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대겸법률사무소 정용균 대표변호사 칼럼
최근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로 정부 전산망이 마비되며 무인민원발급기, 정부24 등 각종 행정 서비스가 중단되는 사태가 있었습니다. 이번 사고와 관련해 정부의 관리·감독상 과실이나 시설 하자에 대해 국가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논의가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국가배상청구권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국가배상은 공무원의 직무상 위법행위로 손해가 발생하거나, 도로·전산센터 등과 같은 공공시설의 설치·관리상 하자로 인해 국민이 손해를 입었을 때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을 지도록 한 제도입니다. 먼저 공무원의 잘못으로 인한 국가배상에 대해 살펴보면, 담당 공무원이 법을 어기거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아 국민에게 피해를 준 경우,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행정 담당자가 토지 환원 절차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제3자에게 매각해 원소유자에게 손해를 입힌 사례에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 이때 보통의 공무원을 기준으로 객관적인 주의의무를 위반했는지가 판단 기준이 됩니다.
이번 데이터센터 화재는 공무원의 개별적 실수보다는 시설 자체의 문제, 즉 ‘영조물의 설치·관리상 하자’에 더 가깝습니다. 국가배상법 제5조는 도로, 하천 등 공공의 영조물에 설치나 관리상의 하자가 있어 타인에게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데이터센터 역시 국가가 설치·관리하는 공공시설이므로 이 조항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하자’는 영조물이 통상 갖추어야 할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를 의미하며, 이는 객관적으로 판단됩니다. 공무원의 고의나 과실이 없더라도 시설이 안전성을 상실했다면 국가의 책임이 인정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국가배상을 하더라도 사고 원인이 납품업체의 결함으로 밝혀지는 경우 등에는 국가는 그 업체에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국가배상은 단순히 정부 책임을 묻는 데 그치지 않고, 사후 책임 구조까지 포괄하는 법적 제도라 할 수 있습니다.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인과관계 입증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국가의 잘못과 자신의 손해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입증해야만 배상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전산 마비로 업무가 지연되어 손해가 발생했다면, 영수증, 이메일 등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국민신문고나 관련 부처 민원창구에 불편 접수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두면 소송에서 근거자료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피해가 명확해졌다면 청구를 미루지 말고 신속히 대응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국가배상 소송은 피해자가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가 있었던 날로부터 5년 이내에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데이터센터 화재는 국가가 국민의 일상과 직결된 공공시스템을 얼마나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일을 교훈 삼아 공공시설의 안전관리 체계를 점검하고, 유사한 피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실질적인 대책이 마련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