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저출생과 지역소멸, 그리고 대학·직업교육이 마지막 보루다

 

김영곤전)교육부 차관보 현)국립창원대헉교 RISE대외협력담당관
김영곤전)교육부 차관보 현)국립창원대헉교 RISE대외협력담당관

[김영곤 기고]

지금 경남의 위성 지도를 살펴보면, 산과 들 사이로 학생이 없는 텅 빈 운동장이 하나둘 보인다. 학생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학교는 더 이상 단순한 교육시설의 부재가 아니다. 그곳은 마을의 시간과 기억이 끊긴 자리다. 지역의 미래가 닫히는 신호다. 저출생과 학령인구 감소, 학교 폐교, 그리고 지역소멸. 이 네 단어는 이제 경남의 현실 속에서 하나의 고리를 이루고 있다.

1. 사라지는 학교, 무너지는 지역 삶의 생태

경남의 합계출산율은 이미 0.9명 아래로 떨어졌다. 청년층의 수도권 유출이 가속되며, 2025년 현재 초등학교 신입생 수는 불과 2만 명 초반에 머문다. 불과 6년 전만 해도 3만 명을 넘던 수치다. 학생이 줄면 학급이 줄고, 학급이 줄면 교사와 교육과정의 다양성도 사라진다. 결국 “학생이 없으니 학교를 없애야 한다”는 논리가 등장한다. 2025학년도 기준, 경남에는 신입생 0명인 초등학교가 26곳, 입학생 10명 이하 학교가 250곳에 이른다.(경남신문, 2월5일, 10월9일자 보도) 학교가 사라지면 통학 거리가 늘고, 젊은 부모들은 도시로 떠난다. 그렇게 지역은 교육에서 먼저 무너진다. 학교는 단지 배우는 공간이 아니라, 학생이 뛰어놀고 마을이 모이는 공공의 심장이다. 이 심장이 멎으면 마을의 삶도 멎는다. 학교의 소멸은 곧 공동체의 단절이다. 이 단절이 “지역소멸”이라는 거대한 쓰나미로 이어진다.

2. 지역과 산업을 잇는 경남형 직업교육 혁신

저출생과 학령인구 감소 속에서도 교육이 살아남는 길은 단 하나다. 배움을 지역의 일자리와 연결하는 것이다. 직업교육과 대학 교육과의 연계 강화다. 경남은 전국에서 드물게 스마트제조, 해양·조선, 승강기 산업이 공존하는 지역이다. 이 산업들은 단순한 고용이 아니라, 청년이 떠나지 않고 머물 수 있는 삶의 기반이다. 창원기계공고, 마산공고, 창원폴리텍 등은 스마트팩토리·AI자동화 실습실을 구축하고 창원대·경남대와 함께 ‘스마트제조 혁신교육과정’을 운영 중이다. 학생들은 3학년 2학기부터 대학·기업의 멘토링을 받고, 졸업 후 전문대 심화과정으로 진학하거나 LG전자·두산로보틱스 등 지역기업 현장실습으로 진입한다.

특히 국립창원대학교와 LG전자와의 협력은 ‘교육-산업-지역혁신’을 하나로 묶은 상징적인 모델이다. 2025년 9월, 창원대 캠퍼스 내에 LG전자 HVAC(냉난방공조) 연구센터가 들어서며, LG는 500억 원 규모의 연구인프라를 직접 투자했다. 이곳에서는 히트펌프·에너지 절감형 공조시스템 연구뿐 아니라 대학?기업?학생이 함께 참여하는 실무형 교육이 운영된다. 고교 직업교육과정에서 기초 설비기술을 익힌 학생들은 창원대에서 심화과정을 밟고, LG전자 현장에서 실습하며 ‘학습?진로?취업’이 이어지는 지역 내 완결형 인재양성 구조를 경험한다.

이처럼 교육이 산업의 현장과 맞닿을 때, 학교는 더 이상 ‘머물 곳 없는 배움의 섬’이 아니라 ‘지역 산업의 심장’이 된다. 거제관광고와 옥포고, 거제대가 함께 꾸리는 ‘친환경 스마트선박 아카데미’도 같은 흐름 위에 있다. 조선소의 설계·용접 현장을 교실로 옮기고, 졸업과 동시에 지역 협력사 취업으로 이어지는 실질적인 일자리 연계 모델이다. 거창의 ‘승강기 산업 클러스터’ 역시 한국승강기대학교와 지역고교가 협력하여 세계 3대 승강기 산업의 중심지로서 기술자격 취득률을 높이고 있다. 이 모든 교육과정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학교?대학?기업”이 하나의 삶의 생태계로 작동할 때, 학생은 ‘떠나는 인재’가 아니라 ‘머무는 전문가’가 된다는 사실이다.

3. 대학과 후학습으로 이어지는 지역 순환교육

직업교육은 더 이상 고등학교에서 끝나지 않아야 한다. 대학이 지역의 산업 중심 허브로 변해야 한다. 경남RISE센터를 중심으로, 대학이 직업계고 졸업생과 재직자를 위한 ‘후학습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경상국립대는 지역기업과 함께 ‘스마트팩토리 관리자 양성과정’을 개설해 고졸 취업자들이 주말·야간에 학점을 이수할 수 있도록 돕는다. 거제대는 ‘조선해양 전문학사?학사 연계 트랙’을 운영하며 현장 근무자가 대학에서 경력을 확장하도록 지원한다.

교육이 일자리에서 끊기지 않고, 일자리가 다시 교육으로 이어지는 구조. 이것이 ‘경남형 평생직업교육 순환모델’이 되어야 한다. 이런 순환체계가 정착되면, 학교는 지역의 출발점이 되고, 대학은 산업의 발전소가 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학생들은 ‘배움→일→삶’으로 이어지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4. 교육이 지역이다

저출생 대책은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구조문제다. 학교를 지키고, 대학과 직업교육을 연결하는 일은 곧 지역을 지키는 일이다. 학생이 학교에서 배우고, 그 배움이 지역 산업으로 이어지고, 그 일자리 속에서 다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 이 선순환이 만들어져야 경남의 미래는 지속된다. 교육은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지역의 시간과 사람을 잇는 일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바로 “작은학교를 살리고, 대학과 직업교육을 연결하는 것”에서부터다. 교육이 곧 지역의 생명이다. 경남의 미래는 교실에서, 그리고 대학의 연구실에서 다시 시작돼야 한다.

저작권자 © 뉴스경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