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사건 다시 불러내 그 속에서 살아야 했던 이들의 목소리 복원
이념으로 찢긴 가족의 삶을 세대 간 대화로 풀어낸 시집으로 평가
문학적 형식 실험 넘어 지역 현대사 복원하는 기록문학

 

정보암 시인 서사시집 『오늘은 어제의 내일』(작가마을시인선 74)
정보암 시인 서사시집 『오늘은 어제의 내일』(작가마을시인선 74)

 

김해를 본거지로 경남에서 활동하는 정보암 시인이 서사시집 오늘은 어제의 내일(작가마을시인선 74)을 펴냈다. 요즘 문단에서 보기 드문 서사시 형식을 통해 지역의 아픈 현대사와 개인의 비극을 동시에 드러낸 작품으로, 김해를 중심으로 한 한국 근현대사의 상처를 문학적으로 복원한 시집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보암 시인이 호명한 인물은 한국문학사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긴 김원일·김원우 소설가의 부친, 그리고 한얼학교 설립자로 알려진 강성갑 목사다. 두 인물은 모두 일제강점기의 탄압과 한국전쟁기의 이념 갈등 속에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거나 가족과 이별해야 했다.

김원일·김원우 형제의 아버지는 독립운동가였음에도 광복 이후 빨간 점이 찍혀 전쟁 발발 직후 월북했으며, 강성갑 목사는 보도연맹 검속으로 총살당했다.

시인은 책 속에서만 보던 비극이 불과 수십 년 전, 바로 내가 살아온 땅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고 말한다. 반세기도 지나지 않은 상흔이 여전히 가족들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는 점에서, 시인은 역사적 사건을 다시 불러내고 그 속에서 살아야 했던 평범한 이들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데 집중했다.

시집은 총 3부로 구성된다. 1아버지의 독백에서는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어야 했던 가장의 현실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먹어야 살 수 있다/먹어야 생명체다라는 구절은 끼니부터 걱정해야 했던 시대의 절박함을 담고, “내선일체는 빛 좋은 개살구라는 표현은 차별과 수탈 속에 놓였던 군상의 심정을 보여준다.

2딸의 혼잣말은 남겨진 가족들의 고통을 중심에 둔다. “한 뿌리서 났어도 생김새는 달랐다는 구절은 남과 북, 이념의 갈라짐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연좌제 속에서 숨죽여 살아야 했던 이들의 상처를 전한다.

3부녀의 대화에서는 시간이 흘러 아버지와 딸의 시선이 서로를 향해 만나며 역사적 치유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평단에서도 시집의 가치에 주목한다. 시인 조승래는 100년의 역사를 관통하는 서사로, 아버지··관찰자의 시점이 유기적으로 교차된다이념으로 찢긴 가족의 삶을 세대 간 대화로 풀어낸 점이 깊은 울림을 준다고 평가했다.

김해독립운동기념사업회 김광호 회장은 서정성과 역사적 교훈, 교육적 메시지를 함께 담은 K-트로트 같은 시집이라며 읽는 내내 눈물과 분노가 교차했다고 말했다. 심용주 경남향토사연구회 김해지회장도 지역의 현대사를 살아낸 인물들에 대한 공감과 애절함이 컸다며 추천사를 보탰다.

서사시가 드물어진 오늘, 정보암 시인의 시집은 문학적 형식 실험을 넘어 지역 현대사를 복원하는 기록문학으로서의 의미도 함께 지닌다. 시인은 우리의 어제를 외면하지 말고, 오늘을 사는 우리가 더 나은 내일을 말해야 한다고 밝혔다.

비극의 기억을 문학으로 다시 세운 시집 오늘은 어제의 내일은 지역사회의 아픔을 성찰하는 또 하나의 귀중한 기록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정보암 시인
정보암 시인

 

정보암 시인은 1960년 경남 산청 출생으로 1997창조문학신인상으로 등단하였으며 창조문학 대상(2014)을 받았다. 김해외국어고등학교장으로 퇴직했으며 시집 오후 네 시 출발할 시간, 소설집 나무는 어찌 거목이 될까요가 있다. 시향문학회, 포앰하우스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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