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은 작가 (경남문인협회·경남시조시인협회 회원)
 


입추도 지나고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가 훌쩍 지났지만, 아궁이에 불을 지핀 구들장처럼 아스팔트에서 피어오르는 한낮 열기는 사그라질 줄 모른다.

타들어 가는 숨을 최대한 쪼개어 조금씩 내뱉는다. 금세라도 터질 듯한 심장을 다독이며 오늘도 나는 뛰고 있다.

작년 9월, 갱년기 증상이 하나둘 생기며 힘들어할 때 즈음,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운동이 최고의 처방”이라는 말에 나는 바로 목표를 정했다.

새벽 5시 40분, 알람에 맞춰 올라가지 않는 눈꺼풀을 비비며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다행히 집 근처에 러닝하기 좋은 공원이 있다는 사실도 누군가 보내준 응원의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내 생애 첫 러닝은 그렇게 시작됐다.

처음에는 백 미터도 버거웠다. 얼마나 오랫동안 운동 부족이라는 꼬리표를 외면하며 살아왔는지 실감했다. 숨은 턱까지 차올랐고, 심장은 금세라도 터질 것 같았다.

뛰다 걷다를 반복하며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자 공원 세 바퀴를 멈추지 않고 뛸 수 있었다.

그렇게 유별났던 한파조차 꺾지 못한 나의 의지는 지난 3월, 5킬로미터 단축 마라톤에 도전하는 용기를 낳았다.

무작정 달리기 시작한 터라 5킬로미터라는 거리감도 없었고, 호흡법이나 바른 자세 같은 기본적인 준비도 없었다. 수많은 참가자들 사이에 섞여 달리다 반환점을 돌 즈음, 급속하게 오르는 심박수와 금세 터질 것만 같은 심장의 호소에 발이 멈추려는 순간, 바로 앞에 한 사람이 보였다.

백발의 그녀는 얼핏 보기에도 칠순쯤 돼 보였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달리는 모습을 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도 호흡을 가다듬고 내 페이스를 찾아 달리기 시작했다. 결승선을 통과하고 확인한 내 기록은 33분. 하지만 기록은 중요하지 않았다. 끝까지 완주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느린 출발이었지만, 나의 한계를 체험하며 단단한 기반을 다졌다는 것이 더 큰 성과였다. 느린 걸음이라도 묵묵히 나아가면 언젠가는 자만한 토끼도 이기고 목표점에 먼저 도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운동을 시작한 뒤 몸에도 변화가 생겼다. 늘 괴롭히던 변비가 사라졌고, 이틀이 멀다 하고 진통제를 찾아야 했던 편두통도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산행에서도 늘 뒤처지던 내가 이제는 앞장서 오를 수 있을 만큼 근력이 붙었다.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마다 나는 뛴다. 숨이 차올라 터질 것 같은 순간을 견디며 찾아오는 희열 속에서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스스로 만든다.

내년 봄에는 10킬로미터에 도전할 계획이다. 언젠가는 42.195킬로미터의 풀코스 완주도 해낼 것이다.

여름밤이 점점 식어간다. 축축한 어둠이 내린 풀숲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와 사그락거리는 낙엽소리를 응원 삼아 나는 오늘도 달린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바라봐 주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게 포기하지 말기를 응원하는 것이다.

삶 또한 마라톤과 같다. 출발선은 같지만 변수는 늘 존재한다. 뒤따르던 경쟁자와 부딪히기도 하고, 갑작스러운 경련에 주저앉기도 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대신 달려줄 수는 없다. 오직 내가 일어서서 다시 달려야 한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 결승선에 먼저 도착한 사람이 많겠지만, 내 뒤에서 더디게 오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꼴찌로 도착하면 어떤가. 끝까지 완주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성공한 인생이 아닌가!

달리면서 맞는 바람, 흘러가는 구름, 반짝이는 별빛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어루만지며, 나를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작은 숨결 하나에도 감사하며, 오늘도 나는 나 자신과 함께 달린다.

저작권자 © 뉴스경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