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호, 손심심(국악인, 풍속학인)
한민족은 새를 숭상하고 알을 신성시해서 신화 속의 시조들은 모두 알에서 태어났다. 그 알 모양과 가장 닮은 것이 바로 박이었다. 그래서 박 바가지는 고대로부터 상징적인 주술 도구로 많이 사용됐다.
통과의례에서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새로운 세계로 들어감’을 뜻했으며, 병아리가 달걀을 깨고 나오듯이 의례의 시작도 늘 박과 연관된 행위로 열었다.
아기가 처음 세상에 태어날 때의 해산 풍속에서도, 산모의 젖을 돕는 첫 국밥을 지을 때 미역을 씻고 쌀을 헹구는 데 쓰는 ‘해산 바가지’가 집마다 따로 있었으며, 아이를 낳은 뒤 삼칠일에는 바가지에 쌀을 담고 한지로 덮은 ‘삼신 바가지’를 안방 시렁에 올려 아이의 수명과 장수를 빌었다.
특히 혼례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큰 의례였기에, 그 첫 절차로 박을 깨는 행위를 여러 번 행했다. 신랑집에서 신붓집으로 혼인을 청하는 납채를 할 때도 바가지를 엎어놓고 발로 밟아 깨뜨려 소리를 낸 뒤에 예식을 진행했다. 또 함이 신붓집에 들어갈 때나, 혼인한 신부의 가마가 신랑집에 도착했을 때도 바가지를 밟아 깨뜨리며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예부터 이사를 할 때도, 떠나기 직전에 살던 집 문 앞에서, 잡신들이 겁을 먹고 따라오지 않도록 바가지를 밟아 깨뜨리고 떠났다. 장례를 치를 때도 관을 운구하며 마지막 방문을 나서기 전에, 문지방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관으로 눌러 깨뜨리고 나갔다.
새해를 맞이해 노는 탈놀음도 액운을 물리치고 한 해의 안과태평을 비는 놀이였다. 이때 가장 구하기 쉽고, 안면과 유사한 박 바가지로 주인공의 모습을 만들었다.
탈 판에서 쓰는 탈을 박 바가지로 만든 것도 잡귀 잡신을 물리치는 박의 벽사 기능과 관계가 있다. 얼굴에 쓰는 ‘탈’은 ‘탈 날 탈(頉)’과 동음이라, “탈을 없앤다”라고 해 탈놀음을 한 후에 탈바가지를 불사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조선시대 전국적인 상인 조합이었던 부보상(負褓商)들은 매년 음력 3월, ‘공문제(公文祭)’를 지내고 놀이판이 벌어졌는데, 이때 우리 고유 육상 경기인 ‘바가지 밟기’라는 달리기를 꼭 행했다. 이는 달리기 주자가 바가지를 밟아서 깨뜨리는 일종의 이어달리기로, 부보상들이 액운을 물리치고, 서로 간의 유통 결속을 다지는 의식 중 하나였다.
이렇게 바가지는 발로 밟을 때 깜짝 놀랄 정도로 큰 소리가 나, 이 요란한 소리로 인해 무속이나 민속에서 잡귀를 쫓는 도구로 사용됐다.
1886년 일본군으로부터 유입된 콜레라가 전국에 창궐했다. 그리고 서울에서만 7000여 명이 사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설사와 급성 탈수로 사람들이 죽자, 이에 대한 지식이 없던 조선 사람들은 이 괴질을 ‘호열자(虎列刺), 쥐통’이라 부르며 두려워했다.
조선 사람들은 쥐가 옮기는 나쁜 귀신이 붙었다고, 고양이 부적을 붙이고 털을 태워 먹기도 했다. 그리고 마루나 방에 제상을 차려 쪽박을 박박 긁어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쪽박 굿’을 행하기도 했다.
이 기가 막힌 광경을 목격한 제중원의 선교사 겸 의사인 앨런이 즉시 고종과 조정을 설득해서 전국에 전염병 방역 수칙을 방으로 붙이게 됐다는 일화가 전한다.
이러한 민속은 ‘담는다, 깨뜨린다’라는 박의 속성을 통한 유사 주술행위로, 새로운 세계를 맞이해 잡귀 잡신을 물리치고 복을 담는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바가지의 겉은 단단해서 두들기면 경쾌한 소리가 나서 타악기로도 쓰였다. 북이나 장고가 귀하던 시절, 악기 대신으로 물독에 물을 가득 붓고 바가지를 엎어놓고 두들기면 북소리가 났다. 이를 ‘물박 장구, 물장구’라고 하였다.
바가지 북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7세기 원효대사 설화에 등장한다. 원효대사는 거지들과 어울려 큰 바가지를 들고 무애무(無碍舞)를 춤추며 부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했다고 한다. 원효대사의 노상 수행이 근대에까지 각설이패의 신명 나는 장타령으로 이어졌으니, 바가지가 악기로 쓰인 역사도 만만하지가 않다.
“사내가 바가지로 물을 마시면 수염이 안 난다”라며 바가지는 아무래도 남성보다는 여성들과 친한 물건이었다. ‘물동이 이기’, ‘밥하기’, ‘설거지하기’, ‘빨래하기’, ‘짐승 먹이기’ 등 어느 하나 바가지가 안 들어가는 일이 없었다.
바가지는 공명이 좋아서 설거지통에 바가지를 씻거나, 가마솥 바닥을 긁으면 제법 시끄러웠다. 그래서 “바가지 긁는다”라는 말이 생겼다.
“이박저박 꼰지박 정지문에 나들박
다따묵은 가지박 담부랑밑에 조롱박
두할머니 다따묵고 배가터져 죽었네”
- 경북 / 다리 뽑기 노래
부부간에야 바가지를 긁든 말든, 밖에서 욕만 한 바가지 안 듣고 쪽박만 안 차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