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파
세월이 빚은 고목의 얼굴
숲속의 거친 바람을 삼켰다
눈을 감고도 세상을 읽고
입을 닫고도 많은 말을 한다
숲에는 늘 현자가 있다
- 강영숙(프랑스, 《세계디카시》 창간호 수록작품)
****
고목의 모습이 마치 모든 풍파를 견디며 살아온 한 사람의 얼굴 같다. 사람도 세월의 흔적이 표정 속에 다 드러난다고 하는데, 이걸 관상이라고 한다. 자주 웃는 사람의 표정과 계속해서 찡그리고 있는 사람의 인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굳어져서 그대로 표정이 되는 것이니, 나무라고 다를 것인가. 저런 얼굴을 갖기까지 수많은 시련을 견뎠을 것이고, 어느 정도는 세상의 이치를 알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굳이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여 전하는 말이 없을 것이며, 눈을 감는다고 하여 모르지 않다. 눈을 감아도 다 아는 이치, 말을 하지 않아도 다 전하는 이치를 아는 자가 바로 현자다. 한 사람이, 나무 한 그루가 오랜 세월을 살다보면 자연적으로 알아지는 것들을 우리는 지혜라고 한다. 저 나무의 표정이 세상의 풍파를 어떻게 견뎌야 하는 지를 일깨워준다.
글. 이기영 시인
◇ 이기영 시인은 (현) 한국디카시인협회 사무총장이다.
뉴스경남
webmaster@newsg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