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누구에게도 내 어려움을 털어놓지 않았다. 스스로 그것을 자존심이라 여겼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 자존심이 조용히 무너지는 순간들을 마주한다. 개인적 부탁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직업적 책무와 조직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위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직업 특성상 그동안은 도움을 청하기보다 남의 짐을 덜어주는 일이 더 많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 앞에서 순간 자신에 대한 짜증과 미안함이 고개를 든다.
그럼에도 내 속사정을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용기가 되고, 숨 고를 틈이 된다.
한 해를 버텨내고 또 다음 해를 준비하는 일은 생각보다 벅차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지극히 단순한 진리를 새삼 깨닫는다. 내가 누군가에게 빚을 지는 것도, 내가 누군가를 돕는 것도 결국 서로 기대며 살아가야 한다는 가르침인 것이다.
신세 진 빚에 대한 보답으로 진심 어린 감사와 다시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으로 흘려보내는 일, 그리고 관계 속에서 성찰한 마음가짐으로 결과에 보답하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신세는 거래가 아니라 삶이 서로 얽히며 만들어 낸 인연의 흐름 같은 것일 거라 믿는다.
결국 우리 모두는 더불어 사는 존재다. 타인의 손길이 있어 지금 여기까지 왔듯, 오늘의 내가 또 다른 누군가를 살리는 인연이 되었으면 좋겠다.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생의 길목에서, 도움을 청하는 일 또한 하나의 수행임을 배운다.
이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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