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축제장에서
바야흐로 축제의 계절이다. 우리 지역에도 ‘마산가고파국화축제’가 3·15 해양누리공원에서 열렸다. 푸른 바다를 낀 넓은 축제장은 사람 반, 국화꽃 반이다. 바쁜 일 접어두고 나온 선남선녀, 친구끼리 만난 시니어, 모처럼 나들이 나온 황혼의 부부도 오늘 하루는 모두 꽃이다.
기후변화로 가을이 실종되었다고는 하나 축제장은 전에 없이 풍성하다. 각양각색의 지역특산품이 즐비하고 팔도 먹거리가 넘쳐난다. 한갓진 곳에서는 각설이가 애절한 노래와 걸쭉한 입담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들머리의 어린이 놀이동산은 재미있는 탈것들로 엄마 손 잡은 아이들을 유혹한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즐거운 축제와는 거리가 먼 딱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폐지를 주워 팔아서 손자·손녀를 돌보는 호호할머니, 비가 새는 사글셋방에서 막노동으로 다둥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 성치 않은 몸으로 치매 앓는 배우자를 돌보는 노인, 꼭두새벽 배달로 생계를 잇는 택배 직원 등, 간혹 티브이에서 보았던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이 그들이다.
자력으로는 헤어나기 힘든 중년의 소상공인들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조기 퇴직하면서 받은 퇴직금으로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차렸으나 코로나 때부터 이어진 불황으로 장사가 되지 않아 빚만 늘어간단다. 폐업할 비용이 없어서 정리조차 못 하고 있다는 이들에게 국화축제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얼마 전 정부가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지급했다. 이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이왕이면 골고루 나누어야 한다.’ ‘어려운 저소득층에게만 혜택이 가야 한다.’ ‘정부 원안대로 지급하면 소비가 살아난다.’ ‘아니다. 그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가 하면 지원금으로 사용된 막대한 자금이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헤치고 물가 상승을 부추길 요인이 될 거라며 우려하기도 했다. 혹자는 우선 쓰기는 곶감처럼 달지만, 다음에 어떤 식으로든 갚아야 할 빚이라며 목청을 돋웠다. 물론 어느 생각이 옳고, 그른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이처럼 민심은 갈팡질팡하다.
그 와중에 우리를 놀라게 한 황당하고 기막힌 뉴스가 있었다. 생활고를 겪던 젊은이가 ‘고수익 아르바이트’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 낯선 캄보디아까지 갔다가 결국,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그의 몸에서는 고문당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현지 범죄조직과 연계한 ‘보이스피싱’에 가담한 한국인들이 무더기로 송환되었다. 개중에는 고수익이라는 말을 믿은 어리석은 청년도 있었지만, 범죄 집단인 줄 알면서도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을 들여놓은 사람도 있었다. 그만큼 우리 경제가 어둡고 직장 구하기가 어려워진 탓일 터이다.
다행히 오랜만에 훈훈한 뉴스가 쏟아진다. 최근 경주에서 APEC 정상회의가 열리면서 나비효과가 대단하다는 소식이다. 음식점마다 자리가 부족해서 손님을 다 수용하지 못할 정도이고, 황남빵이 맛있다는 외국 정상의 한마디에 한복을 입고 줄을 서서 경주 황남빵을 사려는 사람들로 빵이 동이 났단다. ‘K 문화 파워 보여준 APEC’이라는 머리글을 단 신문 지면에는, 지드레곤이 공연을 시작하자 각국 정상들이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등, K팝에 관한 관심과 열기가 뜨거웠다는 소식이 실려 있다.
장외에서는 기업 외교가 빛났다. IT업계 일인자 젠슨 황이 한국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AI 허브로 육성하는 데 힘을 보태겠다며, 최신 GPU 26만 장을 우리 정부와 기업에 공급하고, 인재 양성 및 스타트업 지원도 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젠슨 황과 기업 총수들이 동석했던 치킨 가게는 대박이 났다는 소식이다. 따라서 증시도 요동치고 있다.
휘영청 둥근 달이 국화축제장 위로 떴다. 일 년 중 가장 크고 밝은 달이다. 때맞추어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바다 한복판에서 쏘아 올린 불씨가 달빛과 어우러져 천만 송이 꽃으로 화려하게 피어난다. 장관이다. 차후 나라 경기도 불꽃처럼 살아나고 어려운 이웃에게는 희망을 주는 기쁜 일이 많이 생기기를 내심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