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환
의령군 봉수면사무소 산업팀장, 의령문인협회 사무국장
커피에도 세 가지 온도가 있다. 커피 한 잔을 내려 서재로 간다. 처음 내린 커피는 너무 뜨거워 함부로 입을 댈 수 없다. 자칫하다간 입을 데기에 십상이다. 이럴 땐 잠시 기다리며 날씨를 검색하거나 글을 쓸 준비를 하다 보면 커피는 70도쯤으로 식어서 마시기 적당한 온도가 된다.
커피를 한 모금씩 입에 물고 책장을 넘기거나 원고지를 채워나간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글을 마무리하고 나니 남은 커피는 완전히 식어서 30도가 돼 있다. 식은 커피가 무슨 맛이 있을까 싶지만, 마감이 임박한 원고를 끝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식은 커피를 마저 입에 넣으면 숨겨진 커피의 맛과 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커피를 마셔본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만 차 한 잔을 마시면서도 우린 생활의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 솔로몬의 판결이라든가, 별주부전에 나오는 토끼처럼 지혜는 지식을 넘어서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다.
필자는 평소 삶 중에서 베푸는 삶을 사는 것이 삶의 참다운 지혜라 생각해 왔다. 그렇다면 참다운 지혜란 무엇일까? 하여 지혜(智慧 :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를 이루고 있는 한자를 들여다본다.
슬기 지(智)는 지혜, 재능, 슬기라는 뜻을 가진 글자로 알 지(知)에 해 일(日)이 더해진 글자다. 알 지(知)는 다시 화살 시(矢)와 입 구(口)로 파자해 볼 수 있는데, 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화살처럼 빠르게 깨닫고 안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지견(知見 : 사물의 도리를 깨닫는 지혜), 지기(知己 : 자기의 마음이나 참된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가 좋은 용례이다.
덧붙여 智자는 日(해 일)자가 부수이지만, 사실 말씀 왈(曰)자가 쓰인 것이다. 다시 말해 슬기 지(智)자는 ‘화살(矢)이 순식간에 구멍(口)을 통과하듯이 말(曰)을 잘한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말을 잘하려면 지식이나 지혜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智자는 ‘아는 것이 풍부해 말함에 거침이 없다’라는 의미에서 지혜를 뜻하게 된다.
참고로 소전체에서는 智자가 知자를 파생시켰는데, 知자는 사람이 태어나서 배워 알게 됐다는 의미이고, 智자는 지식이 아닌 사람이 하늘(日)로부터 타고난 지혜를 뜻하게 됐다. 즉 선천적인 ‘지혜’와 후천적인 ‘지식’으로 구분한 것이다. 지술(智術 : 지혜가 높은 꾀), 지용(智勇 : 지혜와 용기)이 좋은 용례이다.
슬기로울 혜(慧)는 빗자루 혜(彗)에 마음 심(心)이 결합된 한자이다. 빗자루 혜(彗)는 다시 싸리빗자루 모양을 본뜬 丰(예쁠 봉)자와 손을 의미하는 ⺕(손 수)로 파자해 볼 수 있다.
즉 彗자는 싸리나무 두 개를 겹쳐 만든 싸리빗자루를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마음 심(心)자는 생각, 마음, 심장, 중앙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心자는 사람이나 동물의 심장을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心자를 보면 심자가 간략하게 표현돼 있다.
심장은 신체의 중앙에 있으므로 중심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옛사람들은 감정과 관련된 기능은 머리가 아닌 심장이 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心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마음이나 감정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그런데 빗자루를 손에 쥔 모습을 그린 빗자루 비(彗)자가 지혜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또, 그렇다면 사람의 지혜나 총명함은 눈에 보이는 것일까? 사람이 똑똑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슬기로울 혜(慧)자를 5천여 년 전 처음 글자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慧자는 빗질하는 모습을 그린 彗자를 응용해 빗질할 때 햇살에 먼지가 반짝거리듯이 사람의 총명함이 반짝반짝 거린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매우 총명하고 재미있는 방법이 아닐 수 없다.
덧붙여 빗자루를 가지고 우리의 마음에 있는 탐욕, 미움, 거짓 등 온갖 더러운 잡념이나 찌꺼기를 비로 쓸어 버린다면 마음이 수정같이 깨끗해 지혜가 마음에 스며들어 총명해지는 것이다. 혜안(慧眼 : 사물을 밝게 보는 총명한 눈), 혜오(慧悟 : 민첩하고 슬기로움)가 좋은 용례이다.
베푸는 삶이 삶의 지혜이다. 은혜를 베풀되 보답을 기대하지 못할 곳에 베푸는 것이 가장 훌륭하다. 보답을 바라는 은혜 베풂은 그것이 비록 선의에서 나왔다 해도 장사치의 거래와 다를 바 없다. 이곳에 베풀어 저곳에 보답받는 것이 하늘의 보답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 하며, 그 하나님은 환난에 처한 고아와 과부를 돌봐 주는 것이 바른 삶이라 했다.
그렇다. 나약한 자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고, 그 보답은 하늘에게서 받는다. 덧붙여, 당나라 사람으로 평생 은거하며 살았던 주인궤라는 사람이 한 말이 있다.
[종신양로 불왕백보 종신양반 부실일단(終身讓路 不枉百步 終身讓畔 不失一段 : 한평생 길을 양보했지만, 백 걸음도 뒤처지지 않았고, 한평생 밭두렁을 양보했지만, 밭 한 뙈기도 잃지 않았다)]
한평생 양보만 하고 살았지만, 결코 그것이 손해가 아니었다는 경험을 이야기한다.
커피잔을 씻으며 베푸는 삶을 사는 것이 삶의 참다운 지혜임을 필자의 마음 판에 다시 새겨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