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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미술사의 흐름을 한눈에 보는 ‘회화소록(繪畵小錄)’
기사입력: 2022/06/29 [14:48]
구정욱 기자 구정욱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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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회화역사에 관한 첫 연구이자 기록…‘지역 미술사’ 정립

황영두·박생광·설창수·이성자·정문현 등 13인의 작가 작품 전시

진주목문화사랑방 주최, 이성자미술관에서 7월 9일까지 선보여

 

천년고도이자 서부경남의 맹주인 진주시는 오랜 역사 만큼이나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뛰어난 인물의 배출과 함께 수준 높은 문화예술 작품들로 정평이 나 있는 대표적 문화예술의 중심도시다. 하지만 1925년 경남도청의 부산 이전 이후 경남의 중심에서 서부경남의 중심으로 위상이 약화되면서 역사 속의 강렬했던 진주의 모습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으며, 이에 새로운 민선시장들은 위대한 진주의 부활과 새로운 천년의 도약을 외치며 희망의 발걸음을 내디뎌 왔다. 이런 일련의 흐름 속에서 사단법인 ‘진주목문화사랑방’을 위시한 지역문화예술계가 나서, 뜻있는 지식인들의 중지를 모아 진주를 중심으로 한 서부경남 문화예술의 부흥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래에서 본지는 진주목문화사랑방의 도움을 받아 ‘진주 미술사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회화소록(繪畵小錄) 전의 의미와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는 시간을 마련해 시민들에게 소개한다. <편집자 주>

 

▲ 진주미술 연표를 설명 중인 이상호 회장     


◇진주 미술사 정립전 ‘회화소록’

 

진주목문화사랑방은 진주시의 후원을 받아 6월 28일부터 7월 9일까지 진주시립 이성자미술관에서 ‘회화소록’ 전을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는 진주 미술 가운데 회화의 역사에 관한 첫 번째 연구이자 기록으로서 지역의 미술사 정립을 위해 마련됐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진주는 역사적으로 조선시대 詩·書·畵 삼절이라 불렸던 강희안을 비롯해 당대 뛰어난 문인화가들을 배출하며 문화적 위상이 그 어느 도시보다 높았다. 또한 근대에 들어서는 한국 채색화의 지평을 넓힌 박생광의 고향이자 최초의 여성 추상화가 이성자가 학창시절을 보낸 곳으로 근·현대 미술사에 있어 중요한 지점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미술의 역사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기술되면서 지역미술의 경우 몇몇 대표작가들의 활동이 기록됐을 뿐 미술사적 연구와 조명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에 진주목문화사랑방의 ‘회화소록’ 전을 통해 단순한 지역작가 조명의 차원을 뛰어넘어 체계적 연구와 기록을 위한 출발점이자 새로운 시각의 단초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지역문화예술계의 노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 황영두 作 세한삼우 1944 종이에 수묵     


◇서양화의 유입과 지역화단의 형성

 

1920년을 전후해 진주는 일본인 도화 교사들이 들어오면서 경남에서 가장 먼저 서양화 교육이 시작됐다. 비록 일본에 의해 수동적 방식으로 유입됐으나 곧 본격적인 미술공부를 위해 스스로 일본 유학을 선택하는 능동적 현상이 촉발됐다. 즉, 이 무렵 박생광이 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에 입학했으며, 강신호가 동경미술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이어서 효석 조영제, 고운 홍영표 등이 일본 유학길에 오르면서 서양의 근대적 양식을 수용했다. 이와 더불어 일제강점기 지역 부호와 사찰 주지들이 시인묵객을 후원하면서 많은 작가가 진주에 연고를 맺고 지역작가와 교류하면서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대표적으로 추사체 행서의 대가 성파 하동주가 지역 대표 서화가인 매산 황영두, 동초 황현룡 등과 교우했고, 소정 변관식 등이 박생광을 비롯해 벽산 정대기, 운전 허민, 풍곡 성재휴 등과 교류하며 민족적 자각과 예술에 관한 논의들을 이어갔다.

 

◇문화예술단체의 설립과 창작활동

 

해방 후 진주에서는 문화예술단체들이 차례로 설립되며 지역화단이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먼저 1945년 파성 설창수, 박세재, 박생광 등을 중심으로 진주 문화예술운동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문화건설대’가 조직됐다. 이어 정치적 논란을 빚은 1946년 ‘조선미술동맹’ 진주지부 이후 다시 문화건설대를 바탕으로 1947년 ‘진주미술인동호회’가 결성되고, 이는 1948년 ‘진주미술협회’의 전신이 된다. 조영제가 초대 지부장을 맡은 진주미협은 이후 지역 미술문화의 발전을 도모하는 기반이 됐다. 같은 시기 부산을 중심으로 부산·경남 화단이라 부를 수 있는 부산·진주·마산·통영 지역을 아우르는 미술단체들이 잇따라 설립됐으며, 여기에 조영제, 홍영표 등이 적극 참여했다. 이후 조영제는 ‘경상남도 미술협회’ 초대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처럼 활발한 단체 설립과 대외 활동은 진주가 경남의 대표적 화단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특히 홍영표는 진주사범을 비롯한 여러 학교에서 후진 양성과 서양화 보급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정린, 정문규, 강정완, 박덕규, 하종현 등이 당시 진주사범 제자들이다.

 

▲ 조영대 作 서장대 연대미상 캔버스위에 유채     


◇지방종합예술제의 효시 ‘영남예술제’

 

해방 후 활발히 전개되던 진주 미술계의 상황이 한국전쟁으로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영남예술제’(1959년 개천예술제로 명칭 변경)와 함께 그 맥이 이어지게 된다. 영남예술제는 1947년 국내 최초의 문단인 ‘영남문학회’를 창설한 설창수가 진주의 예술인들과 함께 1949년 11월 22일 처음 개최했으며, 창립멤버로 박생광, 조영제, 성재휴, 홍영표 등의 작가들이 참여했다. 1951년 제2회부터는 미술인과 문학인이 함께하는 ‘시화전’이 시작됐고, 제5회는 부산미협과 진주미협이, 제6회는 마산미협과 진주미협이 공동으로 개최했다. 제9회부터는 해외동포 학생들의 작품들이 선을 보였고,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도상봉, 김환기, 박수근, 양달석 등이 초청되는 등 행사의 규모가 점점 확대되면서 전국적인 종합예술제로 거듭났다.

 

◇중앙으로의 진출과 해외 현대미술의 수용

 

영남예술제의 성황은 중앙화단 작가들과의 교류로 이어지면서 지역미술계에 의미있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1954년 박생광의 초청으로 진주에 체류한 이중섭이 카나리아 다방에서 개인전을 열고, 20세기 걸작으로 평가받는 ‘진주 붉은 소’를 그려 박생광에게 선물한 사실은 한국미술사에서는 유명한 일화다. 진주미술이 지역성에 함몰되지 않고 중앙화단과 타지역의 흐름을 수용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함으로써 화단의 전성기를 가져온 영남예술제는 1983년 경상남도 종합예술제로 지정돼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한편 진주미술의 전개양상 가운데 주목할 대목 중 하나는 60년대 이후 두드러진 중앙화단으로의 진출과 서구권 해외유학과 더불어 나타난 현대미술의 수용이다. 일방적 수용이나 미술사조에 의한 구분이 아닌 여러 작가가 어울려 각자의 작품을 소개하는 합동전 형태로 이뤄진 점이 특징적이며, 이것은 화단이 아닌 작가 개인 중심의 활동으로 전개되는데 영향을 주기도 했다. 그 결과 진주 출신의 많은 작가들이 타 지역이나 중앙화단으로 나가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게 됐다. 

 

▲ 회화소록전 작품에 대한 소개와 안내    


◇이상호 회장 “지역미술사 정립하는 전시회”

 

이번 회화소록 전을 주최한 사단법인 진주목문화사랑방 이상호 회장은 전시회가 열린 28일 본지와의 현장 인터뷰에서 “전시된 작품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문외한이 봐도 저절로 감탄하게 만드는 매송은 고종황제 어전에서 그린 황영두 작가의 작품이다. 이번 ‘회화소록’은 기존의 작품 한두 개를 걸어 놓는 그런 전시회가 아니라 지역미술사를 정립하는 보기드문 일이며, 기획도 프랑스 파리4대학 출신의 식견과 능력을 갖춘 분이 맡았다. 진주에서 작품활동을 하던 유명작가들의 작품이 전시장을 찾는 시민들께 좋은 볼거리와 영감을 제공할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한편 전시장을 방문한 시민들도 “정말 참신하고 뜻깊은 전시회다”라거나 “미술을 잘 모르는 일반인이 보더라도 지역문화예술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전시회다” 또는 “동양과 서양을 넘나들고 포커스를 잘 맞췄다” 등의 긍정적 반응을 보이며, 지역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한 진주목문화사랑방의 노력에 감사를 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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