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걸음

손자 손녀 왔다는 소리에
달려오는 걸음걸음마다
꽃잎 휘날린다

- 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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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이 신는 버선이 저리 고울 수 있을까. 한 짝만 신어도 너무 고와서 당장이라도 온 몸에 꽃물이 들어 나도 봄 한철 봄바람이라도 들어 처녀처럼 환해질 것만 같다. 그런데 손자 손녀가 온다니 버선발로 뛰쳐나가는 할머니의 함박웃음 소리가 담장을 넘어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꽃잎 휘날리는 거야 두말할 나위도 없지. 걸음마다 다 꽃걸음일 테니 얼마나 좋을까. 젊었을 적에는 꽃무니 화사한 옷이 너무 촌스럽게 여겨져서 카키색이나 짙은 파랑 같은 칙칙한 옷만 입고 다녔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화사한 것이 더 좋아진다. 얼굴빛도 칙칙한데 옷까지 그러면 더 늙어 보인다고 꽃가라로 사달라시던 어머니가 이해되는 걸 보면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보다. ‘저 버선을 어디가면 살 수 있나요. 파는 곳 알려주세요. 사서 신고 나도 한 번 폴짝 뛰어보게요.’

글. 이기영 시인

◇ 이기영 시인은 (현) 한국디카시인협회 사무총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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