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NS에서 짧지만 강렬하게 우리나라의 인구 문제, 수도권 집중화 문제를 함축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봤는데 굉장히 와 닿았다.
“지방은 먹이가 없고, 서울은 둥지가 없는데 새들이 알을 낳을까요?”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전국 시·군·구의 절반 가까이가 ‘소멸 위험 지역’이라고 한다. 특히 20~39세 청년 인구는 대도시로 집중되고, 출산율은 매번 역대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지방은 인구가 줄고, 청년은 사라지고, 마을은 문을 닫는다.
그럼에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은 여전히 ‘인구 늘리기’에만 골몰한다.
출산 장려금, 귀촌 지원금, 청년 정착금... 그러나 청년들은 말한다. 단순히 돈 몇 푼 쥐어준다고 삶을 건강하게 지속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고.
이 문제를 단순히 ‘인구 부족’의 기술적 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 인구소멸의 이면에는 ‘어디에서 누구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존재론적 위기가 놓여 있다. 그리고 이는 철저히 이데올로기적 선택의 결과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수도권 중심의 개발주의를 추구해왔다. 산업화·도시화의 이름 아래 수도권은 교육·일자리의료·문화 등 모든 자원을 독식하다시피 했고 지방은 인재를 빼앗기며 ‘성장하지 못한 책임’을 뒤집어 써 왔다.
이 구조는 단순한 지역 간 격차를 넘어 ‘어디에서 살아야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가’라는 위계질서를 낳았다. ‘지방에 사는 건 인생의 실패’라는 암묵적 메시지가 청년들의 인식 속에 자리 잡았고 이것이 그들의 삶의 방향을 결정짓고 있다.
더욱 심각한 건 청년이 겪는 이중적 소외다. 수도권에서는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남기 위해 에너지가 소진되고 지방에서는 ‘기회의 부재’ 속에 삶과 기회가 고립된다.
정부와 지자체는 청년에게 ‘고향으로 돌아가 달라’고 말하지만 정작 고향에는 ‘살 수 있는 조건’이 충분하지 못하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고향, 즉 지방에 내려가도 집도 없고, 일자리도 없고, 친구도 없다. 청년이 지역으로 돌아가 ‘버텨 사는 것’만을 요구하는 정책은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지방을 살릴 청년’을 찾는 것이 아니라, ‘청년이 살 수 있는 지방’을 만들어야 한다. 지방소멸은 청년을 유인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청년이 자발적으로 머물고, 살고, 뿌리내릴 수 있는 지역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대안은 무엇일까? 지역 중심의 분권적 개발 모델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모든 정책 결정이 수도권 중심에서 내려오는 구조 속에서는 지방이 자율성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없다. 지역의 문제는 지역이 스스로 진단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권한과 재정을 이양해야 한다. 중앙정부는 관리자가 아니라 조력자여야 한다.
또 청년의 삶을 노동이 아니라 삶 그 자체로 바라보는 정책이 필요하다. 단기 일자리 몇 개 늘리는 정책보다 청년이 지역에서 ‘살아갈 이유’ 또는 살고 싶은 이유 등을 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교육, 주거, 문화, 사회적 관계망 등 삶의 질을 구성하는 요소에 대한 통합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예컨대 청년이 지역에서 창업하고 협동조합을 만들고 공동체를 이루는 실험들을 지원하는 것 등이다.
지역의 청년들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는 인식 전환도 요구된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 단체, 사회적 기업, 마을 프로젝트 등은 이미 곳곳에서 혁신을 만들어내고 있다. 김해시만 해도 여러 청년 단체나 사회적 기업, 마을 미디어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운영되면서 자신들의 유의미한 성과를 일궈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은 여전히 일회성 사업으로만 간주되거나, 결과 중심의 행정 틀에 갇혀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 예산 부족 문제도 늘 뒤따른다. 청년 주체를 정책의 ‘수혜자’가 아닌 ‘기획자’로 인정해야 한다.
지방소멸과 청년소멸은 단순한 인구 문제가 아니다. 이는 ‘어디에서 살아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선언과 같다.
대한민국은 서울 공화국이 아니다. 지방의 문제는 지방만의 문제가 아니며, 청년의 문제는 청년만의 책임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기 수치를 높이는 정책이 아니라,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와 용기다.
청년이 떠난 자리를 예산으로 채우는 나라가 아니라, 청년이 머물고 싶은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인구소멸 시대에 우리가 선택해야 할 유일한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