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가을, 다시 조상님을 찾아뵙는 시절이 왔다. 서부경남에서는 농사가 끝나는 시월 즈음 산소를 찾는 시사(時祀)가 오래된 연중행사다. 예전엔 문중답이 많은 집안일수록 가문의 위세를 과시하듯 소까지 잡아 제를 올리기도 했다.
자손 번창한 집안일수록 제관도 수백 명에 달해 그 위세를 자랑했고, 동네의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산소에 올라 떡을 얻어먹던 풍경이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아직도 생생하다.
제를 지내기 전 먹을 갈아 ‘유세차~’로 시작하는 축문을 쓰다 보면, 점필재 김종직과 사돈을 맺었던 먼 조상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피의 흐름이 문득 과거로 필자를 이끌곤 했다.
연산군의 폭정 속에 사돈의 팔촌까지 부관참시하라는 큰 화를 입고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윗대 어른들, 그 중 어느 한 가족이 고성으로 숨어들어 세를 이뤘고, 임금이 몇이나 바뀌는 동안 벼슬길을 포기해야 했던 집안의 내력도 떠오르는 계절이다.
그 아득한 시대의 조상들은 오늘의 우리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복식도, 절차도, 마음가짐도 달라진 후손들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의미를 아는 이도 드물고, 전통이라 불리지만 그 뜻을 설명하기조차 어려운 시사를 이제 와 쉽게 바꾸는 일 또한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직립보행의 시대를 지나 다른 행성으로 날아가는 시대를 살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매년 이 길을 오른다. 변화가 늦을수록 변화는 더디다. 그럼에도 올가을, 우리는 다시 조상님들께 인사를 드린다. 낡은 풍습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물음을 얻기 위해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