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환의령군 봉수면사무소 산업팀장, 의령문인협회 사무국장 침묵은 금이라고 했다. 말이 필요 없어서가 아니라, 말이 더 이상 쓸모없을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침묵이다.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회의를 진행하다 보면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끊임없이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의견이 다른 경우 서로 팽팽하게 대립하는 때가 있다. 그럴 때 잠시 회의를 멈추고 모두에게 1~2분간 침묵하며 생각할 시간을 준다. 감정이나 피상적인 의견이 아닌, 가장 핵심적이고 깊이 있는 통찰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비정상적이고 감정으로 치우치기 쉬운
박정은 작가 (경남문인협회·경남시조시인협회 회원) 결혼 시즌, 눈부시게 빛나는 계절이라서 일 거다. 계절에 걸맞은 아름다운 결혼식이 많은 요즘, 맘껏 축하를 전할 수 있는 것도 이미 지난겨울 큰딸을 결혼시켜 본 경험이 있어서다.큰딸 지연이는 새로운 삶의 문턱을 넘었다.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또 누군가의 며느리가 된다는 사실이 막연했던 세월이 어느덧 현실이 됐다.결혼 날짜를 정하고 준비를 서두르던 날들 속에서, 나는 문득 딸의 첫 울음을 떠올렸다. 3.2킬로그램의 작은 몸짓, 세상을 다 담은 듯한 커다란 눈. 그 눈빛 하나가 내게는
십일월 중순 화요일이다. 지난달부터 화요일 오전은 은퇴자 대상 웰다잉 연수가 열려 팔룡동 신화빌딩 교육장으로 나가는 날이다. 추석 전부터 열렸는데 나는 처음부터 등록생이 아닌 도중 청강생이 돼 다니는 중이다. 이번이 네 번째 강의를 받는 날로 그때마다 동선을 다르게 간다. 비가 오던 날 창원천 천변을 걸었고 동네 뒷산 반송공원 숲을 들거나 올림픽공원을 둘러 갔다.구월 시월 십일월 가을 석 달 가운데 앞서 보낸 두 달은 가을답지 않은 날씨였다. 여름에서 이어진 고온에다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이 잦았다. 가을은 본색을 드러내지 않은 채
한민족은 새를 숭상하고 알을 신성시해서 신화 속의 시조들은 모두 알에서 태어났다. 그 알 모양과 가장 닮은 것이 바로 박이었다. 그래서 박 바가지는 고대로부터 상징적인 주술 도구로 많이 사용됐다.통과의례에서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새로운 세계로 들어감’을 뜻했으며, 병아리가 달걀을 깨고 나오듯이 의례의 시작도 늘 박과 연관된 행위로 열었다.아기가 처음 세상에 태어날 때의 해산 풍속에서도, 산모의 젖을 돕는 첫 국밥을 지을 때 미역을 씻고 쌀을 헹구는 데 쓰는 ‘해산 바가지’가 집마다 따로 있었으며, 아이를 낳은 뒤 삼칠일에는 바가지
십일월 초순 목요일이다. 새벽에 전날 자연학교 하굣길 트레킹화 밑창이 닳아 판매점에 수선을 맡기고 용지호수를 거쳐온 시조를 한 수 남겼다. “늦가을 풍경으로 도심 속 용지호수 / 산책로 둘레 지킨 벚나무 일찍 나목 / 물억새 야위진 가닥 수변 운치 더한다 // 날씨가 더 추우면 지난봄 떠난 고니 / 본향에 되돌아가 새끼 쳐 다시 찾아 / 겨우내 놀이터 삼아 마음 놓고 잘 놀까.”제목을 ‘늦가을 용지호수’로 붙여 후일 지기들에게 풍경 사진과 함께 아침 안부로 전할 셈이다. 날이 밝아오기 전 이른 아침 자연학교 길을 나섰다. 낮에는 기
신동환의령군 봉수면사무소 산업팀장, 의령문인협회 사무국장 커피에도 세 가지 온도가 있다. 커피 한 잔을 내려 서재로 간다. 처음 내린 커피는 너무 뜨거워 함부로 입을 댈 수 없다. 자칫하다간 입을 데기에 십상이다. 이럴 땐 잠시 기다리며 날씨를 검색하거나 글을 쓸 준비를 하다 보면 커피는 70도쯤으로 식어서 마시기 적당한 온도가 된다.커피를 한 모금씩 입에 물고 책장을 넘기거나 원고지를 채워나간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글을 마무리하고 나니 남은 커피는 완전히 식어서 30도가 돼 있다. 식은 커피가 무슨 맛이 있을까 싶지만, 마감이
새롭게 한 주가 시작된 십일월 첫째 월요일은 산간 내륙에는 한파 특보가 내렸다. 비가 잦고 무더위가 지속돼 건너뛸 것만 같던 가을이 어느새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지난주 창원대로와 인접한 올림픽공원에 딸린 국화공원에는 도심에 옮겨 심은 구절초가 하얗게 피었더랬다. 마산 합포 수변 해양 공원에는 수천수만 송이로 형형색색 장식한 국화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린다.월요일 이른 아침 자연학교 등굣길에 나섰다. 집 앞에서 월영동으로 가는 102번 시내버스를 타고 창원역을 지날 때 내렸다. 역 맞은편에서 근교 들녘과 강가로 가는 1번 마을버
가을은 청명한 하늘 아래로 들녘에는 황금빛 벼 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산자락에는 갈색 바탕에 붉고 노란 단풍이 타고 내려오고 초가지붕 위에는 보름달같이 둥실한 박이 덩그렇게 놓여있는 그림 같은 풍경을 선사했다.‘박’은 순수 우리말이다. 한자로는 ‘박 호(瓠)’, ‘박 표(瓢)’가 있고 동아시아에서만 자랐다. 고대에서부터 있어 온 작물로 ‘호박, 수박’의 조상 식물로 ‘참박’이라고도 불렀다.‘삼국사기’에 의하면 시조 박혁거세가 “以初大卵如瓠 故以朴爲姓(태어난 알이 박의 모양이라 박을 성으로 삼았다)”이라는 기록이 있다.박은 호박같이
시월 마지막 주 월요일이다. 주말은 도서관 문화 강좌 웰이이징 강연을 듣고 열람실에서 보냈다.어제는 초등 친구들과 전세버스로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로 소풍을 다녀왔다.하룻밤 사이 기온이 급전직하 올가을 들어 첫 추위로 산간 내륙은 영하권으로 내려간다. 북극발 한랭기단은 시베리아에 본부를 두고 바이칼호에서 떨어진 고기압이 남으로 뻗쳐 한반도까지 영향을 끼친 듯하다.그동안 고온에다 비마저 잦았는데 이제 가을다운 날씨를 보여줄 모양이다. 가을이 이슥하도록 그다지 쾌청하지 않던 날들이 이어지다가 기온은 낮아 쌀쌀해지면서 파란 하늘이 드러난다
신동환의령군 봉수면사무소 산업팀장, 의령문인협회 사무국장 농자지천하대본야(農者之天下大本也 : 농민이 천하의 근본). 경남도에는 18개 시·군이 있다. 위치상 의령군이 가운데에 있고, 의령군 13개 읍·면 중 봉수면 서암리에 서암마을이 있다. 서암마을에는 덧배기 장단에 다음과 같은 장독풀이가 전승되고 있고 의령집돌금 농악단이 그 맥을 잇고 있다.[사설 : “여보게 들” / “예” / “이 집 꼬치장, 된장, 간장 맛 좋으라고 / 장독 풀이 한번 해 보세” / “거 좋지”] // 울려라 지신아 지신밟자 지신아 / 눌류자 눌류자 장독에도
낮이 점점 짧아지고 밤은 길어지고 서늘한 기운이 하루가 다르게 몸에 와닿았다. 빨리 가을걷이를 서둘러야 했다. “가을 일은 미련한 놈이 잘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농사일은 그저 요령 피울 일없이 그냥 묵묵하게 손을 바쁘게 놀리며 하는 일이 제일 상책이었다.역시 곡식은 봄에 심는 일도 중요하지만, 잘 가꿔 가을에 이삭을 털어서 낟알을 거두는 일은 더 절실했다.일반적으로 추수는 가을 초입에 깨를 제일 먼저 털고, 그다음은 나락 타작이고, 제일 나중에 콩을 털었다. ‘콩 타작, 콩마당질’이라고 하는 이 작업은 규모가 적을 때는 긴 막대기로
박정은 작가 (경남문인협회·경남시조시인협회 회원) 해마다 시월이 오면 마음의 색이 먼저 물들고 있음을 인지한다. 한 해의 열정이 노을처럼 차오르고 익을 만큼 익은 세월이 빛을 내는 계절. 언제나처럼 들녘은 황금빛 일색이고, 바람은 한결 단아해진다. 계절이 주는 고요한 울림은 늘 내 안의 이야기를 깨워놓는다.차오르는 열정을 모두 쏟아낸 노을이 노랗게 물든 들녘에 도둑고양이처럼 내려앉아 단잠에 들었다. 시월의 풍경엔 눈에 거슬릴 이유를 단 한 가지도 찾아볼 수가 없다. 사방천지가 눈부심과 설렘으로 녹아 있어, 멋모르고 찾아온 강쇠바람도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된 시월 셋째 월요일은 가을다운 날씨를 보여줘 기온이 제법 떨어졌다. 전날 서북동 감재를 넘은 귀로에 북면 텃밭을 둘러왔다. “늦도록 더위에다 비마저 자주 내려 / 텃밭에 심은 채소 성장세 흡족하나 / 달팽이 나눠 먹자 해 기부하듯 바쳤다 // 무농약 유기농을 벌레에 뜯기고도 / 이랑이 비좁아서 알맞게 솎았더니 / 당분간 식탁에 오를 찬거리가 생겼다”날이 밝아오기 전 앞 단락 인용절 ‘가을 푸성귀’를 남기고 아침 식후 평소와 다른 동선으로 퇴촌교 삼거리로 향했다. 창이대로를 건너 사림동 주택지에서 사격장으로 올랐
추석을 쇠어 가을이 이슥해져야 함에도 늦더위 기승이 끝나지 않은 시월 중순 일요일이다. 오후는 비가 예보됨에도 반나절만이라도 생활권에서 벗어난 강가로 산책을 하려고 날이 밝아오기 전 여명에 길을 나섰다. 원이대로로 나가 창원대학 앞에서 첫차로 운행하는 좌석버스 770번을 타고 시내를 벗어나 창원터널을 지났다. 터널을 넘자 날이 밝아왔는데 강수 기운은 못 느꼈다.장유 농협 맞은편에서 풍유동 차고지를 출발해 하단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롯데 아울렛과 율하 응달을 거쳐 사구에서 경마장을 지났다. 생곡에서 서낙동강 갑문을 거쳐 명지에서
신동환의령군 봉수면사무소 산업팀장, 의령문인협회 사무국장 중학교 시절, 별난 체육 선생님 한 분 만났다. “내 손에 책이 없는 것을 발견한 학생에게는 짜장면을 실컷 사주마.” 체육 시간이 끝날 때마다 그분은 이렇게 외치곤 했다. 그 시절 늘 배고픈 남학생들에게 짜장면은 군침 돌게 만드는 최고의 음식이었다.사십여 년 전 그분은 늘 책을 손에 들고 다녔다. 등굣길에서도 선생님은 책을 놓지 않았다. 혹여, 얄궂은 학생이 “선생님, 오늘은 책을 손에 들고 있지 않군요?” 하고 신나서 묻는 날이면, 그분은 슬그머니 가죽 가방에서 소책자를 요
상사 소리가 고단함을 잊게 한다.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농부는 곡식을 창고에 무사히 들여놓기 전까지는 결코 풍농한 것으로 풍년가를 부르지 않았다. 그만큼 농사는 모를 심는 일부터 시작해서 거둬들이기까지 늘 걱정이 따랐다. 병충해, 가뭄, 홍수 태풍 등 농사는 끝까지 살얼음판을 걷는 듯이 조심스럽고 신중해야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쌀 문화권에서 쌀은 단순한 먹을거리를 넘어 ‘쌀 미(米)’ 자와 ‘푸를 청(靑)’ 자를 합쳐 만든 ‘정할 정(精)’으로 표현됐으며, 가장 맑고 본질적인 ‘정수(精髓), 정기(精氣), 정신(精神)’으로
기온이 점차 서늘해져 비로소 가을이 도래했음을 느끼게 된 구월을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간간이 비가 오다가 그치길 반복하는 날씨다. 기상 정보를 전해주는 유튜버는 다가오는 추석 연휴에도 우리 지역은 한 차례 다소 세찬 강수를 예보했다. 그 비가 그치면 예년과 같은 기온이 돼 진정한 가을다운 계절감을 느낄 수 있겠으나 자연인으로서는 가을이 닥친 징후를 날마다 만난다.여느 날과 다름없이 화요일 아침에도 어둠이 남은 여명에 자연학교 등굣길에 나섰다. 창이대로 명서동 주민센터 앞에서 대방동을 출발 본포로 가는 31번 버스를 탔다. 도계동
박정은 작가 (경남문인협회·경남시조시인협회 회원) 입추도 지나고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가 훌쩍 지났지만, 아궁이에 불을 지핀 구들장처럼 아스팔트에서 피어오르는 한낮 열기는 사그라질 줄 모른다.타들어 가는 숨을 최대한 쪼개어 조금씩 내뱉는다. 금세라도 터질 듯한 심장을 다독이며 오늘도 나는 뛰고 있다.작년 9월, 갱년기 증상이 하나둘 생기며 힘들어할 때 즈음,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운동이 최고의 처방”이라는 말에 나는 바로 목표를 정했다.새벽 5시 40분, 알람에 맞춰 올라가지 않는 눈꺼풀을 비비며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무작정 집을 나
새롭게 한 주가 시작되는 구월 넷째 월요일이다. 주말은 고향 선산을 찾아 벌초하고 텃밭 작물을 돌봤다. 고향 흙내음을 맡을 빻은 쌀과 밤톨을 주워 왔다. 텃밭에서는 싹이 돋아 싱그러운 무와 배추를 살펴 벌레를 잡아주고 북을 돋워줬다. 다음에 그곳으로 들리면 무를 솎아 주고 고구마도 캐 나와야 할 처지다. 자유롭게 산천을 주유하면서도 놀이터가 한 군데 더 생긴 격이다.월요일 아침나절은 강가로 나가 산책하려고 길을 나섰다. 원이대로 의창구청 정류소에서 본포로 가는 31번 버스를 탔다. 본포로 곧장 가 북면 온천장에 이르는 30번은 연방
신동환의령군 봉수면사무소 산업팀장, 의령문인협회 사무국장 ‘세종실록지리지’에 의령군 정암마을을 소개한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남강의 물줄기가 흘러가는 곳에 솥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정암(鼎巖)이라 불렀고, 예전부터 정암마을을 정암촌, 정암동이라 했다.]‘정암’이라는 이름은 솥바위에서 유래됐다. 정암마을에 있고, 정암루 아래 남강 변(邊)에 우뚝 솟아 있는 솥바위는 의령군을 대표하는 명물이다. 솥바위 주변 반경 20리 이내에 부자가 난다는 전설이 있었다. 실제로 인근 지역에서 삼성 이병철, 효성 조홍제, LG 구인회 세 명의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