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안에서 새벽이 피어났다. 대수롭지 않은 아침이 따라오고 뜨겁지도 미지근하지도 않은 내 업보들이 줄줄이 잠에서 깨어난다. 살아오며 지은 죄 많은 중생이라, 가볍지 않은 두통이 찾아왔다. 이 또한 업보려니 하며 받아들여 보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탓 아닌 것이 없는 삶이었다.

인연으로 엮인 모든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선, 각자가 지닌 환경과 불평등의 구조를 헤아리는 지혜가 필요함을 깨닫는다. 어쩌면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며, 날마다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행위 자체가 또 다른 업을 짓고 있는 시간의 윤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드는 아침이다.

가을의 오묘한 빛 속에서 남자의 계절이라 불리는 이 시간도 젖은 낙엽 되어 길 위를 뒹군다. 허무와 고독은 가을이 지닌 상징적 의미로 이 또한 자연의 본질 속에 피할 수 없는 과정인 것이다.

어제가 수능일이었다. 누구나 거쳐야 할 운명의 시간 앞에서 그저 초연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수험생들일 것이다. 멀리할 수 없는 문제와 피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사투를 벌였을 55만 4천여 명의 입시생들과 부모님들, 모든 이의 가을이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은행잎처럼 윤기 나고 따뜻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가을이 남자의 계절이 아니라 오늘의 결과에 좌절하지 않고 더 큰 용기를 얻는 수험생의 계절이었으면 좋겠다. 오랜 시간 자라난 옹이와 가슴에 서린 핏자국 같은 기억들을 바스락거리는 낙엽 한 줌으로 모아 훨훨 태워 보내는 작은 의식, 그것이 오늘이라는 이름의 가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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