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수요일 오전, 기자는 창원 팔용동으로 향했다. 경남창조경제혁신센터가 자리한 건물은 도심 속에서도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를 풍겼다. 주변에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입주한 사무실 건물이 줄지어 있었고, 곳곳에서 젊은 창업자들을 지원하는 관계자들이 오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창업과 혁신을 키워내는 공간답게 주변은 활기와 도전의 기운이 묻어났다. 센터 입구에 들어서자 창업 지원 프로그램 홍보 포스터가 기자를 맞이했다. 5층 집무실에서 만난 노충식 대표이사는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눈빛으로 손을 내밀며 “경남의 청년들이 이곳에서 더 큰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말했다. 집무실 벽면에는 스타트업 관련 내용과 창업기업들의 성과물, 그리고 라이즈 사업에 관한 대학 지원 프로그램이 칠판 글씨로 빼곡히 채워져 있어 이 공간이 단순한 집무실이 아니라 창업 생태계의 중심 허브임을 실감케 했다.

 

1. 인사 및 이력 소개

□ 한국은행 경남본부장, 경남테크노파크 원장, 울산·경남 혁신플랫폼 총괄센터장 등을 거치면서 얻은 가장 큰 배움은 무엇이었습니까?

세 기관에서의 경험을 통해 얻은 가장 큰 배움은 ‘창업 생태계 전주기에 대한 통합적 이해’였다. 한국은행 경남본부장으로 근무하면서는 중소기업 금융지원과 통계 편제, 조사·연구 업무를 담당하며 경남 경제 구조를 심층적으로 파악하였고, 경남테크노파크에서는 기술 개발과 산업 혁신, 그리고 기업 성장을 뒷받침하는 인프라 구축의 필요성을 인식하였다. 이어 울산·경남 혁신플랫폼에서는 교육과 인재 양성, 더 나아가 창업자 발굴과 지원이 지역 경제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도출된 결론은 창업 생태계가 어느 한 요소만으로는 성장할 수 없다는 점이다. 자금·기술·인재·인프라가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지역 맞춤형 혁신 시스템이 작동하며, 이는 곧 지역 경제를 지속가능하게 견인하는 원동력이 된다.

 

2. 경남창조경제혁신센터의 역할과 성과

□ 많은 분들이 경남창조경제혁신센터를 ‘스타트업 지원 기관’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표님께서 보는 센터의 핵심 역할은 무엇인가요?

센터의 역할은 넓고 깊다. 센터는 창업 교육, 오픈이노베이션, 투자라는 세 가지 핵심 축을 기반으로, 지역 내 다양한 혁신 기관과의 유기적인 연계를 통해 협업 구조를 설계하고 있다.

나아가 지역 창업 생태계를 지속적이고 고도화된 시스템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체계가 구축될 때, 스타트업은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 대표 취임 이후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한 변화나 혁신은 무엇이었습니까?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한 변화는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라이즈)와 연계한 창업지원 사업이다. 이 사업의 핵심 목적은 지역 대학이 단순한 교육기관을 넘어, 지역 혁신을 선도하는 핵심 주체로 자리매김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경남 내 16개 대학과 긴밀히 협력하여 ‘UNI-CORN 창업공유대학’ 지원 체계를 구축하였다. 각 대학이 보유한 인프라와 장점을 결집함으로써, 경남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창업 캠퍼스처럼 기능하도록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센터는 실습형 창업 교육 프로그램인 CORN 프로젝트(Customer Oriented ReNovation)를 운영하여, 학생들이 직접 창업 과정을 체험하고 실전 감각을 익힐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대학이 보유한 기술·연구 역량과 혁신 인재를 실제 창업으로 연결하는 시너지를 극대화할 계획이다.

 

□ 최근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의 기술 연계 지원 사업이 화제가 됐는데, 어떤 배경과 목적이 있었는지 설명해 주시죠.

대표적인 성과로는 인공지능 합성데이터 전문 스타트업 ‘젠젠에이아이’와 함께 수행한 ‘Multi-View 다중센서 복합 데이터셋 구축’ 과제를 들 수 있다. 이는 항공기의 고도별 다양한 시점에서 고해상도 합성 데이터를 생성하여 군사 표적 인식, 감시·정찰 시스템, 인공지능 학습 등에 활용하는 기술이다. 젠젠에이아이가 해당 기술을 구축·검증하고, KAI가 이를 실증·검증에 활용함으로써 방위·보안 분야에서 새로운 응용 가능성을 열었다.

또 다른 사례로는 스타트업 ‘리빗’과의 협업을 통해 항공우주 산업 특성을 반영한 Scope3* 온실가스 배출 산정 체계를 개념실증한 프로젝트가 있다. 항공기 생산 과정의 복잡성으로 인해 그간 글로벌 ESG 기준에 부합하는 Scope3 관리가 어려웠으나, 이번 협업을 통해 공급망 전반의 배출량을 정량화하고 관리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하였다. 이는 KAI가 탄소중립 목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Scope3 : 기업의 공급망, 제품 사용 및 폐기 등 전후방 가치사슬에서 발생하는 간접적인 온실가스 배출량을 의미

결국 KAI와의 협업은 단순한 기술 이전 차원이 아니라, 지역의 대·중견기업이 직면한 과제를 개방형으로 제시하고, 스타트업이 혁신적 해법을 제공하여 공동 사업화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도록 돕는 것에 본질적인 의미가 있다.

 

3. 스타트업·기술 창업 지원

□ 경남 지역 스타트업의 가장 큰 강점과 약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경남 스타트업의 가장 큰 강점은 ‘현장 해결형 기술력’과 ‘지역 특화 산업 기반’이다. 경남은 제조업 기반이 탄탄하여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방대한 빅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피지컬 AI를 구현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산이다. 나아가 이러한 데이터를 활용한 AX(AI Transformation) 추진 역량은 경남 스타트업이 미래 신산업 분야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결정적 강점이라 할 수 있다.

반면, 가장 큰 약점은 ‘투자 유치의 어려움’이다. 경남은 수도권에 비해 투자기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결과적으로 창업이 지역에서 시작되더라도 성장 동력이 수도권에 집중되는 구조적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강점을 살리고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조업 기반 데이터를 활용한 신산업 창출과 함께 지역 내 투자 인프라 확충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 센터가 지원한 스타트업 중 기억에 남는 성공 사례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2018년 창업한 ㈜킥더허들은 “약사가 설계한 합리적인 영양 솔루션”이라는 슬로건 아래 건강기능식품 개발·판매 서비스를 제공하며, 지난해 245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또한 크리에이터 활동으로 일본·중화권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등 빠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센터는 입주 지원과 직접 투자, 사업화 지원을 통해 이들의 성장을 뒷받침하였다.

두 번째는 ㈜코드오브네이처이다. 2021년 양산에서 창업한 이 기업은 이끼를 활용해 황폐화된 토양을 신속하게 복원하는 독창적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주력 제품인 토양 복원 키트 ‘모스비(MOSBI)’는 기존 복원 방식 대비 10분의 1 비용으로 회복이 가능하여, 유럽 최대 사회적 가치 투자자 중 하나인 EQT그룹 주관 창업경진대회에서 우승한 이력이 있다. 현재까지 누적 투자유치 금액은 30억 원에 이르는 유망 스타트업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기업은 ㈜블루랩스이다. 2022년 대학생 창업팀으로 출발한 이 회사는 굴 껍데기 등 친환경 소재를 활용한 수처리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설립 초기 고려대기술지주로부터 시드 투자를 유치하였으며, 올해는 중기부의 초격차 스타트업 1000에 선정되는 등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특히 통영에 본사를 두고 지역 자원을 활용하는 점에서, 지역 기반 스타트업의 대표적 성공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4. 산업·기술 트렌드와 협력

□ 한국인공지능기술산업협회 부회장으로서, AI 산업이 경남 지역 산업과 어떻게 결합될 수 있다고 보시나요?

협회는 창조경제혁신센터와의 협업을 통해 AI 산업과 지역 산업을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AI는 경남의 주력 산업과 결합해 제조 자동화, 품질 관리, 예지보전, 신제품 설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 혁신을 창출할 수 있다. 조선, 우주항공, 방산 등 핵심 산업에서는 생산 공정과 장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AI 솔루션 적용이 효율성을 높이고, 불량률 감소와 비용 절감에도 직접적인 기여를 한다.

특히 스타트업과 대기업 간 협력은 AI 기술을 실질적으로 활용하고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오픈이노베이션 사례에서 보듯, PoC(개념실증), 멘토링, 기술 검증 과정을 통해 스타트업은 신뢰 기반을 확보하고, 대기업은 혁신적 솔루션을 실현하는 윈윈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결국 AI 산업과 지역 산업의 결합은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지역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글로벌 시장 진출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 전통 제조업 중심의 경남 경제에 신기술을 접목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난관은 무엇입니까?

전통 제조업 중심의 경남 경제에 AI를 접목한 스마트공장 등 신기술을 도입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난관은 ‘기술 수용성 부족’과 ‘협업 생태계 미성숙’이다. 경남의 주력 산업은 오랜 경험과 안정적 생산 체계를 바탕으로 운영되어 왔지만, AI를 현장에 적용하는 과정에서는 조직적 저항과 변화 관리의 어려움이 존재한다.

또한 제조 현장에서 AI 기반의 AX(AI Transformation)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주체 간 긴밀한 협업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재 경남에서는 이러한 산업-혁신 주체 간 연계 체계가 충분히 성숙하지 못해, 기술 도입 과정에서 실증·검증·확산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장 맞춤형 기술 교육과 인재 양성, 대기업의 개방형 혁신 정책, 스타트업과 중견기업을 연계하는 혁신적 지원 구조가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PoC(개념실증) 중심으로 기업들이 신기술을 직접 체험하고 점진적으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결국 이러한 체계적 지원이 병행될 때, 생산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새로운 산업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5. 향후 비전과 메시지

□ 개인적으로 ‘경남 혁신’의 키워드로 꼽고 싶은 단어는 무엇입니까?

‘경남 혁신’을 대표하는 키워드로 꼽는 단어는 ‘AX’이다. AX란 경남의 전통 제조업을 AI와 디지털 기술로 전환하여 생산성과 혁신성을 동시에 높이는 전략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환은 경남 산업의 경쟁력을 회복하고 미래 성장 산업으로 나아가는 핵심 수단이 될 것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산학연관이 긴밀하게 협업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특히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방대한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AI 기반 분석과 자동화, 품질 관리, 예지보전 등을 적용하면, 기존 산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신제품 개발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AX를 중심으로 한 혁신 전략은 지역 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고, 선순환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는 기반이 된다. 이를 통해 미래 지향적 산업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혁신 지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길었던 인터뷰의 끝자락에서 노충식 대표이사는 ‘사람’을 강조했다. 그는 “창업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고, 경남의 미래도 인재가 만들어 간다”며 “센터는 기업과 청년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안전망이자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혁신센터가 단순히 지원금을 배분하는 곳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실제 비즈니스로 연결해 지역경제를 견인하는 플랫폼이 되도록 하겠다”고 힘주어 덧붙였다. 노 대표의 발언에는 지역에 뿌리내린 청년 창업가들을 지켜내고, 그들이 전국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이끄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며 창밖으로 보이는 팔용동 거리는 여전히 분주했지만, 그의 말처럼 그 안에는 무수한 가능성이 숨 쉬고 있었다. 경남창조경제혁신센터의 행보가 단순한 지원을 넘어 진정한 혁신의 촉매제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저작권자 © 뉴스경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