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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덕의 고금담리(古今談理) (120) : 공짜와 행복
기사입력: 2022/07/03 [12:53]
한상덕 경상국립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한상덕 경상국립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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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국립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내게 자주 문자를 보내주는 이가 한 분 있다. 좋아하는 시나 그림도 보내주고, 때로는 또 일상의 소소한 소감도 보내주곤 한다. 엊그제는 달이 떴다고…, 전선줄에 잘려 둘로 나뉜 만월에 달무리가 졌다고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시처럼 짧게 행을 바꾼 이런 글도 덧붙여서….


"달무리/ 진/ 만월을/ 베어보았습니다// 언제/ 제일 행복한가?/ 오늘 화두// 하늘을 자주 보고 사는 것// 구름/ 노을/ 별 달/ 여명/ 일출// 바람까지/ 있다면/ 더욱 좋겠다// 시골로/ 내려와/ 살며/ 좋은 점입니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


지인 덕분에 나도 잠시 '행복'이란 말을 좀 생각해 보게 됐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곰곰 생각해 보니 그런대로 행복하다 싶기는 하지만 지인이 노래한 행복과는 좀 차원이 다른 것만 같았다. 그리고 행복도 질적으로 차이가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러면서 언젠가 박보현이란 초등학생이 쓴 <공짜>라는 시가 떠올랐다.


"선생님께서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하셨다/ 그러나 공짜는 정말 많다/ 공기 마시는 것 공짜/ 말 하는 것 공짜/ 꽃향기 맡는 것 공짜/ 하늘 보는 것 공짜/ 나이 드는 것 공짜/ 바람소리 듣는 것 공짜/ 미소 짓는 것 공짜/ 꿈도 공짜/ 개미 보는 것 공짜"


시는 내게 '공짜'와 '행복'의 관계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나는 어쩌면 그동안 공짜로 누릴 수 있는 행복은 외면하고, 돈을 벌어 살 수 있는 행복에만 대부분의 시간과 정력을 쏟으며 살아온 건 아니었는지? 어떤 면에서 나는 초등학생의 생각에도 미치지 못하는 그런 푼수 같은 삶을 살아온 건 아니었는지? 이런 저런 상념에, 나도 지인처럼 짧은 호흡으로 글을 몇 자 적어 보냈다.


"세상살이/ 무게는/ 다 고개에 있다// 행복은/ 고개만 들면 되는데/ 고개를 못 들어/ 행복을 모르고/ 살아간다// 모든 게 공짠데/ 공짠 줄도 모르고/ 돈 마련에만 목을 맨다// 나이만 먹으면/ 뭣하나/ 초등학생보다/ 철부지인 걸// 행복은/ 고개를 드는 일/ 행복은/ 가진 걸 확인하는 일"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간접적으로나마 대리만족 내지는 행복을 차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 참 좋다. 그 중에 하나가 세속적 삶을 멀리하고 자연을 벗 삼아 행복을 만끽했던 옛 선인들의 글이다. 이런 글들은 내가 마치 선경(仙境)에 들어와 신선과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과 같은 착각 속에서 행복을 느끼게 해 주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도연명의 글 <귀거래사(歸去來辭)>는 압권 중의 압권이다.


세상엔 부러운 것이 참 많다. 그 중엔 내가 하고 싶지만 못하는 일을 다른 사람이 그것을 하고 있는 것도 포함된다. 이는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서 많은 걸 누리고 사는 일일 수도 있지만, 세속적 삶을 벗어나 인간의 가장 원초적 삶을 살아가는 일일 수도 있다. 작품을 읽다보면 부러운 쪽은 주로 후자에 가깝다. 도연명의 삶은, 나도 그렇게 한 번 따라해 봤으면 하는 선망을 갖게 한다. 도연명은 확실히 그랬다. 돈이 아닌, 고개만 들면 얻을 수 있는 '공짜'와도 같은 자연에서, 돈이 아닌 땀으로 행복을 찾으려 했다. 이보다 더 낭만적이고 함량 '만땅'인 행복이 또 어디에 있을까 싶다. 하지만 아무나 따라 하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에 틀림없다.


흔들리는 배, 옷자락에 불어오는 바람, 우거진 오솔길의 잡초, 뜰 앞의 나뭇가지, 매일 거니는 뜨락, 늘 닫혀 있는 대문, 무심히 피어오르는 골짜기 구름, 날다 지치면 둥지로 돌아오는 새, 황혼녘에 홀로 서 있는 소나무, 퐁퐁 솟아 졸졸 흐르는 샘물…. 모두가 다 행복을 만들어주는 도연명 작품 속의 넉넉한 소재들이다. 수천 번을 반복 감상해도 시청료가 없는 '공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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