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새날 대표변호사 조현태
보이스피싱 범죄는 이미 사회 전반에 고질적 범죄 양상으로 자리 잡았다. 수법은 갈수록 정교해지고, 피해 규모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대부분은 해외에 거점을 두고 활동한다. 최근 크게 이슈가 된 캄보디아 역시 같은 구조이다. 이처럼 해외에 거점을 둔 범죄조직을 중심으로 한 보이스피싱 범죄 방식의 고도화는 더욱 심각한 사회적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러한 보이스피싱 범죄의 음지에는 또 다른 피해자가 존재한다. 바로 범죄조직에 의해 속아 이용당한 사람들, 즉 경제적 형편과 상황의 취약성 등의 사정으로 인하여 범행 도구로 활용된 이들이다.
변호사로서 특히 국선 사건에서 이러한 피고인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인터넷 구인광고를 통해 ‘단순 심부름 업무’, ‘물품 전달 아르바이트’라는 명목으로 접근하는 방식, 급전이 필요해 대출을 알아보던 이들에게 ‘대출 실행을 위한 계좌 개설 및 실적 쌓기’라는 명목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이미 오래된 수법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이러한 방식에 속아 범죄 행위에 관여하게 된다. 자신의 행동이 보이스피싱 범죄의 하나의 과정임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피해자 계좌에서 빠져나온 돈을 전달하거나 송금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실제 피해자들의 돈은 해외 범죄조직으로 흘러가고, 국내에서 이용당한 자들은 경찰에서 피의자로 조사를 받고 결국 법원에 피고인으로서 재판을 받게 된다.
이들의 사건 기록을 보면, 성명불상의 조직원들과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있고, 정상적인 취업이나 대출을 의심할 수 있을 만한 이상한 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생계가 막막한 상황에서 돈을 벌 수 있고, 대출을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으면 이상함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는 단순한 경솔함이나 방심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적 취약성, 정보 격차, 경험 부족 등이 결합된 결과이며, 범죄조직은 이러한 약점을 노린다. 그들의 수법이 치밀해질수록 피해자이면서도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사람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안타깝게도, 사정이 이러하더라도 법원은 피고인에게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면 피해 회복이 없는 경우 실형을 선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보이스피싱 관련 범죄의 경우 검찰 구형이 다른 사기 범죄보다 상대적으로 무거운 편이며, 법원 보이스피싱 범죄가 미치는 사회적 파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당사자의 인식 가능성과 범행 과정의 맥락을 충분히 들여다보지 못하면, 범죄조직의 진짜 주체는 놓치고 오히려 범죄에 이용당한 이들을 엄벌하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 내가 맡은 사건 중에는 피고인이 자신이 전혀 보이스피싱과 관련된 일을 한다는 인식 없이 범죄에 이용되었을 뿐이라는 주장하여 무죄를 받은 사례가 제법 있었다.
보이스피싱 사건을 수없이 접해 온 법조인의 시각이 아닌 피고인의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면 이들이 자신의 행동이 보이스피싱 범죄임을 알지 못했음을 항변하였고 법원 역시 이를 인정하여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단순히 한 개인의 경솔함으로 설명할 수 없는 구조적 범죄이다. 법조인은 그 구조 속에서 피해자이면서도 범죄자가 되어 버린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며, 형사사법 시스템은 범죄 억제라는 대원칙 아래에서도 범죄조직에 이용당하는 이들의 절박함 또한 외면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