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스침, 비유·은유로 해석”
‘너는 건너오고 / 나는 건너간다 / 서로의 이름을 건너로 옮기는 동안 / 밟아간 그 사이가 / 백년이나 깊었다’(김용권의 시 ‘횡단보도’)
김해에서 활동 중인 김용권 시인이 시집 ‘시간의 현상학’을 출간했다. ‘수지도를 읽다’, ‘무척’, ‘땀의 채굴학’, ‘그림자는 그림자놀이를 한다’에 이은 다섯 번째 시집이다.
김 시인은 이번 작품 속에서 자신을 비롯한 현대인의 일상과 다양한 시간, 그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을 다양한 은유와 시적 표현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는 생활에서 만난 사물과 사건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지향하는 삶의 태도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번 시집에서는 ‘횡단보도’라는 작품들에 그것들이 잘 표현돼 있다.
‘횡단보도’는 전체 시집의 수미를 상관하고 있음은 물론 1부의 다섯 번째 시의 제목으로도 쓰이면서 같은 제목으로 총 세 번이나 시집에 등장한다.
‘섬에 갇혔다 / 너의 눈짓을 무시하고 뛰어들다가 / 아차 하면, 피의 분수가 터지는 십자로 / 고통을 금처럼 그어놓고 / 악마에게 홀릴 영혼을 주인으로 모신 이들이 / 붉은 눈동자를 끌고 간다’(횡단보도)
구모룡 문학평론가는 앞선 ‘횡단보도’ 두 편을 두고 김 시인이 ‘나’와 ‘너’의 ‘만남’을 전 생애를 담보한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는 곧 평범한 일상조차도 하나의 ‘사건’으로 대하는 태도에 주목한다.
‘깜빡인다 / 위험신호일까? / 줄은 이미 길게, 꼬리를 물고 있다 / 냉기가 몸속을 횡단한다 / 건너가면 그만인 것을 / 망설인다 / 길은 무너졌지만 당신은 얼마나 / 먼 곳에서 왔는지…(횡단보도)
김 시인은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스치는 무수한 군중과 ‘나’, 이 스침 속에서 사물은 매순간 변하고 이동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찰나에 지나간 ‘스침의 시간’을 시를 통해 채색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모든 시의 기저에는 ‘노동의 숭고함’이 스며들어 있다. 세 번째 시집 ‘땀의 채굴학’이 대표 예시다. 약자의 노동 속에 나를 북돋우는 깨달음의 서정이 녹아있다고 김 시인은 늘 설명한다.
김 시인은 “일상과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이러한 풍경과 경험적 현실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시적 공간을 이야기하고자 했다”며 “이러한 서정이야말로 인간이 원초적으로 가치를 추구하는 시의 감정이다. 낯설음의 세계를 낯설지 않게, 친숙하게 옮겨놓고자 했다. 이번 시집이 독자들에게 있어 자신을 둘러싼 일상과 삶의 태도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