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길 한 복판에서 한 중년남성이 큰 소리로 상스러운 욕을 하는 모습을 봤다. 술이 취해 보이는 그는 한 여성과 통화를 하고 있는 듯 보였다. 부부사이는 아닌 것 같고, 내연녀와 주고받는 대화 같았다. 다른 남자와 정을 주고받지 않았냐고 의심하면서 입에 담기 힘든 욕을 내뱉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대단한 ‘권리’가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여러 가지 ‘명분’을 내세운다. 내가 ‘남자친구’인데, ‘회원’인데, ‘시민’인데, ‘장남’인데, ‘부모’인데, ‘친구’인데 등등. 그러면서 남들을 통제하려고 한다.
소설 단편소설집 ‘혼모노’(성해나 작)의 작품 중 ‘우호적 감정’은 한 벤처기업에서의 이야기를 다룬다. 회사 대표는 직원의 능력,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 별명으로 부를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대표는 철저하게 능력 중심으로 상여금을 지급하는 등 차별대우를 했다. 회사 경리의 실수로 상여금 내역이 전체 메일로 보내졌고, 이후 친했던 직원들 사에게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상여금을 많이 받았던 A직원이 철저하게 현실적인 방법으로 팀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려고 하자, 상여금 차이에 불만이 있었던 B직원은 그 사업의 대의적인 명분을 내세우며 A직원의 방식이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때 A직원은 B직원에게 이렇게 말한다. (별명을 말하지 않고) “김여진씨, 혹시 상여금 때문에 감정이 쌓인 거예요?”
어떤 정치인이 내게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확한 뜻을 알려줬다. ‘정확한 눈으로 현실을 보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명분’을 우선시하는 태도는 자신의 눈과 귀를 가리게 하고, 그 명분 안에 숨어서 자신의 위치를 잊게 만든다. 불교에서는 이런 유의 명분을 아(我)라고 한다. ‘나는 아무 권리가 없고, 명분이 없고, 그저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무아)라는 자세를 견지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