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다리기
싸우느라 잡지 못한
줄을 머리에 이고 당긴다
심판은 하늘이다
비라도 한줄금 쏟아지면
쓸데없는 말들은 모두 떨어질 것이다
- 정사월(시인, 《세계디카시》 창간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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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 많은 봄꽃들은 모두 나무가 시끄럽게 떠드는 말들이었군요. 이 편 저 편 나누어서 봄을 서로 끌어당기려는 시합이라도 벌이는 모양인데, 말싸움 하느라 미처 잡지 못한 줄을 머리에 이고 잡아당기느라 정신없겠습니다. 팽팽한 긴장감이 역력합니다. 아마도 누가 더 예쁜지 다투고 있었나 봅니다. 물론 하늘이라고 해서 우열을 가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군요. 눈이 부셔서 세상천지가 다 황홀한데 심판을 볼 여유가 있었을까요? 싸움의 열기를 식히고 쓸데없는 말들을 다물게 할 필요가 있을 때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가 제격이긴 하겠어요. 그런데 더 보고 싶은 꽃들마저 다 떨어져버릴까 걱정이 되긴 합니다. 시인의 상상력 끝은 어디까지일까요. 이 작품을 보면서 꽃들도 자기가 더 예쁘다고 다툼질 한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글. 이기영 시인
◇ 이기영 시인은 (현) 한국디카시인협회 사무총장이다.
뉴스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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