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에세이 작가의 책을 읽다가 한 대목에서 그 작가에게 실망해 책을 덮었다. 그 작가의 지인이 자녀의 대학등록금이 부족해 200만원만 빌려달라고 했고, 작가는 지인을 가련히 여겨 그 돈을 빌려줬다. 그러고 나서 자신도 풍족하지 않음을 깨닫고 약간의 후회를 했고, 그 지인에게 “원금은 늦게 갚아도 좋으니, 이자는 매달 보내줄 것”을 요구했다. 그래놓고는 엄청난 선심을 쓴 듯 자랑스럽게 일화를 소개했다.

내가 봤을 때 그 작가는 너무 쪼잔하다. 좋은 마음으로 돈을 빌려주고 나서 곧 옹졸해지는 것도, 굳이 이자까지 챙기려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돈을 빌려줄 때는 여유 되는 선까지만 빌려주고, 그 돈을 받을 생각을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나는 지인에게 돈을 빌려줄 때 ‘50만원’까지만 ‘그냥 준다’는 마음으로 돈을 빌려준다. 오래전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직원이 (문자로) 친정에 일이 생겨 100만원만 빌려달라고 했다. 나는 “죄송한데, 저도 돈이 많이 없어서 50만원만 빌려 줄게요‘라고 문자를 보내고 바로 돈을 입금했다. 그 직원은 곧 갚겠다고 하더니, 시간이 지나도 갚지 않았다. 솔직히 괘씸했지만, 무슨 사정이 있겠거니 생각했다. 이후, 그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돈을 빌려준 적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어느 날 그가 내게 꽤 비싼 밥을 산 적이 있다. 그날 빌려준 50만원을 그냥 받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돈 때문에 인간관계가 서먹해지는 것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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