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한 잔의 술을 사랑하는 ‘여행하는 술샘’과 함께 떠나는 서른 두번째 여행이다. 3년 전 겨울, 삿포로에 내린 눈은 내가 살면서 본 것 중 가장 많은 양이었다. 거리를 걷다 보면 제설된 눈이 양옆으로 높이 쌓여 있어 마치 눈으로 만든 성벽 사이를 걷는 기분이었다. 하늘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눈이 내렸고, 발을 내디딜 때마다 뽀드득 소리가 났다. 홋카이도의 겨울은 추웠지만, 그 추위가 불쾌하지 않았다. 공기가 건조하고 맑아서 차가움이 상쾌하게 느껴졌다.
여행의 첫날, 숙소의 온천에 갔다. 눈 내리는 노천탕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뜨거운 온천수에 몸을 녹이고 나와 냉장고 있던 맥주 캔 하나를 꺼냈다. 차갑게 식은 삿포로 클래식이었다. 이 맥주는 홋카이도에서만 판매되는 한정 제품이다. 현지인들의 입맛에 맞춰 만들어진 이 맥주는 삿포로 여행자들만 즐길 수 있다. 차가운 삿포로 맥주는 여행의 피로를 잊게 했다. 첫 모금을 마시는 순간, 온천의 열기와 맥주의 차가움이 교차하며 묘한 균형을 이뤘다. 몸은 여전히 따뜻한데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맥주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것이 삿포로 여행에서 마신 첫 번째 맥주였다.
다음 날, 추운 거리를 한참 걷다가 골목 안 작은 라멘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은 김으로 자욱했다. 미소라멘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생맥주 한 잔을 시켰다. 삿포 전용잔의 노란 별 마크 위로 두껍게 채워진 거품은 맥주를 더 부드럽게 느끼게 해 주었다.
이 별은 홋카이도 개척사의 상징인 북극성을 형상화한 것이다. 1876년 메이지 정부는 홋카이도 개척을 위해 개척사를 설립했고, 그 일환으로 맥주 양조장을 세웠다. 독일에서 양조 기술을 배우고 돌아온 나카가와 세이베이가 이곳에서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라거 맥주를 만들었다. 홋카이도의 차가운 기후와 맑은 물, 질 좋은 맥아는 맥주 양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개척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삿포로 맥주는 150년 가까운 세월을 거쳐 일본을 대표하는 맥주가 되었다.
라멘이 나왔다. 뜨거운 김이 얼굴로 올라왔다. 진한 미소 국물과 함께 라면을 먹고,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진하고 묵직한 라멘 국물과 깔끔한 맥주의 조합이 완벽했다. 맥주의 적당한 쓴맛이 라멘의 느끼함을 잡아주었다. 이것이 현지인들이 라멘과 맥주를 함께 즐기는 이유였다.

여행 마지막 날 밤, 스스키노의 징기스칸 전문점을 찾았다. 양고기를 구울 수 있는 특유의 돔 모양 철판이 테이블 중앙에 놓여 있었다. 주문한 양고기가 나오고 철판 위에 올렸다. 고기가 지글거리며 익어가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퍼졌다. 생맥주를 주문했다. 큰 유리잔에 담긴 삿포로 생맥주 블랙 라벨은 황금빛이었고 하얀 거품이 두툼하게 올라와 있었다.
블랙 라벨은 삿포로 맥주의 간판 상품이다. 1977년 출시된 이후 지금까지 일본인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균형 잡힌 맛 때문이다. 홋카이도에서만 파는 클래식이 현지인의 맥주라면, 블랙 라벨은 일본 전역에서 마시는 국민 맥주다. 삿포로 맥주는 이 외에도 프리미엄 라인인 에비스 맥주를 생산한다. 에비스는 맥아 100%로 만들어 더 깊은 풍미를 자랑하지만, 일상적으로 마시기에는 블랙 라벨이나 클래식이 더 부담 없다.
삿포로 맥주의 맛은 깔끔하고 균형 잡혀 있다. 독일식 필스너 스타일을 기반으로 하지만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조금 더 부드럽게 다듬어졌다. 쓴맛이 강하지 않아 음식과 함께 마시기 좋다. 특히 클래식 라인은 알코올 도수 5%로 적당하며, 몰트의 풍미와 홉의 쓴맛이 조화롭다. 양고기 특유의 냄새도 이 맥주와 함께라면 오히려 매력으로 느껴졌다. 기름진 고기를 한 점 먹고 맥주를 마시면 입안이 깨끗해지면서 다음 한 점이 또 기다려졌다.
삿포로에서 마신 맥주는 각각의 순간마다 달랐다. 온천 후의 맥주는 해방감을, 라멘집의 맥주는 따뜻함을, 징기스칸과 함께한 맥주는 풍요로움을 선사했다. 같은 맥주였지만 상황과 음식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이 되었다. 그것이 여행지에서 현지 맥주를 마시는 이유일 것이다. 단순히 목을 축이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와 순간을 더 깊이 기억하게 만드는 매개체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지금도 찬바람이 불면 삿포로의 겨울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추위 속에서 마셨던 차가운 맥주의 맛이 생각난다. 홋카이도의 겨울과 삿포로 맥주는 이제 내게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기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