 만들었다

 

1942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외로운 아이였다. 출생 당시 선친인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한창 사업을 일으켜 운영하던 때였고, 이 회장은 젖을 떼자마자 어머니의 품을 떠나 경남 의령의 할머니 손에서 세 살까지 자랐다. 선친의 사업 확장에 따라 여섯살이 돼서야 서울로 이사해 온 가족이 모여살게 됐지만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피난살이를 다녔고, 초등학교도 일본 생활을 포함해 다섯 번이나 옮겨다녔다.

 

일본에서 소학교를 다닐 때는 큰형(이맹희 전 CJ그룹 명예회장)·작은형(이창희 전 새한그룹 회장)과 함께 자취했지만, 각각 나이 차이가 11세·9세로 커서 어울리기 어려웠다. 일본에서 유학하던 3년 동안 이 회장은 책과 영화에 빠져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환경 때문인지 이 회장은 어릴 때부터 말수가 적은 내성적인 성격이었고 혼자 사색하는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 부친인 이병철 삼성창업주와 기념 촬영한 이건희 회장 유년모습 (삼성전자 제공/뉴스1)    

 

■고교 학창시절부터 사람 보는 안목 뛰어나…인재중시 경영 철학

 

 시대를 내다본 에피소드는 또 있다. 하루는 이 회장이 홍 전 부의장에게 일본의 소학교 교과서를 건네면서 ‘일본어 좀 배워놔라. 너 정도면 두어 달만 해도 웬만큼 할 거다’고 말했다. 당시 고교생들에겐 반일 감정이 팽배했던 시절이라 ‘그걸 뭐하러 배우냐’고 묻자, 심드렁하게 “일본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봐야 그 속에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찾게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홍 전 부의장은 “솔직히 그때는 건희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도 고등학교 1학년짜리 입에서 어떻게 그런 말이 나왔는지 놀랍다”고 말했다.

 

특히 이 회장에 대해 사람을 보는 안목이 남달랐다고 소개했다. 홍 전 부의장은 학과 공부에는 별 뜻이 없던 이 회장에게 무슨 궁리를 하며 사느냐고 묻자 “사람 공부를 제일 많이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 무렵 삼성의 한 임원이 내쳐지자 이 회장은 아버지에게 그 임원의 복권을 건의했고 결국 다시 불러들였다. 이병철 회장도 고등학생이던 이 회장의 사람 보는 눈을 인정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홍 전 부의장은 2003년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그분(복권된 임원)은 나중에 삼성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고 전했다.


 사안을 보는 시각이 남달랐다는 에피소드는 또 있다. 1960년대 중반 일본 와세다대에 유학 중이던 이 회장은 방학을 맞아 귀국해 대학생이던 홍 전 부의장을 만났다. 이 회장이 운전하던 차가 제2한강교(양화대교)를 지나자 홍 전 부의장은 “봐라, 이게 우리나라 기술로 만든 다리”라고 자랑했다. 다리를 본 이 회장은 “이 생각없는 놈아, 통일이 되면 한강으로 화물선이 다닐 것 아이가. 그러려면 다리 가운데 있는 교각은 간격을 더 넓게 만들었어야지!”라고 말했다. 홍 전 부의장은 “실로 괴이한 두뇌의 소유자였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연세대 상학과(경제학과)에 입학했지만 ‘외국으로 나가라’는 선친의 지시에 자퇴하고 일본 와세다대와 미국 조지워싱턴대로 떠났다. 이후 유학을 마치고 1966년 동양방송에 입사한 뒤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 1979년 삼성 부회장을 거쳐 1987년 회장이 돼 현재 삼성그룹의 초석을 닦았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25일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故人)은 부친인 이병철 삼성창업주 별세 이후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라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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