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한 주가 시작된 시월 셋째 월요일은 가을다운 날씨를 보여줘 기온이 제법 떨어졌다. 전날 서북동 감재를 넘은 귀로에 북면 텃밭을 둘러왔다. “늦도록 더위에다 비마저 자주 내려 / 텃밭에 심은 채소 성장세 흡족하나 / 달팽이 나눠 먹자 해 기부하듯 바쳤다 // 무농약 유기농을 벌레에 뜯기고도 / 이랑이 비좁아서 알맞게 솎았더니 / 당분간 식탁에 오를 찬거리가 생겼다”
날이 밝아오기 전 앞 단락 인용절 ‘가을 푸성귀’를 남기고 아침 식후 평소와 다른 동선으로 퇴촌교 삼거리로 향했다. 창이대로를 건너 사림동 주택지에서 사격장으로 올랐다. 올해 부산이 주 개최지인 전국체전과 장애인 체육대회 사격 경기장으로 선수단을 격려하는 펼침막이 내걸렸다. 잔디 운동장 바깥 트랙을 따라 걸으니 수령이 오래된 벚나무는 낙엽이 져 나목이 돼 갔다.
봄날 벚꽃이 피면 꽃 대궐을 이룬 언덕에는 가을이 먼저 내려앉는 듯했다. 운동장 가장자리 둘러친 고목 벚나무 가지는 내년 봄에 잎보다 먼저 피어날 꽃눈이 점지돼 겨울잠에 들 테다. 잔디밭을 나와 소목고개로 오르다 약수터 샘물을 한 모금 받아 마셨다. 산허리로 뚫은 숲속 길로 들지 않고 고갯마루로 오르자 길섶에 핀 구절초와 쑥부쟁이꽃에서 계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고개 쉼터에서 소목마을로 내려서자 밭에는 가을 채소들이 싱그럽게 자랐다. 과육이 단단히 채워진 단감은 볼이 누렇고 대봉감은 주황색으로 착색돼 수확을 앞둔 때였다. 마을 어귀 수형이 잘생긴 노거수 느티나무 아래는 한 할머니가 아침 볕살을 쬐었다. 정병산터널을 빠져나온 국도 교각은 남해고속도로를 걸쳐 동창원과 북창원으로 갈래 나눠 달팽이 모습으로 휘어져 돌았다.
교각 아래 정류소에서 본포로 가는 30번 버스를 탔다. 용잠삼거리에서 화목과 석산을 거친 용산마을에서 내렸다. 산남저수지와 수문이 연결된 둑에서 용산 뒷동산 단감농원 데크를 따라 주남저수지 둑길을 걸었다. 저수지 수면 넓게 퍼져 자라 고운 꽃을 피웠던 연은 잎이 시들어 가는 즈음이다. 들녘으로 물길을 내보내는 배수문을 지난 둑은 코스모스 꽃길이 아득하게 펼쳐졌다.
낙조대와 주천강 물길이 시작된 배수장을 지나자 안전 데크와 접한 갓길은 물억새가 꽃이 피어 가을 서정이 물씬했다. 탐조대 근처는 생태 사진작가 최종수 선생이 커다란 카메라로 원경에 초점을 맞췄다. 지금 무슨 새가 포착되느냐 물었더니 선발대로 내려온 큰기러기와 흰죽지가 몇 마리 보인다고 했다. 녀석들은 들판 추수가 끝나지 않아 수면에서 먼 비행 여독을 푸는 듯하다.
둑길이 끝난 가월마을 창원 민속 사진을 전시한 아래층 식당에서 내가 속한 문학 동아리 문집이 나온 발간 행사장으로 갔다. 지난봄 하동으로 떠난 문학 기행 후 뵙는 반가운 얼굴들을 대면했다. 회원이 다수 자리해 집행부에서 연간으로 펴내는 책의 출간을 기념하는 인사말이 이어졌다. 이어 끓는 육수에 버섯과 미나리가 든 쇠고기를 익혀 면과 함께 볶음밥이 덤으로 차려졌다.
점심 식후 회원들과 인근 주남저수지 둑길을 걷는 산책을 나섰다. 식당에서부터 걷기도 하고 차량을 탐조대 부근으로 이동시켜 둑으로 오르는 이들도 있었다. 삼삼오오 가벼운 발걸음으로 걷는 둑길은 아까 행사 전 나 혼자 물억새 열병을 받고 지났던 길을 한 번 더 걸었다. 배수문을 거쳐 낙조대 쉼터로 모여들 때 슬그머니 주남마을로 향해 벼들이 익어 고개 숙인 들판을 지났다.
가술에 닿은 오후는 초등학교 울타리 바깥에서 동료와 주어진 안전지킴이 임무를 수행했다. 고등포마을 회관 쉼터에서 ‘시월 주남지’를 남겼다.
“바이칼 호수에서 따뜻한 남녘으로 / 먼 비행 나래 접어 겨우내 머물 둥지 / 철새가 여독을 푸는 저수지가 저기다 // 길고 긴 산책로로 둘러친 안전 데크 / 꽃이 핀 물억새가 일렁인 은빛 물결 / 산책객 마중을 나와 꽃길 따라 걷는다”
作 25.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