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 읽었던 ‘파리대왕’(윌리엄 골딩 作) 이라는 소설을 최근 다시 읽었다. 이 작품은 12명의 소년들이 비행기 추락사고로 무인도에 고립돼 살아남는 과정을 그린다. 과거에는 대장인 랠프가 마냥 착하고, 이성적인 리더인데 사악한 잭(랠프 만큼 힘이 세고 리더십이 있다)이 무리를 선동해 갈등을 부추긴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다시 보니 다르게 읽혔다. 초반에는 잭과 랠프의 끈적한 우정이 있었다. 잭이 랠프를 많이 좋아하고 의지하는 장면들이 있어 놀랐다. 심지어 랠프가 섬에 봉화를 매일 피워야 한다고 제안했을 때, 잭을 따르는 무리들이 솔선수범해 불침번을 서기도 한다.

이들이 멀어지게 된 것은 ‘사냥’ 때문이었다. 랠프는 구조를 위한 봉화를 올리는 것을 급선무라고 생각했고, 사냥에 몰두하는 잭을 많이 다그치는 장면이 나왔다. 반면 잭은 구조보다는 고기를 얻기 위해 ‘사냥’에 몰두했다. 물론 랠프가 잭이 싫어하는 새끼돼지(별명)를 너무 두둔한 이유도 있었다. 급기야 잭이 자신이 자랑스러워하는 사냥부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랠프에게 묻자, 랠프는 “뭐긴 뭐야, 막대기로 무장한 애들이지 뭐”라며 무시하듯 대답했다. 이 말에 잭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고, 결국 무리에서 이탈한다.

만약 랠프가 좀더 융통성이 있는 대장이었다면, 잭을 존중하고 그의 주장을 일부라도 받아들였다면 평화가 유지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김승호의 ‘사장학개론’이라는 책에 ‘빛도 중력에 의해 휘어진다’는 말이 나온다. 융통성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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