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기상 오토바이 인생…오늘도 묵묵히 헌신
전국을 휩쓴 농촌 활동가…‘젊은 농민의 모범’
조직·정당·유명세 없이 합천군의원 출마…무투표 당선
매년 꾸준히 지역사회에 기금 및 장학금 기탁

윤재호 안금리 이장.
윤재호 안금리 이장.

합천군 대양면 안금리. 경남 내륙 깊숙이 자리한 이 조용한 농촌 대양면 안금  마을은 겉보기엔 변함없이 고요하다. 그러나 새벽이면 이 고요를 깨우는 오토바이 한 대가 마을을 가로지른다. 들녘을 향해, 또는 도로 한편에 쌓인 흙더미를 향해 바삐 달려가는 사람. 이른 안개를 뚫고 달리는 이는 안금마을 윤재호 이장(64·윤재호상조(장의사) 대표)이다.

그는 마을에 구석구석 논두렁,밭두렁  작물등 살피고, 배수로에 낀 이물질을 걷어내며, 출근길 주민과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부터 건넨다. 누군가에게는 소박하고 단조로운 일상이지만, 윤 이장에게 이 모든 일은 ‘신념’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냥 내가 사는 마을이고, 내 이웃들이니까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거죠. 이게 제 정치고, 제 철학입니다.”

 

젊은 농민의 모범…농촌 활동가부터 일간지 주재기자까지

윤재호 이장은 대양면 안금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그의 삶은 마을의 역사이자, 곧 합천 농촌의 지난 반세기를 관통하는 작은 연대기다. 어린 시절부터 농업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그는 고등학생 시절, 이미 농촌을 위한 활동가로 성장해 있었다. 합천군 4-H 연합회 소년부 부회장, 영농학생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그는 또래 친구들과 함께 농업 기술을 익히고 마을 문제 해결에 나섰다.

그의 노력은 전국적인 무대에서도 인정받았다. 전국 4-H 경진대회 과수접목(경남도 대표) 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하고, 경남신문 제정 4-H 대상까지 받으며 ‘젊은 농민의 모범’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농촌이 단지 생산의 공간이 아니라, 사람과 삶이 있는 공간이라는 걸 알게 된 게요.”

그의 농업에 대한 애정은 이후 단순한 생산자나 행정 수요자가 아닌 ‘주체적 실천가’로서의 길을 열어갔다. 청년 시절, 윤 이장은 도내 지방 일간지의 합천 주재기자로 일했다. 당시 그는 기사를 직접 쓰는 것은 물론, 합천군 관공서,합천읍내 및 마을을 돌며 신문 배달까지 했다. ‘기자’와 ‘우편배달부’의 경계를 넘나든 이 시간은 그에게 고된 노동이 아닌 ‘현장의 학교’였다.

그는 취재 수첩 대신 마을 사람들의 입을 통해 지역의 진짜 문제를 들었다. 그는 언론생활 14년여 동안 소외계층, 심장병 어린이, 대학을 가지 못하는 학생 등 36명에게 많은 돈을 모금해 도움을 줬다.

“기자는 소리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소가 쓰러졌다는 노인의 말에도, 마을 학교가 폐교된다는 학부모의 눈물에도, 그들의 이야기를 내 일처럼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시절 쌓인 경험은 훗날 그의 정치 여정에 큰 밑거름이 됐다. 지식과 명분보다 구체적인 ‘느낌’과 ‘현장감’으로 지역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합천만을 위한 정치…윤재호의 정치 철학

2002년 지방선거. 윤재호 씨는 무소속으로 합천군의원에 출마했다. 당시 합천군 대양면 선거구는 격전지가 아닌 ‘무풍지대’였지만, 윤 이장의 출마는 조용한 파문을 일으켰다.

“정치라는 건 꼭 국회에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마을 길을 닦고, 폐교 문제를 풀고, 노인정에 기름을 넣는 일도 결국 정치입니다.”

조직도, 정당도, 유명세도 없이 나선 선거였지만, 그의 출마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지역 주민들은 그의 진정성과 실천력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그는 무투표 당선이라는 보기 드문 결과로 의회에 입성했다.

이듬해 합천 ‘가’ 선거구로 확대된 지역에서 그는 열린우리당 후보로 재선에 도전했고,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정당 공천을 받은 진보 성향 후보가 농촌에서 승리를 거두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는 단순히 정당의 힘이 아닌, 주민들과 함께한 그의 지난 활동이 만든 성취였다.

윤재호 합천군의원 시절의 활동은 철저하게 ‘현장 중심’이었다. 의정활동 자료를 보면 군정질의 30차례, 5분 자유발언 13차례 등 다수의 공식 활동이 기록돼 있다. 그러나 그보다 주목할 것은 의정의 방향성과 내용이었다.

그는 농산물 유통망 확대, 양파 가격 보장제 도입, 농기계 대여 부속품 대폭 지원, 친환경 농업 확대, 독거노인 대상 복지예산 확보, 병설유치원 유지 및 급식 개선 등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안건을 다뤘다. 대형 사업이나 ‘치적’이 아닌, 주민들의 삶 속에 뿌리내린 문제에 집중했다.

“보고받은 문서만 읽고 결론 내리는 건 의정이 아닙니다. 주민들 얘기를 들어야 하고, 때로는 가서 같이 살아봐야 알 수 있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의 활동은 여의도식 정치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합천이라는 공간 안에서는 오히려 가장 ‘정치다운 정치’였다.

2009년, 그는 군의원직을 내려놓고 합천농협 조합장 선거에 출마했다. 그리고 선거운동 중 내건 한 마디가 전국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당선되면 월급을 받지 않고 전액 지역사회에 환원하겠습니다.” 이른바 ‘무보수 조합장’ 선언은 일부에겐 정치적 퍼포먼스로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에게는 그간 윤 씨가 살아온 방식과 맞닿은 선택이었다.

“돈이 목적이었다면 애초에 정치도, 이장도, 장례지도사도 안 했겠죠. 저는 자리를 얻는다는 건 곧 책임을 얻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마지막 정치’ 장례지도사의 길

비록 선거에서는 고배를 마셨지만, 윤 씨의 철학과 의지는 지역사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그는 새로운 선택을 했다.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지역 장례식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농민, 상인, 공무원, 무연고의 노인까지 누구나 인생의 마지막을 조용히 함께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그는 유족들과 함께 손을 잡고 고인을 배웅하는 이 일을 ‘삶의 마지막 정치’라 표현한다. 특히, 국가유공자와 참전용사에게는 국립현충원이나 국립호국원을 안내하는 등 말없이 공동체를 배려하는 삶을 이어갔다.

 

기부의 달인…합천의 현재와 미래 위해 힘 쏟아

윤 이장은 수년간 자신이 받은 수당, 급여, 수익 중 일부를 꾸준히 기부해 왔다. 2009년 합천군 교육발전기금 100만원을 시작으로, 합천군교육발전위원회에 총 800만원을, 농축산물가격안정기금에 1300만원을, 불우이웃돕기 성금 400만원을 출연했다.

2021년에는 이장 수당 300만원과 개인 사비 1180만원을 더해 대양장학회에 기탁했고 대병중학교에도 100만원을 장학금으로 기탁했다. 2023년에는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잔치를 열었고, 2025년에는 고향사랑기부금으로 200만원을 기부했다.

윤 이장은 특히 지난 2월과 3월 안금리 향우들에게 권유해 2900만원의 고향사랑기부금을 기탁하도록 했다.

최근인 지난 7월에는 수해복구 성금으로 200만원을 내놓았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10년 넘게 자신의 모교인 대양초등학교 신입생과 졸업생에게 장학금과 선물을 꾸준히 전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부자가 아니라도 나눌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운동화 한 켤레라도 더 신기고 싶은 마음, 그게 제 진심입니다.”

문제 해결형 리더로 자리매김…말보다 행동, 권한보다 실천

윤 이장은 단순한 민원 전달자를 넘어, 문제 해결형 리더로 자리매김했다.

2021년, 6년간 예산 민원 때문에 방치됐던 후사동 안대선 301호 농어촌도로 민원 선형개량사업을 3일만 해결해 재개됐고, 이를 통해 안금리 이장을 하게 됐다.

“행정은 끈질기게 해야 됩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길이 보여요. 주민들이 고생하시는 걸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같은 해, 농촌형 가로등에 자동 시간조절 시스템을 도입해 전기료를 아끼고 효율적인 관리까지 꾀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스템을 ‘작동’하게 만드는 숨은 주역이었다.

2022년, 그는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군수 예비후보에 등록했으나, 당내 경선에서 배제되며 결국 무소속으로 도의원 선거에 도전했다. 결과는 낙선. 그리고 그는 정치를 완전히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이제 선거는 끝입니다. 사람 옆에 있는 게 제일 좋은 정치라 믿습니다. 현수막 없이도, 유세차 없이도 주민 곁에 있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윤재호 이장의 하루는 새벽 3시에 시작된다. 절 앞에 나가 삼배를 올리고, 안개 자욱한 들녘을 둘러보며 하루를 준비한다. 마을회관 앞에 멈춰 서서 어르신들 안부를 묻고, 고장 난 마을 스피커를 손보고, 초등학교에 장학금을 전달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정치인’이 아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정치적인 사람’으로 살아간다. 말보다 행동, 권한보다 실천. 윤 이장의 삶은 작지만 단단한 파장으로 지역사회에 깊게 스며들고있다.

윤재호 이장은 오늘도 어김없이 작지만 소중한 일을 묵묵히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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