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호, 손심심(국악인, 풍속학인)

가을은 청명한 하늘 아래로 들녘에는 황금빛 벼 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산자락에는 갈색 바탕에 붉고 노란 단풍이 타고 내려오고 초가지붕 위에는 보름달같이 둥실한 박이 덩그렇게 놓여있는 그림 같은 풍경을 선사했다.

‘박’은 순수 우리말이다. 한자로는 ‘박 호(瓠)’, ‘박 표(瓢)’가 있고 동아시아에서만 자랐다. 고대에서부터 있어 온 작물로 ‘호박, 수박’의 조상 식물로 ‘참박’이라고도 불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시조 박혁거세가 “以初大卵如瓠 故以朴爲姓(태어난 알이 박의 모양이라 박을 성으로 삼았다)”이라는 기록이 있다.

박은 호박같이 덩굴식물로 전체에 짧은 털이 있으며 줄기의 생장이 왕성하고, 하얀 꽃을 피우며 머리통만 한 열매를 맺었다.

박은 다른 작물에 비해 비교적 키우기가 쉬운 작물이었다. 봄에 담브랑 옆에 구덩이를 파서 거름을 깊게 묻고 대충 심어 놓으면, 기를 쓰고 덩굴이 초가지붕으로 올라가 넓게 뒤덮었다.

예부터 박이란 놈은 기와지붕 위에서는 절대 자라지 않고, 초가지붕에서만 골라 자라는 가난한 백성들의 작물이었다. 흥보가를 다른 이름으로 ‘박타령’이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게 온 지붕을 칭칭 감듯이 자라, 큰 이파리로 뜨거운 햇볕이나 장맛비를 막아주고, 튼실한 박통은 태풍이 불어올 때 지붕을 지켜주는 든든한 방패막이였다.

박속의 연하고 하얀 속살은 배고픈 시절에 유용한 구황 식물이었다. 사실 박나물은 오이같이 상큼한 맛도 아니고 수박처럼 단맛도 아니고 그냥 아무 맛도 없다. 이렇게 별다른 맛이 없는 것이 박나물의 매력이었다. 박의 하얀 속살로 만든 담백한 박나물, 박국이 있었고, 서해안에서는 연포탕에는 박이 들어가야 제맛이라고 즐겨 먹었다. 박의 속을 파내 길게 썰어 말린 박고지는 겨울을 나게 해 주는 보편적인 식재료였다.

박은 서민의 음식이라 조리도 요란하지 않았다. 박속은 담백한 맛이어서 소금간만으로도 충분했고, 사치를 부리면 참기름 한 방울 정도 더했을 뿐이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엔 그것만으로도 배부른 찬이 됐다.

일반적인 가을에 수확하는 박의 크기는 어른 머리통과 비슷했다. 그래서 “박 터진다”라고 하면, ‘외울 것이나 계산할 것이 무척 많다’라는 뜻이고, 머리를 사투리로 ‘대갈빡’이라 하는 것도 그렇고, 비쩍 마른 사람을 ‘해골바가지’라고 부르는 것도 이 머리통과 연관이 있다.

이 박을 쪼개 만든 것이 바로 ‘바가지’다. 상고어 ‘박(바)’에는 ‘담다’라는 뜻이 담겨 있었으며, 그 흔적은 ‘됫박’, ‘옴팍’, ‘바구니’ 같은 우리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담는 그릇’을 뜻하는 ‘박’에 ‘작다’를 의미하는 접미사 ‘아지’가 붙어 ‘박+아지’가 된 것이다. 영어의 용기나 가방을 의미하는 basket(바스켓), bowl(볼), box(박스), bag(백)에 더욱 선명하게 그 자취가 남아있다.

수렵과 채집의 선사시대 시절부터 박은 식량과 식수를 담아두는 용기로 중요한 구실을 했다. 만들기 어려운 토기가 장기간 식량을 저장하는 단단한 용기였다면, 바가지는 무엇보다 쉽게 구할 수 있고, 튼튼하며 가볍고 제작도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가을에 박을 따서 반으로 잘라 속을 파낸 다음, 소금을 넣어 삶아서 속을 긁어 말리면, 몇 년은 거뜬하게 견디는 바가지가 됐다. 그렇게 만들어진 속이 깊은 바가지는 흙으로 빚은 토기보다 생활 도구로서의 쓰임새는 훨씬 많았다.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그릇이 대부분 사기나 놋으로 만들어져, 무겁고 깨지기 쉬운 약점이 있어서 야외에서 들밥을 먹는 도구로는 별로였다.

그래서 들밥이나 참이 나갈 때는 임시 그릇으로, 바가지를 줄로 꿰어 열 개로 묶은 ‘한 죽’이나 열다섯 개 묶음인 ‘한 죽 반’을 들고 나갔다. 과거에는 농가 집마다, 바가지 한두 죽씩은 고방에 매달려 있었다. 없으면 옆집에서 빌려 오기도 했다.

이때 절대 주의할 점은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들에 가도 샌다”라고 깨진 바가지는 금물이었다. 그 바가지에 밥을 비벼 먹고, 국수를 말아 먹고, 막걸리도 여기에 부어 마시는 다목적 식기로 다 쓰고 난 뒤, 냇물에 씻어서 돌려주는 것이 농번기 예절이었다.

“숟가락 단반에 세니라고 늦었나늦었네 늦었네 뭣한다고 늦었나바가지 죽반에 끼니라고 늦었나늦었네 늦었네 뭣한다고 늦었나”

- 창원 / 점심참 소리

이렇게 밥바가지, 쌀바가지, 물바가지, 여물바가지로 쓰이다가 금이 가거나 귀퉁이라도 날아가면, 삼베를 덧대어 꿰매서 최종적으로 모이 바가지로 보내졌다. 우리가 흥망을 이야기할 때 자주 쓰는 ‘쪽박’, ‘대박’이라 하는 말이 예사롭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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