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태 국립창원대학교 교학부총장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가장 큰 이슈 가운데 하나는 ‘핵추진 잠수함 건조’와 관련된 논의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방한했을 때 관세 문제뿐 아니라 한국 내 미 군함의 건조 가능성, 더 나아가 핵추진 잠수함 건조가 함께 거론된 바 있다. 우리나라가 원자력 에너지를 활용하는 잠수함을 건조하고 미국이 그 연료를 공급하는 형태의 협력이 추진될 수 있다는 얘기가 대통령으로부터 나왔으니 군사 안보차원을 넘어 원자력 기술 역량이 국가 전략산업의 핵심 축으로 다시 부각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는 이미 체코 원전 수주를 통해 원자력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입증한 바 있다. 오랜 기간 축적된 설계,제조,운영 경험은 한국을 원자력 강국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게 만든 자산이다. 이제 이 자산을 어떻게 미래 산업과 연결시키느냐가 관건이다. 특히 인공지능 시대에 하드웨어 측면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를 꼽으라면 단연코 에너지 공급이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 데이터 센터의 전력 사용량이 2030년이면 지금의 두배 이상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태양광이나 풍력과 같은 신재생 에너지의 확대가 중요하다는 데 이견은 없지만, 출력 변동성을 고려하면 안정적인 기저전원으로서 원자력 에너지의 필요성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탄소중립을 지향하면서 국가 경쟁력을 지탱할 전력을 확보해야 하는 난제 앞에서 원자력은 여전히 현실적이면서도 전략적인 선택지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의 필요성이 커지는 것과는 반대로 관련 분야의 핵심 인력 풀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최근 카이스트 원자력및양자공학과 지원자가 급감하고 있다는 보도는 이 분야 인재 공급에 심각한 공백이 발생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원자력 발전소의 설계와 건설, 원전 안전성 평가, 핵추진 잠수함과 SMR(소형모듈원전) 기술까지 책임질 인력들이 앞으로 10년, 20년 뒤에도 충분히 확보될 수 있을까. 지금의 흐름대로라면, 기술은 필요하지만 이를 설계, 운영할 사람은 부족한 역설적인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경남 창원은 우리나라 원자력 관련 제조업의 메카라 할 수 있다. 두산 에너빌리티를 비롯한 유수의 기업들이 원전 관련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흐름속에서 국립창원대학교도 우선 원자력 관련 교육과 연구를 통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원자력에너지융합센터’를 개소한다. SMR 제작 지원, 에너지 정책 연구 등을 통합한 대학,산업체,정부기관을 잇는 개방형 협력 플랫폼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더 나아가 공학전문대학원을 신설하고 그 안에 원자력 전공을 개설해 내년부터 신입생을 모집할 계획이다. 현장에 필요한 고급 인력을 길러내기 위한 통로를 지역에 직접 만들겠다는 취지다. 대학원 과정과 연계해, 학부 과정으로도 원자력 관련 세부전공을 개설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학부-대학원-지역기업으로 이어지는 원자력 인재 성장 사다리를 경남에서 완성하겠다는 목표다.

신재생에너지의 확대는 분명 시대적 요구이며 반드시 추진해야할 방향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탄소 배출이 적고, 대규모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한 원자력 에너지의 지속적인 발전 또한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병행과 균형의 문제이다. 특히 인공지능과 디지털 산업이 집약적인 방향으로 진화하는 만큼, 원자력 없이 미래 산업을 이야기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기술 못지않게 ‘사람’이다. 원전과 원자력 시스템을 설계하고 안전하게 운영하며 새로운 분야로 확장시켜 나갈 인재를 지금부터 차근차근 길러야 한다. 경남 창원이 가진 제조 인프라와 국립창원대학교의 교육, 연구 역량을 모은다면 원자력 분야 인재 공급의 상당 부분을 이 지역에서 책임질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뉴스경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