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호, 손심심(국악인, 풍속학인)
낮이 점점 짧아지고 밤은 길어지고 서늘한 기운이 하루가 다르게 몸에 와닿았다. 빨리 가을걷이를 서둘러야 했다. “가을 일은 미련한 놈이 잘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농사일은 그저 요령 피울 일없이 그냥 묵묵하게 손을 바쁘게 놀리며 하는 일이 제일 상책이었다.
역시 곡식은 봄에 심는 일도 중요하지만, 잘 가꿔 가을에 이삭을 털어서 낟알을 거두는 일은 더 절실했다.
일반적으로 추수는 가을 초입에 깨를 제일 먼저 털고, 그다음은 나락 타작이고, 제일 나중에 콩을 털었다. ‘콩 타작, 콩마당질’이라고 하는 이 작업은 규모가 적을 때는 긴 막대기로 콩대를 패서 털고, 규모가 크면 도리깨 같은 농기구로 콩대를 두들겨 콩알을 털어내는 일을 말한다.
마당에는 며칠 전부터 밭에서 논두렁에서 거둬 온 콩대를 마당에 넓게 펴서 최종적으로 말리는 작업을 했다. 콩대는 시기를 놓치면 꼬투리에서 콩이 다 튀어 나가버리기 때문에, 헛농사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꼬투리가 입을 굳게 다물었을 때 미리 집으로 들여 볕이 잘 드는 곳에 말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콩 타작하는 날은 자질구레한 일이 참 많았다. 일단 방해가 되는 닭과 병아리를 몰아다가 닭장에 넣었고, 강아지도 제집에 꼭꼭 묶어 뒀다. 그리고 먼지가 많이 나서 빨래를 전부 거둬들였고, 마당을 가로지르는 빨랫줄과 그를 받치는 바지랑대도 풀어 한쪽으로 몰아 뒀다. 먼지 때문에 우물에도 뚜껑을 덮었고, 콩 타작하는 사실을 이웃집에도 알렸다.
이른 아침 마당에 우리 집 보물 1호인 6·25 때 미군들이 남기고 간 엄청난 크기의 군용 깔개가 펼쳐지고 그 위에 콩 단을 넓게 깔았다. 공단을 들어 옮기는데 벌써 살짝 들기만 해도 콩이 툭툭 튀었다. 이렇게 콩 단을 눕혀 놓고 남자들의 도리깨질이 시작됐다.
‘도리채’라고도 불리는 도리깨는 ‘도리+깨’의 합성어로 한자어로는 연가(連枷)라고 하며, ‘돌리는 채’라는 의미가 있다. 어른 키보다 한 배 반의 긴 대작대기 끝에 구멍을 뚫어 비녀목을 끼우고, 싸리 나무줄기 4개를 개구리 발같이 엮어 달아 허공에 높이 치켜들어 돌려서 곡물을 치는 타작 도구를 말한다. 보통 보리나 콩 등을 타작할 때 사용하며, 어른들 수 명이 둘러서서 구령에 맞춰 번갈아 가면서 내리쳤다.
도리깨질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숙련된 기술이 있어야 가능했다. 그래서 초보자는 아무리 쳐대도 좀처럼 제대로 돌지를 않아 헛일이 되기에 아이들은 하지 못하게 하고 몸에 익은 어른들이 주로 했다. 심지어 보리타작같이 큰 타작을 할 때 숙련된 상 도리깨 꾼은 곱절의 품삯을 주고 사 오기도 할 정도로 그 기술이 중요했다.
“여기쳐라 저기쳐라
여기도치고 저기도쳐라
후려치고 뒤집아쳐라
이리치고 저리치고
힘있게 잘도한다
김서방은 앞을치고
이서방은 뒤를쳐라
박서방은 옆을치고”
- 강원도 철원
박자에 맞춰 공중에서 쉭쉭 소리를 내며 내리치는 도리깨질에 노란 메주콩 알들이 꼬투리를 벗어나 사방으로 튀면서 흩어졌다. ‘콩알만 하다’라는 말이 꼭 작다는 표현만은 아닌 것 같았다. 사실 다른 곡물에 비해 콩알은 그 크기가 제법 커서 수확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렇게 한 판 도리깨질이 끝나면 깔꾸리로 덤불을 걷어내고 아직도 꼬투리가 벌어지지 않은 것들을 모아 다시 방망이로 두드렸다. 이런 일들은 주로 꼼꼼한 할머니와 어머니가 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다음은 내가 힘을 쓸 순간이었다. 나는 정지에서 챙이를 가지고 나와 아래위로 흔들며 바람을 일으켰고, 할머니는 그 앞에서 바가지를 치켜들어 조금씩 내려보내며 쭉정이와 검불과 티를 날려 보내고 콩을 골라내는 작업을 했다.
콩은 버리는 게 하나도 없는 귀한 곡식이었다. 콩잎은 물김치나 장아찌로 먹었고, 실한 콩은 두부, 된장, 떡고물로 사람이 먹었고, 콩깍지나 쭉정이 콩은 소여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억센 콩대는 콩대대로 명절이나 제사 때 그 불을 지핀 숯불에 생선을 구우면 그렇게 맛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늦여름, 콩꼬투리에 풋콩 여문 알이 알뜰하게 차오르면 온 들판은 콩서리를 노리는 개구쟁이들의 피운 연가가 사방에 자욱했다. 동네 아이들과 소를 먹이러 다니면서, 이 집 저 집 가리지 않고 콩밭에 슬그머니 들어가 이만저만 콩서리를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낫으로 콩 대를 살짝 통째로 베어다가 불 속에 던져두면 콩꼬투리가 톡톡 소리를 내며 익었다. 갓 익은 콩알을 꺼내 오독오독 씹는 맛은 기가 막혔다. 지금 같으면 절도네 뭐네 난리가 났을 것이지만, 예전에는 동네에서 아이들 미운 짓쯤은 서로 눈감아 주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해마다 같은 가을이 돌아오건만, 콩 타작도 아이들 웃음소리도 사라진 들판이 휑하니 쓸쓸한 것은 나만 그럴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