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호, 손심심(국악인, 풍속학인)
상사 소리가 고단함을 잊게 한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농부는 곡식을 창고에 무사히 들여놓기 전까지는 결코 풍농한 것으로 풍년가를 부르지 않았다. 그만큼 농사는 모를 심는 일부터 시작해서 거둬들이기까지 늘 걱정이 따랐다. 병충해, 가뭄, 홍수 태풍 등 농사는 끝까지 살얼음판을 걷는 듯이 조심스럽고 신중해야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
쌀 문화권에서 쌀은 단순한 먹을거리를 넘어 ‘쌀 미(米)’ 자와 ‘푸를 청(靑)’ 자를 합쳐 만든 ‘정할 정(精)’으로 표현됐으며, 가장 맑고 본질적인 ‘정수(精髓), 정기(精氣), 정신(精神)’으로 신의 반열을 상징했다. 예부터 “섬 처녀 시집갈 때까지 쌀 서 말 못 먹고 시집간다”라는 말이 있듯이 쌀밥은 누구나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조상을 모시는 제사나 신령에게 고사를 지낼 때와 같이 특별한 의례에서나 맛볼 수 있었으며, 그것도 일정한 지위를 갖지 못하면 쉽게 맛볼 수 없는 귀한 음식이었다.
그래서 쌀밥을 보약이라 했고, 총각이 밥 먹는 것이 복스러우면 귀한 딸도 선뜻 그냥 내어줬다. 그리고 “언제 밥이나 같이 하시죠”라고 하면 당신이 마음에 드니, 같이 교류하자는 친근감의 표시가 됐고, “밥 빌어먹을 놈”, “밥통 같은 놈”, “밥값도 못하는 놈”이라는 말은 치욕적인 욕이 됐다. 특히, “밥숟갈 걸었다”와 “밥숟갈 놓았다”라는 말은 삶의 시작과 끝을 상징했으니 ‘쌀’은 우리 문화에서 진정 사람의 목숨과도 같았다.
원래 ‘벼’는 아열대 작물이라서, 적도 근처의 남쪽에서는 덥고 습한 기후로 크게 힘을 들이지 않아도 잘 자라지만, 우리나라처럼 여름과 겨울의 기온 차가 크며, 벼가 자랄 수 있는 기후가 한정된 한반도는 사실 벼가 생육하기에 적합하지 않아 우리네 풍토와는 잘 맞지 않았다.
하지만 불편한 사실이 있어도 쌀로 지은 밥은 너무 맛이 좋고, 영양가도 높으며, 장기간 보관하기도 쉬웠다. 무엇보다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높아 효율적이었고, 물을 넣어 밥으로 지으면 부피가 세 배나 늘어나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장점까지 있어 이 땅의 선조들은 쌀에 완전히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불리한 조건 속에서 벼를 심고 쌀을 거두려면, 그야말로 그것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모든 힘과 정성을 쏟아야 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논을 갈고, 모를 심고, 김을 매고. 가뭄이나 장마, 태풍과 서리가 들이닥치는 계절의 끊임없는 순환 속에서 쉬지 않고 몸을 움직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벼는 언제나 적은 수확을 인간에게 안겼고, 쌀농사가 흉년을 맞으면 인간은 살아남기 어려웠다.
“손발만 부지런히 움직이면 먹고 살 수 있다”, “좋은 농사꾼에게 나쁜 땅이 없다”라며 부지런하게 논밭 갈고, 물 가두고, 씨 뿌리고, 못자리하고, 모 찌고, 모 심고, 초벌 김매고, 두 벌 매고, 세 벌 매고, 병충 잡고, 피 뽑고, 도구치고, 벼 베고, 타작하는 지루한 노동이 계속됐었다.
동이 틀 때부터 해 질 녘까지 흙이 질퍽한 논에서 주로 엎드려서 지루하고, 긴 집중적인 일을 해야 하는 농사일은 참으로 고된 노동이었다. 이 고단함을 잊고 능률을 올리게 하는 청량제가 있었으니. 바로 남녀 간의 애정을 노래하는 ‘상사소리’였다.
“모시적삼 반적삼에 분통같은 젖좀보소
많이보면 병난다네 담배씨만치만 보고가소
모시적삼 안섭안에 함박꽃이 봉이졌네
그꽃한쌍 딸려하니 호령소리 벼락같네
초롱초롱 양사초롱 임의방에 불밝혀라
임도눕고 나도눕고 초롱불을 누가끄리
동래부산 찬물탕에 목욕하는 저처자야
남의댁이 아니었으면 내첩을 삼을것을”
- 모심기 소리 / 경남 창원
‘상사(相思)소리’란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연모하는 마음을 서정적인 가사로 표현한 곡을 뜻한다. 사랑을 주제로 한 이 감성적인 음악은 연인과의 추억, 설렘 등 행복한 감정을 떠올리게 해 심리적 피로를 완화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이것은 전형적인 노동요의 기법으로 공감각적인 감정과 몰입을 통한 정서적 효과가 긴장을 완화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자극해, 누적된 피로감, 권태감, 좌절감, 탈진 등의 스트레스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고, 새로운 힘을 회복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심리적 이론이었다.
하기야 오늘날에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상사소리만큼 억눌린 정서를 해방하는 것이 또 있을까. 그 옛날 들판에서 불린 남녀 상사소리는 단순한 흥취가 아니라 노동의 피로를 덜어주고 집단적 일체감을 고조시키는 구체적 기능을 지녔다.
더 나아가 이러한 상사소리는 남녀의 결합을 통한 생산의 근본 원리를 담아내, 유감 주술적 행위를 통해 풍요로운 쌀 수확을 기원하는 역할을 했다.
그렇게 올해도 쌀섬을 가슴에 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