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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3·1절을 기리며 진주 허만정家의 대구간국을 추억
기사입력: 2021/03/02 [13:05]
현암 최정간(매월다암원장, 차문화 연구가) 현암 최정간(매월다암원장, 차문화 연구가)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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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암 최정간(매월다암원장, 차문화 연구가) 

근세 이후 진주 정신의 출발점을 꼽자면 1862년(철종 13)에 삼정의 문란과 지역탐관오리 횡포에 맞서 분연히 일어선 진주농민봉기라 할 수 있다. 진주농민봉기는 동학 창시자 수운 최제우가 지은 ‘검가(劍歌)’와 동학농민혁명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진주인들은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도 조선국권 침탈에 대항해 의병 운동과 국체보상운동을 펼쳤고, 1919년 3·1독립만세운동과 형평사운동을 주도했다. 근대적 민권의식과 진주정신을 한층 더 고양시켜나갔던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식민지란 어려운 대내외 환경에서 청부(淸富)를 쌓으며 지역민들에게 사회적 나눔을 실천한 민족경제인들을 중심으로 민족 자본가들이 태동했다. 대표적으로 100여 년 전 근대 여명기, 진주 지방의 맑은 대부호인 효주 허만정(曉州 許萬正, 1897-1952) 집안이었다. 허만정家는 당시 경주 최부잣집과 함께 한국에서 대표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청부의 가문이었다.
 
◇GS그룹의 시조(始祖)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 김해 허씨 집성촌은 오늘날 한국 경제의 중심축이자 글로벌 기업 GS그룹의 발생지다. GS그룹의 창업자는 효주 허만정이지만 시조는 지신정 허준(止愼停 許駿, 1844-1932)이다. 지신정은 가락국의 후손 김해 허씨의 26세손이며 영남의 유학자인 한재(寒齋) 허화임과 모친 진양 하씨 사이에 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경능(逕能)이요, 호는 지신정으로 영남의 대유학자 연재 송병선의 고제(高弟)였다. 진주교육대학교 박기용 교수의 연구 논문에 “지신정 허준 선생은 일찍이 성리학에 관심을 두었고 구한말에는 잠시 중추원의관 승지 관직을 받았으나 금방 사직했고, 일제강점기에는 재산을 육영사업과 나눔 사업으로 사회 환원을 시도해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인물이다”라고 언급됐을 만큼 행동으로 몸소 실천하는 진실한 성리학자였다. GS그룹이 탄생되기까지는 만석거부 지신정의 깊은 사유와 사회적 나눔이란 실천적 행동철학이 아들 효주 허만정에까지 이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허만정은 부친의 정신을 이어받아 진주 지역의 주민 구휼사업과 진주여자고등학교를 설립했고, 일제강점기하에 상해임시정부에 백산무역상회를 통해 많은 자금을 독립운동을 위해 지원했다. 광복 후에는 우리 민족의 자립경제를 위해 구인회와 함께 럭키 금성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독립의 염원이 담긴 대구간국의 맛
 효주 허만정은 덕과 인품, 학문를 두루 갖춘 사업가이자 교육가이며 독립투사였다. 일제강점기 그의 고택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내방객으로 항상 붐볐다. 아마도 당시 과객 대접이 후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허만정家의 최고 VIP 내방객으로는 경주 최부잣집 12대 종손 문파 최준(汶波 崔浚, 1884-1970)이 있었다. 1919년 백산 안희제, 최준, 허만정은 의기투합해 기존에 운영하던 백상상회를 무역주식회사로 발전시켜 재창업했다. 백산상회는 표면적으로 무역회사였지만 비밀리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지원하던 곳이었다. 진주의 허만정과 경주의 최준은 서로가 의기투합해 조국 독립이란 대의 앞에서 백산무역상회를 운영했다. 이들의 발자취는 가히 후세들의 모범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주의 최준은 때때로 진주 허만정家를 방문했고, 진주의 허만정은 경주 최준가를 상호방문하며 신뢰를 유지해나갔다.


 경주 최준은 3·1 운동 이후 진주 허만정家 사랑에 머물면서 갓 탄생된 상해임시정부에 자금 지원과 백산무역상회 운영에 관해 의논했다. 최부잣집 후손의 증언에 의하면 거제도와 통영 앞바다에서 잡은 큰대구를 반건조해 무를 넣고 끓인 대구간국의 맛을 어찌나 맛있게 먹었었던지, 경주에 돌아와서도 그 맛을 잊을 수 없었다고 했다. 당시 겨울에는 거제와 통영에서 잡은 많은 양의 대구들이 트럭으로 허만정家에 운반됐다고 한다. 허만정家에서는 이 대구들을 그늘에 반건조해 안주인의 맛깔스럽고 정성이 담긴 간국으로 끓여 독립투사들을 비롯한 많은 내방객들에게 대접했다고 한다. 원래 사랑손님들이란 간밤에 과음하기 마련이어서 이튿날 아침 시원한 간국으로 해장을 하면 숙취가 해소되고 그 맛은 허만정家에서만 볼 수 있는 천하일미이자, 손님들과의 우정의 증표였던 것이다. 세월은 흘러 대구간국에 담긴 진주 허만정家와 경주 최부잣집과의 조선독립운동에 관한 이야기는 잊혀지고 말았다. 금년은 3·1운동 102주년이 되는 해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누군가에 의해 허만정家의 대구간국이 역사와 살아 숨 쉬는 진주 향토음식 문화로 부활해 그 의미와 맑은 맛을 많은 이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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