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환
의령군 봉수면사무소 산업팀장, 의령문인협회 사무국장
 


농자지천하대본야(農者之天下大本也 : 농민이 천하의 근본). 경남도에는 18개 시·군이 있다. 위치상 의령군이 가운데에 있고, 의령군 13개 읍·면 중 봉수면 서암리에 서암마을이 있다. 서암마을에는 덧배기 장단에 다음과 같은 장독풀이가 전승되고 있고 의령집돌금 농악단이 그 맥을 잇고 있다.

[사설 : “여보게 들” / “예” / “이 집 꼬치장, 된장, 간장 맛 좋으라고 / 장독 풀이 한번 해 보세” / “거 좋지”] // 울려라 지신아 지신밟자 지신아 / 눌류자 눌류자 장독에도 눌류자 / 이 장독이 누 장독고? 이(李)씨 가문에 장독일세 / 어따 그 장독 달고 보자 꿀맛 겉이도 해주소 / 이하 생략.]

봄부터 노심초사(勞心焦思), 농부의 땀방울이 결실을 앞두고 있다. 들녘에 황금물결 출렁이고 있는 벼 이삭들이 타작을 코앞에 두고 있다. 이 시기에 쓸모없는 궂은 비는 썩 물러가고, 햇빛 쨍쨍해 농부가 웃음 가득한 얼굴로 수확하는 들녘에서 풍요의 기쁨에 겨워 함께 울리는 풍악 소리 더 크게 울려 퍼지길 바라며, 농악(農樂 : 농부들이 꽹과리, 징, 장구, 북, 태평소 따위로 하는 음악 및 탈춤이나 곡예를 곁들여 행하는 민속놀이)을 이루고 있는 한자를 들여다본다.

농사 농(農)은 정수리 신(曲=囟의 변형)에 새벽 신(辰=晨)이 더해진 글자다. 농부가 새벽부터 정수리에 수건을 쓰고 밭에 나가 곡식을 가꾼다 하여 ‘농사’의 뜻이 됐다.

신(囟)은 한자에서 ‘정수리’를 뜻하는 상형문자로, 주로 갓난아이의 머리 윗부분, 특히 뼈가 굳지 않아 열려 있는 숫구멍(두개골의 봉합선)이 있는 자리를 본떠 만들어졌다. 신문(囟門, 숫구멍), 신전(囟塡, 어린아이의 정수리가 붓는 병), 신종(囟腫, 숫구멍이 부어오르는 병증)이 좋은 용례이다.

새벽 신(辰)은 별, 새벽, 아침이라는 뜻을 가진 한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辰자는 농기구 일종을 그린 것이다. 예부터 농사를 짓는 일에는 반드시 쟁기, 호미, 삽 등 농기구가 필요했다. 농사를 뜻하는 농사 농(農)에 辰자가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즉, 농부가 새벽부터 농기구를 손에 들고 밭으로 나가 정수리가 땀으로 흠뻑 젖어질 때까지 일하고 일하는 것이 농사인 것이다.

풍류 악(樂)은 실 사(幺幺=絲)에 흰 백(白)과 나무 목(木)이 결합 된 한자이다.

다시 말해 樂자는 본래 악기의 일종을 뜻했던 글자였다. 갑골문에 처음 등장한 모양을 보면 絲(실 사)에 木(나무 목)이 결합한 모습으로 가야금이나 거문고 같은 현악기를 표현했다. 실을 튕겨 소리를 내는 나무로 된 악기(木)와 현, 즉 줄(幺幺)을 표현한 것으로 ‘음악’이나 ‘즐겁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白(흰 백)이 더해지게 되는데, 이것은 줄을 튕길 때 사용하는 흰색 피크를 뜻하기 위해서였다.

덧붙여 흰(白) 술(막걸리)을 마시며 떠들고 노래하는 모습에 악기를 연주하며 흥겁게 노래한다는 뜻도 내포하는 한자다. 음악(音樂 :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주로 즐거운 소리를 소재로 해 나타내는 예술), 악성(樂聖 : 성인이라고 이를 정도로 뛰어난 음악가)이 좋은 용례이다.

봄에 모내기하면 싹이 자라 이윽고 이삭 대가 올라와 눈을 내고 꽃을 피운다. 물 대기와 풀 뽑기를 반복하는 틈에 이삭이 양분을 받아 통통한 알곡으로 채워져 고개를 수그릴 때 수확의 보람이 있다. 맨 먼저 올라오는 이삭 대 중에서 아예 모가지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 있고, 이삭 대를 올려도 끝이 노랗게 돼 마지막에 결실을 못 보는 모가 있다. 이런 것은 농부의 부지런한 손길에 솎아져서 뽑히고 버려진다.

싹(씨, 줄기, 뿌리 따위에서 처음 돋아나는 어린잎이나 줄기)의 모가지가 싹아지, 즉 싸가지다. 이삭 대의 이삭 패는 자리가 싹수(穗 : 이삭 수)다. 싸가지는 있어야 하고, 싹수가 노래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첫 번째 맞는 추수 때다. 그런데 나라 안팎이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검찰개혁과 3대 특검이 그렇고, 캄보디아 사태로 시끄럽다.

묘이불수(苗而不秀)는 싸가지가 없다는 뜻이다. 수이불실(秀而不實)은 싹수가 노랗다는 말이다. 싹이 파릇해 기대했는데 대를 올려 꽃을 못 피우거나, 꽃핀 것을 보고 알곡을 바랐지만 결실 없는 쭉정이가 되고 말았다는 얘기다. 같은 말이다.

지금 온 국민은 대관소찰(大觀小察)로 바라보고 있다. 이(李) 씨 댁 장독풀이처럼 고추장(검찰개혁), 된장(3대 특검), 간장(캄보디아 사태) 맛이 달고 꿀맛 같기를 기대하고 있다.

온 국민이 풍년 타작이 순조롭게 돼, 곡간에 알곡이 거덕거덕하길 바란다. 의령집돌금 농악단이 울리는 풍년가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어 한다. 꽹과리, 징, 장구, 북, 큰 소리 신명나게 울려 퍼져서, 올가을은 물론이고 내년도 싸가지 있고, 싹수가 보이는 나라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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