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마음이 괴로운 순간’을 마주할 때가 종종 있다. 그 괴로움의 정체는 뭘까.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 부른다. 내가 가진 신념과 실제 행동이 충돌하거나, 서로 다른 생각이 부딪힐 때 생기는 불편함이다. 쉽게 말하면 ‘내가 생각한 나’와 ‘지금의 나’가 맞지 않을 때 느끼는 내적 갈등이라고 할 수 있겠다.인지부조화는 거창한 학술용어 같지만 사실 매우 일상적이다. 예를 들면 애연가인 당신이 어느 날 금연을 결심했다고 치자. 금연 도중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담배에 다시 손이
8년 전쯤 경남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운영하는 청년창업동아리 활동에 참여했다. 그때 ‘마시멜로 챌린지’를 처음 접했다.이 게임은 4명씩 팀을 정해 18분 동안 스파게티면, 테이프, 실, 마시멜로를 이용해 높은 구조물을 만들고, 그 높이가 가장 높은 팀이 승리하는 게임이었다.당시 우리팀은 37cm를 기록했는데,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다. 주위를 보니, 50cm가 넘는 팀도 있었고, 아예 시작도 제대로 못한 팀도 있었다.나중에 이 게임에 대해 해설하는 시간이 있었다. 연구 결과, 이 챌린지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을 쌓은 팀은 건축가가 포함된
2025년 가을, 다시 조상님을 찾아뵙는 시절이 왔다. 서부경남에서는 농사가 끝나는 시월 즈음 산소를 찾는 시사(時祀)가 오래된 연중행사다. 예전엔 문중답이 많은 집안일수록 가문의 위세를 과시하듯 소까지 잡아 제를 올리기도 했다.자손 번창한 집안일수록 제관도 수백 명에 달해 그 위세를 자랑했고, 동네의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산소에 올라 떡을 얻어먹던 풍경이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아직도 생생하다.제를 지내기 전 먹을 갈아 ‘유세차~’로 시작하는 축문을 쓰다 보면, 점필재 김종직과 사돈을 맺었던 먼 조상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피의 흐
살면서 누구에게도 내 어려움을 털어놓지 않았다. 스스로 그것을 자존심이라 여겼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 자존심이 조용히 무너지는 순간들을 마주한다. 개인적 부탁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직업적 책무와 조직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위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직업 특성상 그동안은 도움을 청하기보다 남의 짐을 덜어주는 일이 더 많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 앞에서 순간 자신에 대한 짜증과 미안함이 고개를 든다.그럼에도 내 속사정을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용기가
최근 한 에세이 작가의 책을 읽다가 한 대목에서 그 작가에게 실망해 책을 덮었다. 그 작가의 지인이 자녀의 대학등록금이 부족해 200만원만 빌려달라고 했고, 작가는 지인을 가련히 여겨 그 돈을 빌려줬다. 그러고 나서 자신도 풍족하지 않음을 깨닫고 약간의 후회를 했고, 그 지인에게 “원금은 늦게 갚아도 좋으니, 이자는 매달 보내줄 것”을 요구했다. 그래놓고는 엄청난 선심을 쓴 듯 자랑스럽게 일화를 소개했다.내가 봤을 때 그 작가는 너무 쪼잔하다. 좋은 마음으로 돈을 빌려주고 나서 곧 옹졸해지는 것도, 굳이 이자까지 챙기려는 것도 마음
감기 기운이 있어 동네 약국을 찾은 당신. 약사에게 증상을 설명했더니 작은 감기약 박스를 하나 내민다. ‘이걸로 감기가 나을까? 병원에 갈까?’라고 생각하던 찰나 약사는 “제가 30년 경력인데, 이 약 드신 환자분들은 다 깨끗이 나았답니다”라고 말한다. 그 순간 당신의 마음속 불안은 사라진다. 약의 성분이나 부작용보다 ‘30년 경력’이라는 말이 더 강력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우리는 전문성, 직위, 명성 등 권위를 가진 사람의 말을 과도하게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때로는 그 판단이 위험하거나 비합리적이거나 사실과 다를 수 있음에도 말
치과에서 전화가 왔다. 정기검진을 받으러 오라는 전화였다. 평소 양치질을 열심히 했기에 이번에도 스케일링이나 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사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했다.“잇몸이 부었네요. 치주염입니다. 어금니 하나를 뽑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너무 놀랐다. “치주염요? 이거 왜 걸리는데요?”라고 묻자, 의사는 ‘입 안 세균’이 원인이라고만 했다. 그러면서 “너무 걱정 마세요. 지금 당장 뽑는 건 아니니까요. 치료하면서 경과를 지켜보죠”라고 위로했다.집에 와서 잇몸이 붓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나의 무지함을 자책했다.
어둠 안에서 새벽이 피어났다. 대수롭지 않은 아침이 따라오고 뜨겁지도 미지근하지도 않은 내 업보들이 줄줄이 잠에서 깨어난다. 살아오며 지은 죄 많은 중생이라, 가볍지 않은 두통이 찾아왔다. 이 또한 업보려니 하며 받아들여 보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탓 아닌 것이 없는 삶이었다.인연으로 엮인 모든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선, 각자가 지닌 환경과 불평등의 구조를 헤아리는 지혜가 필요함을 깨닫는다. 어쩌면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며, 날마다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행위 자체가 또 다른 업을 짓고 있는 시간의 윤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드는 아
한 (남자)후배와 대화 도중 갑자기 이 후배가 최근 살이 많이 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근데 요즘 너 살 좀 많이 찐 것 같더라. 운동 좀 해야겠다”라고 말했다. 그 후배가 남자라서 조금 더 편하게 이런 이야기를 한 것 같다.나는 이런 대화가 일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들 외모에 대해 언급을 많이 한다. 그런데 이런 말이 미국에서는 상당히 무례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남의 외모에 대해 지적하는 것을 'None of your business'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또한 우리나라 젊은 세대도
요즘 들어 부쩍 체중이 는 30대 남성 A씨. 운동을 좀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뭘 할지 고민하던 차에 우연히 수영경기를 시청하게 된다. 몸을 풀고 있는 수영선수의 늘씬한 체형, 탄탄한 근육, 넓은 어깨를 보며 A씨는 “이거네”라고 생각한다. 수영을 하면 살도 빼고, 저 선수처럼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진 채 말이다.‘수영선수 몸매에 대한 환상’(Swimmer's body illusion)은 선택의 기준과 결과가 뒤바뀌는 심리 현상이다. 그들의 몸매를 보면 대부분 ‘나도 운동을 하면 저렇게 될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에세이 ‘개인주의자 선언’(문유석 판사 作)에서 작가는 AI발전으로 인간이 노동하지 않는 시대에서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상상한다. 그는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지 못할 일은 많다고 했다. 돌봄이 필요한 분야와 상담, 사회체육 등 신체적 정서적 지원이 필요한 분야, 예술을 비롯한 다양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분야는 여전히 존재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또한 동네마다 배드민턴 가르치는 코치, 합창을 지도하는 지휘자, 악기 가르치는 연주자, 미술 설명하는 도슨트, 시각장애인이나 노인에게 책 읽어주는 사람 등 인간의 삶을 풍요
여름은 제빛을 다하고 나면 미련 없이 가을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왔는가 싶던 가을도 잠시 머무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겨울에게 길을 내어주었다. 머무는 듯하지만 스스로 물러날 줄 아는 자연, 그 순환 속에는 물러남의 지혜가 깃들어 있다.APEC 정상회의에 파견 나갔다가 음주 물의를 일으킨 경찰관이 있었다. 하필이면 압수한 오토바이를 잠금장치 없이 보관하다 두 번이나 도난당한 창원서부서 압수물 관리 담당자였다고 하니 이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기강해이가 심각하다는 여론이다.경남경찰청은 수년째 치안감 직급을 치안정감으로 높여달라 요구해 왔
김해의 새로운 미식 축제로 자리 잡은 ‘제2회 김해Doit 뒷고기거리 축제’가 지난 1~2일 부원동 수정주차장 일원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지난해에 이은 올해 행사 역시 김해의 대표 향토음식인 뒷고기를 중심으로 지역 상권 활성화와 주민 화합을 동시에 이뤄냈다는 평가가 나온다.둘째 날 행사장에 방문해 현장 분위기를 봤는데, 정말 많은 시민과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모습이었다. 뒷고기 축제의 핵심이나 다름없는 판매 부스에서는 특별할인가로 저렴하게 뒷고기를 판매하며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긴 줄이 늘어섰다. 뒷고기를 직접 먹어보니 퀄리티도
내가 지금 고3 수험생이었다면 절대 4년제 대학에 입학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학교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성적도 좋지 못했다. 뒤에서부터 등수를 계산하는 것이 훨씬 빨랐다. (대신 도서관에서 책 읽는 것은 좋아했다.)그래서 고등학생 내내 내신이 엉망이었다. 그런데 수능시험 당일 기적이 일어났다. 집중력을 최대한 발휘했고, 평소 모의고사보다 때보다 100점 이상(당시 수능은 400점 만점이었는데, 330점을 받았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그럼에도 내신이 워낙 안 좋았기 때문에 정시모집에 도전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다행히
최근 길 한 복판에서 한 중년남성이 큰 소리로 상스러운 욕을 하는 모습을 봤다. 술이 취해 보이는 그는 한 여성과 통화를 하고 있는 듯 보였다. 부부사이는 아닌 것 같고, 내연녀와 주고받는 대화 같았다. 다른 남자와 정을 주고받지 않았냐고 의심하면서 입에 담기 힘든 욕을 내뱉었다.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대단한 ‘권리’가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여러 가지 ‘명분’을 내세운다. 내가 ‘남자친구’인데, ‘회원’인데, ‘시민’인데, ‘장남’인데, ‘부모’인데, ‘친구’인데 등등. 그러면서 남들을 통제하려고 한다.소설 단편소설집 ‘혼모노’(성
결핍과 과잉이 교차하는 혼돈의 시대를 산다. 힘든 시절일수록 언론의 역할은 약자의 편에서 진실을 말하고, 독자의 가슴에 울림을 전하는 일이다.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도 진심이 담겨있지 않으면 그건 독자애 대한 예의가 아니다. 활자에 혼이 빠지면 그 지면은 생명력을 잃는다는 선배 기자의 말이 다시 떠오르는 오늘이다.기자는 권력의 눈치를 보는 직업이 아니라 실력으로 자신을 증명하고, 세상의 불의와 어둠을 비추는 사람이다. 그래서 때로는 개인이 쓴 글의 힘이 매체의 힘보다 크다. 그것은 기자가 진실을 향한 마음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속에 멍든 가슴을 보았는지, 가을 산바람이 산객을 다독이며 지나간다. 새벽잠에서 완전히 깨어나기도 전에 숨을 헐떡이며 산을 오른다. 내딛는 걸음에 맑은 기운이 스며들고, 그 속에 함께하는 도반들의 향기 그윽함을 느끼며 오늘도 그 힘으로 또 걷는다.단풍을 스치는 바람결에 평온이 가득하고, 간간이 눈맞춤하게 되는 야생화의 손짓이 반갑다. 새로운 가을을 꿈꾸는 시간이 바람을 타고 오는 느낌이다.지난 28일 열린 경남도 국정감사는 명태균 증인 문제로 정치적 논쟁에 휘말리며 본래의 취지를 잃었다는 평가다. 산청 산불 피해 복구나 지역 현안
알렉산드르 푸시킨은 ‘모든 것은 지나가기 마련이며 지나간 후에는 친근한 그리움만을 남긴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네 인생은 살아가면서 바꿀 수 없는 것 세 가지가 있지요. 하나는 나를 낳아 주신 부모님은 바꿀 수가 없습니다. 또 하나는 내가 태어난 고향도 바꿀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배우고 졸업한 모교입니다.세월이 지나 성장해서 부모님에게 효도하려고 하면 벌써 저 세상으로 가버리고 없습니다. 내가 태어난 고향도 산업 사회의 발달과 도시 개발로 인하여 어느새 사라지고 없습니다.한때는 인구가 넘쳐 한 반에 60여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옹
중학생 때 읽었던 ‘파리대왕’(윌리엄 골딩 作) 이라는 소설을 최근 다시 읽었다. 이 작품은 12명의 소년들이 비행기 추락사고로 무인도에 고립돼 살아남는 과정을 그린다. 과거에는 대장인 랠프가 마냥 착하고, 이성적인 리더인데 사악한 잭(랠프 만큼 힘이 세고 리더십이 있다)이 무리를 선동해 갈등을 부추긴다고만 생각했다.그런데 지금 다시 보니 다르게 읽혔다. 초반에는 잭과 랠프의 끈적한 우정이 있었다. 잭이 랠프를 많이 좋아하고 의지하는 장면들이 있어 놀랐다. 심지어 랠프가 섬에 봉화를 매일 피워야 한다고 제안했을 때, 잭을 따르는 무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메일함을 확인하거나 글을 쓰다 보면 엄청나게 집중을 할 때가 있다. 그래서 내가 주문한 음료가 나왔으니 와서 가져가라는 카페 직원의 외침을 한참이나 못 들을 때가 종종 있다. 분명 귀는 열려 있고 소리를 못 들을 상황도 아닌데 말이다. 이는 내 신경이 노트북 화면 속에 묶여 있어 다른 정보를 놓쳤기 때문이다.‘보이지 않는 고릴라’(Invisible gorilla), 또는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인간의 ‘주의’가 얼마나 협소한지를 보여준다.우리는 눈으로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