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시의 산업지도를 바꿀 ‘결정적 한 수’가 있다.
바로 양산ICD(내륙컨테이너기지)에 ‘UN국제물류센터’를 유치하는 사업이다. 단순히 물류창고를 하나 더 짓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래에 다가올 글로벌 물류 전쟁의 한복판에서 양산이 주도권을 쥘 수 있느냐의 문제이며 나아가 지역의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양산ICD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부산항의 내륙거점으로 활발히 운영됐다. 그러나 부산신항 개장 이후 물동량이 꾸준히 줄면서 그 위상이 예전만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양산ICD는 여전히 철도·고속도로·항만 접근성이 뛰어나고 부·울·경 물류권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잠재력이 크다. 또 가덕신공항과의 연계도 기대된다. 바로 이 지점이 UN국제물류센터 유치의 핵심 근거다.
UN국제물류센터는 단순한 화물센터가 아니다. 인도적 지원, 재난 구호물자, 국제협력물류를 총괄하는 ‘글로벌 허브’다. 전쟁이나 국제적 재난이 발생했을 때 즉시 구호품을 공급할 수 있는 인도적 지원 물류센터(UNHRD)이자 국제 네트워크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UNHRD는 동북아시아 권역에는 아직 한 곳도 없다.
만약 양산에 이 센터가 들어선다면 부산항과 가덕신공항, 양산ICD를 잇는 ‘트라이포트’(3중 물류체계)가 완성된다. 동남권이 단순한 산업지대를 넘어 세계를 향한 ‘구호·물류의 중심지’로 도약하는 것이다.
이 사업이 현실화된다면 우선 엄청난 경제적 파급력이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연간 3000억원 이상의 지역경제 유발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자리 창출뿐 아니라 물류, 포장, 운송, 통관, IT시스템 등 관련 산업 전반에 새 바람이 불 것이다. 특히 지역 청년들에게는 고부가가치 물류산업 분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릴 것이다.
또 양산이라는 도시의 브랜드 가치도 크게 오를 것이다. 이른바 ‘산업도시 양산’에서 ‘국제도시 양산’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국제기구와 협력하며 전 세계 재난 현장으로 구호물자가 출발하는 도시. 그 이미지만으로도 양산의 위상은 한층 달라진다.
미래에 가덕신공항이 문을 열고 부산항이 확장되면 내륙 물류를 감당할 허브가 반드시 필요하다. 양산ICD가 UN국제물류센터 유치를 통해 그 역할을 맡는다면, 부산·울산·경남을 잇는 ‘경제 삼각축’이 완성된다.
그러나 정작 아쉬운 점은 따로 있다. 이처럼 파급력 있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양산시의 대응이 다소 미온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 속 경남 7대 공약에 양산ICD내 UN국제물류센터 유치 지원을 포함시키면서 지원 의지를 보이는 등 정부 차원의 검토는 시작됐지만, 정작 사업의 주체가 돼야 할 양산시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행정적 한계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주도 의지’가 부족하다는 평가다.
지난달 시가 해양수산부를 직접 방문해 UN국제물류센터 유치에 대한 협력 등을 요청하고 정부와의 논의를 꾸준히 이어가겠다고 했지만, 앞서 양산시의회에서 이 사업을 대하는 시의 태도가 미온적이라는 지적이 일자 부랴부랴 정부에 찾아간 듯한 모양새다. 지적이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일회성 움직임이 아니라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 양산시갑 이재영 위원장(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의 주도 하에 물류·해사·철도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이 사업의 당위성과 실질적 실행 방안 등을 도출하기 위한 정책 세미나·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정치권이 아닌 시 차원에서도 이런 행사를 종종 열어 다양한 의견과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물론 현실적인 제약도 있다. 현재 양산ICD 부지는 해양수산부가 2040년까지 임대 중이며, 군사·안보시설과의 협의 문제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저런 이유로 손을 놓기에는 기회비용이 너무나 큰 사업이다. 지금이야말로 시가 앞장서서 부처 간 협의, 중앙정부 설득, 유치 전략 수립 등 실질적 행정력을 보여야 할 때다.
시는 ‘정부가 추진하면 따라가겠다’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 차원에서 먼저 명확한 로드맵을 내놓고 중앙정부와 UN, 국내외 물류기업을 설득하는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부지 조건 개선, 기반시설 보강, 기업 유치 전략, 청년 전문인력 양성 등은 시가 직접 설계해야 할 과제다.
또한 시민 공감대 형성도 중요하다. 물류센터 건립이 지역 상권·교통·환경에 미칠 영향도 투명하게 공개하고, 시민과 소통하며 ‘양산형 모델’을 만들어가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의 많은 지자체가 다양한 국제기구 유치를 위해 치열하게 움직이고 있다. 남들이 움직일 때 머뭇거리면 기회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양산ICD는 더 이상 과거의 ‘정체된 물류기지’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전략 자산이며, 이곳에 설치해야 할 UN국제물류센터는 양산의 미래를 여는 열쇠다. 이제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하다. 시가 이 사업의 ‘주연’으로 나서야 한다. 시민이 체감하는 경제도시, 세계가 주목하는 국제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