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매
김 종 군
밤나무가 가을 앞에서
혹독한 물매를 맞는다
죄가 있다면
늦은 봄날 꽃을 피워서 비릿한 냄새를 풍겼다는 것
무기를 가진 벌을 불러들였다는 것
그리고 고슴도치 같은
주머니 속에 알밤을 숨겼다는 것
가뭄과 천둥과 빗속에서 고통을 견디기까지
누가 이를 도와주고 위로해 줬던가
저 만신창이가 된 밤나무의 아픔을 뒤로 한 채
위로는커녕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말든
그저 내 잇속만 챙기면 된다는
허구한 사욕에
무지막대한 물매를 들고
광란의 춤을 추고 있는 저들
밤나무야말로
때가 되면 모든 이에게 잇속을 챙겨주는
자유경제주의자가 아닌가
- (문학人신문 제148호)
◇ 시 해설
가을에 밤나무가 혹독한 매를 맞는다. 밤나무가 의심받는 죄는 최소 3가지 : 첫째, 늦은 봄날 꽃을 피워서 비릿한 냄새를 풍겼다는 것, 둘째, 무기를 가진 벌을 불러들였다는 것, 셋째, 주머니 속에 알밤을 숨겼다는 것이다.
그들이 한꺼번에 덤비어 매질할 자격이 있는가, 가뭄과 천둥과 빗속에서 고통을 견디기까지 누가 이를 도와주고 위로해 줬던가에 대하여 시인이 항변한다. 밤나무는 봄날 연둣빛 이파리를 내고 밤꽃 향 피울 때는 바늘로 무장하며 방탄복까지 입을 계획이 없었다.
창 하나 든 벌은 무서워할 필요가 없었어, 꽃술 속 꿀만 한 모금 물고 가는 것이었어, 햇살 바늘은 밝고 따스해서 좋기만 했거든. 여리고 어린 알밤 여물 때까지만 보호하려는 것이었는데 천둥, 번개, 비바람은 그토록 사나웠지, 만신창이가 될 수밖에 없었어. ‘위로는커녕’ 이기심 가득하고 ‘허구한 사욕에 무지막대한 물매를 들고 광란의 춤을 추고 있는 저들’에게 이제 말하노라. ‘때가 되면 모든 이에게 잇속을 챙겨주는 자유경제주의자’였다고.
다만 공짜가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야, 숙여서 조심하지 않으면 아직 남은 바늘의 응징이 있고 알밤 몇 군데 속에 작은 벌레도 두었으니까 말이지.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시향문학회, 시와시학 문인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