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

장 사 현                    

                

청도에서 전원생활 8년 째

집 앞에는 자계紫溪* 

유유히 흐른다.

 

중백로와 왜가리 떼가

낮에는 청도천에서

한가로이 먹이사슬을 하고

밤에는 집 옆에 있는 대숲으로

모여든다.

 

한여름에 백설처럼 대숲을 덮은 

천년기념물도 그냥 잡새로

여기며 살았다.

백수의 시어머니 똥 받아내고

목욕시키며 봉양하는 아내를

그냥 마누라로만 여겼다.

 

* 무오사화 때 탁영 김일손 선생이 능지처참 당하던 날 청도천이 핏빛으로 물들었다하여 ‘자계’로 불림  

 

- (시집 ‘발표할 수 없는 소설’), 국제PEN한국본부, 2023. 창립 70주년 기념 시인선 12

 

◇ 시 해설

책 표지에 ‘이건 소설입니다. 그러나 소설의 형식을 갖추지 못하여 그 이름을 빌릴 수 없기에 발표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적혀있다. 영남문학 발행인 장사현 소설가가 쓴 시를 음미한다.

그가 청도에서 전원생활을 하는 곳은 청도천 옆, 일명 자계라는 물길 가까이에 있다. 그를 찾아오는 벗을 빼면 날개를 달고 자계처럼 유유히 움직이는 새들이다. 중백로와 왜가리 떼가 낮에는 청도천에서 배 불리며 놀다가 밤에는 집 옆 대숲으로 모여든다.

작가는 새들의 먹이활동을 ‘먹이사슬’이라 표현하여 덩치가 있고 행동이 여유로움을 은유한다. 게다가 천연기념물은 함부로 해롭게 할 수도 없는 국가에서 지정한 문화재이다. 한여름인데도 대숲 위에 앉은 모습이 마치 하얀 눈 같은 그 새들의 가치를 제대로 작가는 몰라보았다.

눈앞에 두고도 보물을 인식하지 못한 무지함을 반성한다. ‘백수의 시어머니 똥 받아내고 목욕시키며 봉양하는’ 그 고맙고 귀한 ‘아내를 그냥 마누라로만 여겼’으니 이런 인식장애가 또 어디 있겠냐고 성찰한다. 막 부려 먹는 마누라가 아니라 ‘집안의 찬란한 해’, ‘아내’의 재발견이다. 동식물 천연기념물은 지정취소가 될 수도 있지만 작가는 분명한 깨달음으로 아내의 고귀함을 인식했고 생불生佛 같은 취소 불능 천연기념물이 곁에 있어서 고맙고 행복하다.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서울문학광장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시향문학회, 시와시학 문인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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